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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규 Jinkyu Park Sep 14. 2021

스타트업에게 'Hold Steady'가 필요한 이유

[스타트업 서바이벌 팁 #2] 린 스타트업, 무조건 직진만이 답일까?

세상에 알아두면 좋은 사람은 있다?

“Steady… Hold… Hold… Hold… NOW!!!”

1995년에 개봉한 영화 <브레이브하트(Braveheart)>는 배우 맬 깁슨(Mel Gibson)이 스코틀랜드 저항군의 지도자였던 실존 인물 윌리엄 월러스(William Wallace)를 연기하며 잉글랜드 군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다룬 액션 영화입니다.



오늘은 제가 이 영화의 특히 좋아하는 명장면을 소개하며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느낀 시사점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클립은 구글에서 ‘breaveheart hold’를 검색하면 가장 위에 뜨는 동영상입니다. 2021년 8월을 기준으로 총 조회 수가 45만회를 넘는 것을 보니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브레이브하트>를 보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인상 깊게 생각한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장면에서 말, 갑옷, 무기로 무장한 잉글랜드 정규군은 스코틀랜드 저항군을 향해 진격합니다. 저항군은 민간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갑옷도 무기도 보잘것없습니다. 일견 압도적으로 전력이 앞서는 대기업과 강한 경쟁자들 그리고 치열한 시장 상황에 놓인 스타트업의 모습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진격해 오는 잉글랜드 군 앞에서 저항군 리더 월러스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부하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Steady… Hold… Hold… Hold…”



스타트업은 돈, 시간, 정보 등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적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가진 총알이 부족해서 함부로 쓰다가는 자칫 결정적 한 방을 쏴야 할 때 총알이 없어 기회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부족한 총알로 싸워야 하는 만큼 한 발 한 발 적의 숨통을 끊는 치명적인 공격을 해야 합니다. 급하다고 대충 쏴도 안 되는 것이죠.


반대로 총알을 아끼고 아끼다가 제대로 한번 쏴 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너무 무섭고 흥분한 나머지 적이 사격거리 밖에 있는데도 여기 저기 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결국 스타트업은 ‘무엇을 하느냐(총알을 무작정 쓰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느냐(타이밍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스타트업 사례를 통해 살펴본 타이밍의 중요성 


실제로 중고거래 플랫폼 ‘셀잇’의 창업자인 김철우 이사는 자신의 SNS에 이러한 실패담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전자제품 중고거래 서비스 기업인 ‘셀잇’은 카카오에 인수되면서 엑시트에 성공했는데요. 이후 자연스럽게 카테고리 확장을 도모하던 이들은 중고 거래량이 높은 순으로 카테고리를 분류하고 위탁 매입 사업모델에 적합한 카테고리를 다시 추렸다고 합니다. 


이때 셀잇은 판매자 입장에서 1) 부피가 커 배송 등 거래 과정이 불편하고, 2) 개인이 직접 구매자를 찾기 어려운 품목을 찾아 최종적으로 ‘유모차’를 선택했는데요. 당시 유모차 사업을 안착시키고자 신규 인력을 채용하고 운영을 고도화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1년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사업을 접은 후 셀잇이 찾은 실패의 원인은 바로 ‘고객’이었습니다. 과거 성공했던 전자제품 위탁 매입 사업의 주고객은 30대 남성이었는데, 동일한 방법론을 전혀 다른 타깃의 유모차 사업에 적용한 것이었죠. 사실 유모차 사업은 이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신사업이었는데 말입니다.


김철우 이사는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고객들에게 묻고 싶다고 말합니다. “전자제품 말고 어떤 물건을 셀잇에서 거래하고 싶으세요?” 왜 그 간단한 질문 하나도 하지 않고 신사업에 뛰어들었는지 아쉽다며 지난 경험을 복기합니다.



다음은 영상분석 기술을 기반으로 B2C 사업을 진행하던 한 스타트업의 사례입니다. 


뛰어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대기업 연구소 출신의 탄탄한 개발 인력으로 구성된 회사입니다. 그러나 자체 기술로 개발한 B2C 앱이 출시 이후 시장의 반응은 (창업자의 생각에) 나쁘지 않았지만 수익모델을 만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앱을 다운 받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매출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유저 입장에서 있으면 좋지만 돈 주고 쓰고 싶은 정도의 서비스는 아니었던 것이죠.


최근 이 업체는 영업 전략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피봇(pivot)'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B2C 사업으로 수익화에 실패한 원천기술을 SDK(Software Development Kit) 형태로 기존에 사전 수요조사(태핑)를 진행했던 동일한 산업 분야 내 B2B 고객을 타깃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궁금합니다. B2C 수익모델의 가능성을 본인들도 검증하지 못한 원천기술을 같은 산업 분야의 B2B 업체들에게 영업할 수 있을까요? 그 B2B 업체들도 해당 원천기술을 도입할지 여부는 수익모델 가능성에 대한 판단에 근거할 것이며, 결국은 긍정적인 검토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 번째 셀잇의 사례는 회사에 카카오에 인수된 후 적어도 생존에 대한 걱정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업 검토 과정에서 신규 사업 카테고리에 대한 고민을 심도 있게 진행했으나, 결과적으로 기초적인 부분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패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고, 당시의 판단은 아무도 질책할 수 없습니다) 만약 고객에 대한 분석을 사전에 진행했다면 유모차 사업에 투입했던 인력과 자원을 다른 사업 기회에 투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두 번째 스타트업의 사례는 회사의 생존 문제가 걸린 상황이었지만, 열심히 개발해 출시한 B2C 앱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저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만 하고,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이 안 되다 보니 당연히 실패 원인에 대한 학습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한번 수익화에 실패한 원천기술이 B2B 고객에게는 어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자금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바로 몇 달 전에 실패한 ‘똑같은’ 사업에 다시 투자하고 있는 셈이죠.


‘린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


제가 대표로 있는 레인지엑스는 법인을 설립한 지 올해로 만 5년을 갓 넘긴 회사입니다. 시제품이 있고, 직영점들이 있고, 매출이 있고, 고객이 있고, 조금씩 골프 시장에 인지도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사업 제안들이 예전보다 많이 들어옵니다. 그 중에는 그럴 듯한 제안도 있고, 혹 성과가 없더라도 회사의 존망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은 제안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분석 장비인 레인지엑스 시스템에 스크린골프에서 즐길 수 있는 라운딩 (또는 게임) 기능을 추가하면 좋겠다는 요청을 자주 받지만 현재는 검토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첫째, 기존 선두 업체들이 이미 재미있는 스크린골프 게임을 오랜 기간 충실히 개발 및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둘째, 분석 장비라는 레인지엑스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셋째, 게임 기능을 추가한다는 것은 저희 기존의 개발팀 인력을 상당 규모 키우거나, 외주 업체와의 협업을 늘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용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되, 스타트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다양한 제안이 들어와도 무조건 뛰어들기보다 신중하게 공격할 타이밍을 기다립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빠르게 테스트해보고 고객의 피드백과 시행착오를 통해 완제품을 개발해 나가는 ‘린 스타트업’이 많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성공 원칙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방식이 적합한 분야와 타이밍은 따로 있습니다. 제가 린 스타트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스타트업이 자신의 총알을 여기 저기 쏘는 시도는 적어도 회사의 존망에 치명적인 영향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의 신중한 선택을 통해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격할 것인지 집중할 목표를 정해야 하죠.



린 스타트업 방식이 스타트업에게 진정한 의미가 있으려면 아래의 세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스타트업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그 시도들을 ‘왜’하고 ‘어떤 것’을 테스트할 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둘째, 학습능력입니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경험과 경쟁력을 내재화하기 위해서는 ‘왜’ 실패했고 ‘왜’ 착오가 있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는 시도와 실패들은 결국 회사의 돈과 시간을 무의미하게 사용할 뿐입니다.


셋째, 회사의 문화와 조직구조 그리고 사람의 문제는 린 스타트업이 어쩔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잘못된 의사결정 구조나 팀워크를 깨트리는 특정 팀원 또는 리더의 문제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 있습니다.


만약 회사가 가야 할 방향에 자신이 있다면, 스타트업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투자자와 동료들이 이제는 총알을 써야 한다고, 회사가 죽게 생겼다고 난리를 칠 수 있습니다. 저도 주위에서 대기업들이 우리 시장에 진출한다, 경쟁업체가 투자 받았다 뭐 이런 소식들이 들리면 엉덩이가 들썩들썩하고 마음이 심란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주변을 의식하기보다는 본인의 칼을 더 날카롭게 갈면서 윌리엄 월리스가 외치는 “NOW!!!”의 타이밍을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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