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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간 Sieben Stunden

6. 독일의 이혼 가정에 대한 인식

by 언젠가

독일은 일 가정 양립정책이 굉장히 확고하고 진보적이며 젠더레짐의 연구가 활발한 나라이다.

나의 일생의 어느 순간 일하는 양육 여성의 삶에 대해 필연적인 책무성을 느끼고 우리의 삶이 조금 더 편안해지기 위해서는 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내 영역에서 내 힘으로 모든 제도와 정책을 바꿀 수는 없으니 적어도 인식의 변화에 대해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젠더레짐에 관한 논문을 찾아보긴 시작한 건 친 육아, 친가정 정책은 결국 출산율 증가로 이어질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기본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여성이 기회를 상실하거나 소득의 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가 보장해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해서였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분야의 학자들도 이런 주제의 논문을 쓰기 시작하였고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 연구자들은 대부분 독일의 사회복지 제도를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독일의 부모수당을 중심으로 한 일 가정 양립정책에 대한 젠더레짐 연구 논문은 정말 현실적으로 와닿았었다.


내가 싱글 가장이자 싱글 양육자가 되어보니 일 가정 양립은 현실의 문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나는 이혼 후 변화된 가족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지속적인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새로운 스트레스원을 준 것 같아서 참 미안했다. 기존의 공동경제 체계에서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므로 아이들에게 사치제를 사줄 때 망설이게 되고 더 많은 물질적인 풍요를 제공할 수 없는 것에도 죄책감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일을 해야 하는 싱글 엄마가 두 아이의 학교 행사, 진학상담이나 공개수업, 학예제, 체험학습 같은 행사들에 참석하기 위해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뛰어다녔다. 나는 자녀 돌봄에 대한 휴가가 비교적 관대한 조직에서 일하지만 , 돌봄 휴가를 쓸 수 없는 사기업이나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한부모의 일상은 어떨지.

양육자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자부했다. 자녀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늘 부족한 것 같아서 괴로웠다. 하지만 나의 죄책감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혹여라도, 나는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에 대해 당당하여 한점 부끄럼이 없지만 나의 아이들이 한부모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 낙인, 배척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독일이 사회 복지 분야에서 많은 부분 성과를 이루고 있고 선진화되고 있는 나라인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가정 정책은 어떨까? 친 여성적 친 가족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 나라의 양육자들은 행복할까? 더 나아가 싱글 양육자의 삶의 질은 어떠할까?


독일에 있는 양육자 친구를 알기 전부터 논문으로 접한 그 나라의 가족 정책, 일 가정 양립정책을 대략 이해하고 있었고 매혹적이라 여겼다. 그래서 실제로 그곳에서 양육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흥미 있었다.




독일은 부모가 되고 가족이란 울타리를 만들고 그 속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 적어도 제도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정책이 촘촘히 짜여 있는 나라다.

그렇다면 한발 더 나아가서 가족이 분리되거나 해체되는 과정을 겪은 가족에 대한 인식과 연구는 어떨지 궁금했다. 꼭 친 양육자 정책이 발달한 나라가 아니더라도 기존에 우리가 가진 가족, 가정의 정의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전 세계적인 양상이다. 이 부분은 인문사회학에서 연구하기에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부분이기에 그것을 연구하고 실증적으로 파해지는 연구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복지정책으로 가족정책이 확립된 나라라면 이 정책의 바탕이 되는 연구자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이혼을 겪으며 기존의 전통적 가족의 개념인 부부와 자녀 중심의 가족이 해체되면서 느낀 상실감과 전통적인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어 자녀들에게 느끼는 미안함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하며 그에게 조언을 구했었다.


그런데 그가 공부한 가족학을 설명해 주며 가족의 정의에 대해 다시 설명해 주었다.

그때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그는 가족학에서 연구되고 정의되고 있다는 가족의 역할과 범위에 대한 설명, 특히 이혼한 가정의 자녀 적응, 한부모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까지 설명해 주었다. 무엇보다 내가 겪는 갈등과 어려움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구되고 있다는 점, 가족의 역동 특히 이혼가정의 역동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가 성립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게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걸 이해한게 참 좋았다. 이런 사실이 한부모 가정의 구성원들에게 괜찮다 다 잘될 거다라는 백 마디 말보다 큰 지지였다.


핵심은 , 자녀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울타리의 의미, 물리적인 의미의 가정보다는 양육자와의 정서적인 밀착과 안정, 이해받음을 통해 정서적 의미의 가정으로 변화하여 가족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학자가 헌신하여 밝혀낸 사실이고 실증적으로 수치적으로 증명된 것이기에 의심할 필요 없이 받아들이면 된다는 그의 말은 그 어떤 정서적 위로보다 큰 위로였다.


이미 독일의 많은 가정은 양쪽 양육이든 한 부모의 양육이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 자녀에게 줄 수 있는 돌봄과 사랑이 제공된다면 그것이 한부모에게서 제공되든 양부모에게서 제공되든 조부모에게서 제공되든 상관이 없다는 말.

물론 이런 인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진보적인 친 가정적 제도가 뒷받침이 되어 양육자가 누가 되었든 자녀를 키우기 충분한 양육수당이 사회에서 제공된다는 실제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제도의 뒷바침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점점 자녀양육이란 개별 가정내에서 부모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의미가 없다. 양육자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가정은 가정이다. 그 안에서 자녀와 유대하고 자녀를 키워내고 확장시켜 올바른 시민이자 사회인으로 만들어 이 사회의 자원이 되도록 키워내는 일은 꼭 양쪽 부모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개념과 인식이 박힌 양육자라면 혼자라도 할 수 있다. 올바른 개념과 인식이 없는 양육자들이라면 그게 둘이 아닌 넷다섯이 되어도 힘들 것이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양육자에게는 자녀를 이상적인 시민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며 인식의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라 본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그 인식이 요원하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가족개념 안에서만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고 이상적인 시민으로 키울 수 있다고 바라본다. 어쩌면 나 역시 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한부모 가정을 바라볼 때는 온전하지 못함, 깨짐, 그 가정 안의 자녀들은 많은 문제와 결핍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학교 현장에서도 정서적 문제를 가져 상담과 돌봄이 필요한 학생의 범주에는 학교폭력을 경험했던 아이, 우울이나 공황 같은 진단을 받은 아이,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아이가 들어간다.


나는 그래서 불행했고 두려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용감하고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던 것이, 내 자녀들에게는 화살이 될지 모른다는 것. 내 가정 안에서 자라나는 내 자녀들이 결핍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괴로웠다.

감정적인 외로움은 이겨낼 수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극복 가능하다.

나는 그 어느 양쪽 부모보다도 양질의 사랑과 관심을 내 자녀들에게 쏟아붓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밀려들고 죄책감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 인식과 죄책감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미 너의 죄책감은 이곳에서 학문적으로 연구되어 왔고 그 결과는 이러하다.

많은 독일의 가정들이 겪었던 문제이고 양육자들이 공감했던 문제이고 그래서 지금 독일 이혼 가정의 부모들과 아이들은 적어도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움츠려 들지 않는다는 그의 설명은 나에게 너무 큰 의미였다.

그 역시도 한부모로 자녀를 양육했다. 자녀들을 아주 훌륭하게 키워내서 독일 사회에 쓸만한 자원으로 제공하였다. 이런 현실적인 롤 모델이 있다는 것이 그 어떤 위로보다 위로가 된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한부모지만 자신의 커리어도 훌륭히 구축했을 뿐 아니라 자녀들도 훌륭하게 키워낸 롤 모델이 많이 않은 것이 사실이다.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한부모가 직업적으로도 양육자로도 성공하기가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배우 윤여정 님 이 오스카 수상 소감을 듣고 나는 참 많이 울었었다.

"I'd like to thank to my tow boys who make me go out and work. so beloved sons , this is the result. because mommy worked so hard."


감사합니다. 나에게 한부모 가정의 자녀와 부모의 적응 양상에 대해 설명해 줘서. 그리고 당신 스스로 좋은 부모로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사람이라서. 나에게 많은 용기가 되어줍니다.

일곱 시간의 시차를 극복하고 불만족스러운 독일통신 상태도 극복하고, 내 감사가 아주 정확하게 그대에게 가서 전달되길 바랍니다.




** 사회복지학에서 접근하는 가족학, 그 관점으로 바라보는 이혼가정에 대한 역동과 적응 과정에 대한 학문적 정의는 독일과 우리나라가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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