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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지 못한 변명

정말로 정말로 이상해서 물어보는 거야

by 언젠가

남편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소통이 안되고 공감능력이 없다. 그리고 회피성향이 강하다. 그는 일을 수습할 수 없을 때까지 망가트려놓고는 늘 누군가의 뒤로 내뺀다. 젊은 시절은 그의 엄마 지금은 나.


이상하게 그 사람은 관계에 능한데 그 능숙함이란, 구성된 하나의 모임이나 조직에서의 서열을 기가 막히게 빨리 파악하고 그 사람뒤에 선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그가 시모를 택한 건 그때는 시모가 더 많은 에너지를 가졌고 시모가 집안을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가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철저하게 그의 엄마 뒤에 서서 시모가 나에게 했던 시집살이나 갑질에서 나를 지켜주거나 그녀와 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갑질을 하면 늘 나에게 네가 조금만 참아줘. 네가 엄마 맘에 들어야지만 엄마가 재산 물려준데.. 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시모는 이제 늙고 병들었다. 부를 누려본 적이 없다가 갑자기 부를 가지게 된 사람들은 돈으로 모든 걸 살 수 있다고 여기고 가진 걸 과시하려고 모든 노력을 한다. 시부모도 그런 편이었다. 돈으로 사람의 감정도 살 수 있다 여겼다. 하지만 가졌던 얼마 안 되는 자산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다 잃어버리게 돼버린 지금은 내 말만 들으면 내 재산 너 줄게 하면서 누군가를 쥐고 흔들 무기가 사라졌기에 그 누구도 쥐고 흔들 수 없어졌다. 그러자 비로소 남편은 내 뒤에 섰다.


그의 이런 모습을 알게 되자 몹시 억울해졌다. 그리고 그가 내 뒤에 선 결정적인 계기이자 내가 시부모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서 진실을 직면하게 된 계기가 있다. 6년 전 내 남편은 나의 상의 없이 나 몰래 아파트를 담보 잡고 대출을 받았다. 처음엔 적은 금액이었다는데 쓰다 보니 커졌다고 한다. 내가 알게 되었을 때는 밀린 이자와 원금이 아파트 구매금액의 80프로 가까이 돼서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 그나마도 내가 사실을 알고 전화를 걸어 추궁하자 그는 끝까지 모른척하고 발뺌하고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 나에게 와서 무릎을 꿇고 사실을 말하고 빌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는 고작 회피하고 도망쳤다. 나는 그가 집을 나가서 전화도 안 받고 잠적한 그날 밤 두려움에 떨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그때 두 살이었던 둘째는 밤새 아빠를 찾으며 울었다.


다음날 그가 돌아와서 한말은 그냥... 자기는 그냥 조용히 쉬고 싶고 생각을 정리할 겸 전화를 꺼두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피가 말랐을 부인에 대한 미안함도 없고 대출받은 금액은 본인의 부모에게 말해서 해결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철석같이 그의 부모를 믿었던 건 일견 그의 부모탓도 있는데 그의 부모는 늘 굉장한 소비를 했고, 늘 자식들에게 내가 돈이 많으니 내가 물려줄게 많으니 내 말대로 하라고 큰소리치며 장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집이 경매로 넘어갈 지경이 돼서 그래 그러면 , 그 물려주시겠다던 돈 지금 좀 도와주시면 안 되냐고 며느리가 울며 사정하자 모른 척하셨다. 남편도 그제야 현실파악을 하고 놀란 눈치였다. 나중에 파악해 보니 그동안 시부모가 약속했던 모든 것들이 허상이었다. 결혼할 때아들 부부를 불러들일 원동력이었던 지역 맛집의 매출은 이미 꺾인 지 오래였고 물려주겠다고 약속했던 그 원조집의 건물은 이미 남에게 넘어간 상태로 껍데기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지난 6년 동안 10여 년간 맞벌이 끝에 겨우 마련한 아파트 한 채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친정엄마의 도움과 아파트를 부부간 부담부 증여로 돌려서 내 앞으로 돌려서 더 이상 남편이 못 건드리게 한 후 대신 대출금도 내 능력으로 상환해 가기 위해 피나게 살아갔던 내 덕이였다.


남편이 받은 대출금도 어차피 내가 상환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하니 별로 억울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아들 며느리에게 조차 돈으로 갑질을 하던 시부모에게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그 자산을 물려받으면 조아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산 세월은 억울하다. 그것도 뭐,, 내가 내 발목 찍은 거라 여기고 그래도 그 시부모에게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에 아이를 둘 키우며 경단녀로 살아가다가 죽을힘을 다해서 다시 취업하게 되었고 애 키우고 일하면서도 선별시험에 합격할 수 있게 독한 맘먹고 졸음을 참아가며 공부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고맙다.

만약에 6년 전, 당신의 아들이 멍청한 짓을 했는데 시부모가 아이고 그래하고 돈으로 다시 해결해 주었다면 나는 정말 그냥 안주하며 그 돈 받았기에 또 시부모에게 조아리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시부모는 그렇게 포기하고 , 그다음엔 이 모든 일의 원인이자 결과인 내 남편인데, 나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와 살면서 이혼을 결심한 순간은 너무 많다. 큰아이가 아직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의 시집살이와 갑질에서 나를 막아주거나 분리해주지 않을 때. 나는 어린아이를 업고 시댁에 들어가서 그의 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는 시모의 비서직으로 살아야 하나 아니면 나라도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야 하나 갈등했을 때 다행히 그는 내 의지에 따라 내가 취업하는 것을 도와줬고 옆 도시에서 재취업이 되었을 때 내 직장 옆으로 이사를 결정한 내 의사를 따라줬다. 그래서 이혼은 보류되었다.


두 번째 순간은 앞에서 말한 순간. 독한 시집살이 끝에 독립도 하고 맞벌이하며 모은 돈으로 겨우 결혼 10여 년 만에 겨우 모은 돈으로 산 집이 대출이 풀로 잡혀있단 걸 알았을 때 남편은 나에게 들키자마자 잠수를 탔고 해결을 모색하려고 손 내밀며 도움을 요청한 순간 시모는 모른 척했을 때.


그런데 그땐 둘째가 너무 어려서 나 혼자 일을 하며 어깨가 무거운 대출을 감당해 나가며 이 집을 지키기엔 너무 힘들 것 같고 집을 팔고 남은 돈이라도 나눠서 갈라서야 하기엔 남은 돈이 없어서 애들 둘 눕힐 방한칸 마련하기도 어려웠다. 징그럽고 한심했지만 일단은 이 집부터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여서 이혼보류.


다행히 그 시기 이후 부동산 상승기를 거쳐 집값은 꽤 상승했고 대출 원금도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일부 해결해서 우리 둘 맞벌이하며 이자감당정도는 가능한 상황이 되었고 집을 지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집값이 많이 올라서 이젠 팔아서 나눠도 애들 둘 눕힐 집한칸은 살 수 있고 나 역시 안정되고 보장된 직장을 보장받는 선별시험에 합격해서 노후 걱정까지 덜어낸 상태가 되자 이혼이 귀찮아졌다.

대신 그와 살면서 많은 것을 포기상태에 두고 결국 내가 살기 위해서 배운 것들은

1. 긴 계획이든 짧은 계획이든 미리 이야기하지지 말 것- 어차피 안 듣고 닥치면 또 물어본다. 몇 년짜리 인생 계획이나 집을 사고파는 등의 중요한 일은 물론이고 주말에 어디 갈까 뭐 먹을까 같은 문제도 그는 아무 생각이 없고 계획이 없다. 그리고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기억력이 짧아서 애초에 논의나 합의는 필요 없다.

이런 그의 성향에 화를 내거나 속상해하는 건 나만 손해

2. 두 가지 이상의 미션을 주지 말 것-아주 간단하게 지시형으로 오늘 아홉 시에 쓰레기 분리수거 해줘 같은 하나의 지시만 내려야 함. 두 가지 이상의 집안일을 하게 될 경우 그는 매우 많은 일을 했다 여기고 투덜거리기 시작함. 우리는 맞벌이 부부고, 자녀교육이나 세금납부, 자산의 관리 같은 중요하고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하는 일들은 모두 내가 처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생활에 닥친 문제들, 빨래 개기 같은 일들을 두 가지 이상 처리하는 게 힘들다.

3. 남편이 정말로 이상하게 굴고 저 사람 자체가 좀 이상한데 싶을 때도, 성인 ADHD인가 의심하거나 상담을 좀 받아보라고 권유하지 말 것. 그는 내가 늘 , 정말로 이상해서 물어보는 거야, 왜 그걸 몰라? 하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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