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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규 Jinkyu Park Dec 14. 2020

스타트업,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자

[스타트업 추천도서 #1] 넷플릭스 창업기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출처 : 덴스토리)


공동 창업자 마크 랜돌프가 최초 공개한 넷플릭스 창업 이야기 


넷플릭스의 공동 창업자이자 초대 CEO인 마크 랜돌프(Marc Randolph)의 회고록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That Will Never Work : The Birth of Netflix)>를 읽었습니다. "That will never work!"는 그가 넷플릭스의 사업 아이디어를 아내에게 처음 말했을 때 들었던 말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창업한 넷플릭스는 전 세계 1억 6000만 명이 구독하는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평소 저는 이러한 류의 창업 회고록을 ‘Business Adventures’로 정의하고 가장 즐겨 읽습니다. 물론 저뿐만 아니라 현재 스타트업 창업을 고민하거나 실제 그 현장에 몸담고 있는 분이라면 넷플릭스 창업과 성장 스토리가 매우 흥미롭게 느껴질 것입니다. 특히 스타트업 초보 창업가인 제게 좌충우돌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넷플릭스 팀의 초창기 이야기는 더더욱 현장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흔히 책 소개를 할 때 많이 쓰는 상투적인 표현 같지만, 저 역시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독했습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넷플릭스의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강렬했던 에피소드 세 가지를 지금 소개합니다.


Episode 1. 오늘날 넷플릭스를 있게 한 ‘DVD 판매 모델 버리기’

넷플릭스는 원래 DVD 대여 사업을 기본 모델로 1998년 창업했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 대여는 여전히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넷플릭스를 찾는 고객도 DVD 대여가 아닌 구매가 주를 이뤘고, 회사가 의도한 대여 수요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창업 후 초반 몇 년 동안은 전체 매출의 약 97%가 DVD 판매 수익이었고 대여 수익은 겨우 3%에 불과했습니다. 



넷플릭스는 DVD 시장의 선점자로서 DVD 판매 1위 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DVD 시장이 워낙 작았기 때문에 자체적인 현금 창출이 아닌 자금 조달을 통해 회사를 존속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DVD 시장의 성장이 예견되면서 e-커머스 시장의 공룡기업인 아마존이 곧 시장 진입을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1위 업체임에도 시장규모가 작아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하는 데다 시장이 확대돼도 거대 기업의 진출로 난행이 예상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것입니다. 



이에 마크와 공동 창업자인 현 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당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넷플릭스 매출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DVD 판매 사업을 접고, 겨우 3%에 불과했던 대여 사업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것이죠. DVD 판매 사업은 어차피 아마존이 들어오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들은 아마존과의 경쟁 대신 협력을 택합니다. 넷플릭스로 유입되는 ‘구매’ 고객은 ‘아마존’으로 연결하고, 아마존으로 유입되는 ‘대여’ 고객은 ‘넷플릭스’로 연결하여 DVD 대여 사업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새로운 협력관계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Episode 2. 닷컴 열풍 속 넷플릭스를 위기에 빠뜨린 ‘포털 지향’

2000년 하반기 미국 시장은 닷컴 열풍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실리콘밸리는 돈이 넘쳐 흐르고 벤처캐피털들은 공격적으로 투자처를 찾으며, 투자은행들 역시 부지런히 닷컴 기업들을 IPO(기업 공개) 열차에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넷플릭스는 시장의 유동성을 활용해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게도 벤처캐피털과 투자은행의 환심을 사기 위해 회사의 정체성을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그랬듯이 웹사이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포털’과 같은 형태로 모든 정보를 가리지 않고 제공하여 최대한 많은 유저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우선 트래픽을 늘려야 한다는 게 당시 일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일단 트래픽부터 쌓고 수익모델은 그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유저들이 원하는 DVD를 찾도록 도와주는 대여 서비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죠.  



넷플릭스는 투자 유치에 쉽게 성공했지만 투자를 한 벤처캐피털과 IPO를 도와주던(혹은 부추기던) 투자은행은 넷플릭스가 기업의 본질에서 벗어난 사업에 투자금을 사용하기를 바랐습니다. 결론적으로 2000년 말 닷컴 버블이 꺼지고 유동성 잔치가 끝난 후 벤처캐피털과 투자은행의 압박으로 진행되었던 넷플릭스의 다양한 사업들은 많은 투자금을 소진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리되었습니다. 다행히 넷플릭스는 회사의 정체성을 회복한 후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닷컴 기업들이 생존에 실패했습니다.


Episode 3. 선택과 집중 택한 넷플릭스의 전략 ‘캐나다 원칙’


넷플릭스는 캐나다로 사업영역을 확장할 경우 약 10% 정도의 매출 성장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시장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언어도 동일하며(일부 지역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심지어 유사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캐나다 시장에 창업 후 무려 12년 동안이나 진출하지 않았습니다.    



마크는 넷플릭스가 캐나다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선 캐나다 진출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검토했을 때 복잡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캐나다 달러와 미국 달러의 환율 차이로 인한 가격 정책 이슈는 물론, 프랑스어 사용권에서 발생하는 번역 이슈와 미국과 다른 우편 체계 이슈까지.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캐나다 사업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 사업자금을 미국 사업에 집중했을 때 훨씬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은 늘 부족한 리소스를 가지고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도모합니다. 


때문에 모든 결정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은 필수입니다. 부족한 리소스를 넓은 전선에 나눠 배치하면 어떤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DVD 판매 모델 버리기’는 마크가 언급한 ‘캐나다 원칙’을 제대로 이행한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닷컴 열풍의 대세에 휩쓸려 포털 사이트로의 전환을 도모했던 에피소드는 넷플릭스가 캐나다 원칙을 지키지 않아 존폐 위기에 놓일 뻔했던 아찔한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Don't Put All Your Eggs In One Basket’이라는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옮기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한 우물만 파라’는 정반대의 격언도 있죠.


그렇다면 어떤 조언이 스타트업에 더 적합할까요? 


사실 스타트업은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을 만큼 달걀이 많지 않습니다. 나눠 담는다 한들 어떤 바구니도 안전하게 지킬 수 없을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지켜야 할 바구니가 많아질수록 바구니 하나도 쉽게 지키지 못하는 법이죠. 마크는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을 ‘철저한 집중’에서 찾았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지금 제가 회사를 캐나다로 이끌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자문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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