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5. 채식인의 브런치
6년 전 채식하기로 한 뒤 나를 가장 괴롭힌 식품은 달걀이었다.
달걀은 이런저런 음식에 두루 쓰는 재료다. 이것만 넣으면 빵과 케이크 맛이 마법처럼 부드러워지니 제과제빵에도 빠지지 않는다. 달걀은 대부분 식구에게 타박받지 않는 반찬이 되고, 딱히 뭘 요리할지 모를 때 달걀만 있으면 식사 준비가 수월해진다. 그래서 달걀은 우리 식탁과 떼놓고 생각하기가 힘든 것 같다.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32쪽.
그때 나는 달걀을 중독 식품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우리의 달걀 사랑을 이해하는 누군가는 달걀 맛을 흉내 낸 대체 식품까지 만들어냈다. 해조류로 만든 가루 식품인데, 물과 섞으면 엉겨 붙어서 달걀 요리와 비슷해진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이런 식품이 있다는 걸 몰랐다. 대신 인터넷에 의지해 달걀 요리를 흉내 냈다.
프렌치토스트가 먹고 싶을 땐 강황 가루를 조금 섞은 두유에 빵을 적셔서 부쳐 먹는다. 여기에 치즈와 비슷한 발효 맛을 내는 영양 효모를 넣으면 맛이 더욱 그럴듯하다. 몽글몽글한 에그 스크램블이 아른거리는 아침에는 두부 스크램블을 시도한다. 으깬 두부에 강황 가루나 영양 효모로 맛과 색을 내는데, 여기에 토마토를 썰어서 함께 볶고, 구운 빵 위에 얹으면 색깔도 살고 맛도 더 좋다. 병아리콩을 튀겨 만든 팔라펠을 라면에 넣으면 얼핏 달걀 푼 라면 맛이 나기도 한다.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33쪽.
물론 으깬 두부 맛이 달걀 같을 리는 없다. 하지만 집에서 완전 채식을 해보겠다는 결심은 굳건했으니, 달걀을 살 순 없고, 모양이라도 흉내 내서 먹어야 했다. 그렇게 달걀에 대한 욕망과 배고픔을 혼동한 위장을 달래고 나면, 금단 증세가 좀 가라앉았다.
채식을 시작하고 첫 몇 달은 영양 효모와 강황 가루로 달걀 요리를 흉내 내보았다. 이제는 일부러 이런 음식을 만들어 먹을 일이 없다. 달걀을 사지 않으니 요리할 수 없게 되고, 보지 않고 먹지 않다 보니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채식하고 두세 달이 지나자 공황 상태가 가라앉았고, 달걀 없는 밥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달걀말이를 보면 맛있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뿐이다. 달걀말이 몇 조각으로 얻는 혀의 즐거움보다 닭장에 갇힌 닭에 의존하지 않는 식생활에서 오는 만족감이 훨씬 크다. 2017년 달걀 파동으로 가정이고 식당이고 슈퍼마켓이고 온 나라가 난리였을 때 내가 얼마나 태연했든가 생각하면 뿌듯할 정도다.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34쪽.
두부 스크램블 (2인분)
빵 2조각
두부 2/3모
소금 약 1/4작은술
강황 가루 1/4작은술
a. 양파/당근/애호박/토마토/피망/버섯 중 아무거나 다져서 2/3컵
b. 파/파슬리/고수/바질/깻잎/쑥갓/케일/시금치 중 아무거나 다져서 1컵
c. 이탈리안 시즈닝/바질/타임/딜/오레가노/로즈메리/파프리카/고수/큐민/후추 중 아무거나 1/2작은술
(선택 재료) 영양 효모 2작은술 (감칠맛을 낸다)
1. 중간 불에 달군 팬에 a 재료 중 아무거나 다져서 올린다. 기름을 약간 둘러 볶거나, 물을 2큰술 정도 넣고 뚜껑을 덮어 익힌다. (약 5분)
2. 1에 두부를 손으로 으깨 넣는다. 바로 강황가루/c 양념/소금을 넣는다. 소금 양은 취향에 맞게 조절한다. 잘 볶는다. (이때 원하면 영양 효모도 넣는다.)
3. 두부가 노랗게 물들면 b 채소를 다져 넣고 뒤적인다.
4. 빵은 한쪽 면에 기름을 발라 굽거나 토스트기에서 구워낸다. 빵 위에 3을 올려 대접한다.
더 간단한 두부 스크램블 요리법 (단백질 듬뿍 채식 요리)
이제는 달걀 없이 만두를 빚거나 부침개 반죽을 만들고, 제과제빵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재료를 엉기게 하는 달걀 역할이 꼭 필요하면, 아마인 가루/바나나/애플소스/연두부/아쿠아 파바(병아리콩 삶은 물) 등 대용할 건 얼마든지 있다.
참고 글
“칠십팔억 지구인 속에서 내 존재는 너무도 작지만, 나는 하루 세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끼만큼의 변화를 원한다면, 에세이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책 훑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