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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규 Jinkyu Park May 06. 2020

배에서 언제 뛰어내릴 것인가

스타트업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는 당신에게

결정의 순간, 최선의 선택이란


나이 마흔에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면 전보다 더 신중해집니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사업해 보고 안 되면 MBA에 가거나 아니면 다시 취직해야지’라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는데, 막상 마흔이 되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니 이러다 안 되면 내 인생 ‘새 되겠구나’ 하는 압박이 생기더라고요. 지켜야 할 것들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죠.


하지만 어떤 결정이든 그 선택이 나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만을 따지는 것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겠지만 결국 ‘최선의 결정’이란 궁극적으로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이고, 이를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고민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유불리만을 나침반 삼아 살아가기엔 우리 인생에 변수가 너무나 많고 불안감도 계속되기 때문이죠. 



유불리가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내공을 다진 한 대표님의 사례입니다. 이 분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유명 VC(Venture Capital)와 국내 벤처투자 컨소시엄의 투자안을 두고 행복한 고민을 했는데요. 해외 VC의 경우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명성이 자자한 곳인 데다 실제로 투자에 성공한 유니콘 기업도 적지 않았지만, 국내 투자기관이 더 높은 밸류에이션(Valuation)과 투자 금액을 제시했기 때문이죠. 대표님은 고민 끝에 결국 해외 VC의 투자안을 거절하고 국내 투자 자금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TV 광고도 하며 언론에 많이 노출됐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재 그 회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때 해외 VC의 투자를 받았다고 해서 성공했을 지는 미지수지만(결과론적 관점의 한계입니다) 대표님은 자신의 창업 경력 10년을 돌아봤을 때 아쉬운 결정 중 하나가 해외 VC의 투자안을 거절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국내 투자자들이 더 높은 밸류에이션과 투자 금액을 제시하긴 했지만 기업의 성장을 기다려 주기에는 투자 호흡이 길지 못했고, 담당 심사역들 역시 잦은 퇴사와 이직으로 해당 기업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투자 유치 이후 방치되는 회사들을 종종 ‘orphan company(고아 회사)’라고 일컫는데, 이 기업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했습니다.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후속 투자가 진행되지 않았고, 다른 투자기관과의 연결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회사가 기대했던 대로 성장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참고로 거의 모든 스타트업이 가장 보수적인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위 사례는 밸류에이션과 투자 금액만을 기준으로, 즉 유불리만을 고려해 투자안을 결정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님 역시 투자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why’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고 스스로 고백합니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후속 투자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한 번 더 고민했다면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설령 회사가 해외 VC의 투자를 받고 생존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유명 VC의 지원사격에도 실패한 케이스가 되므로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현재에 안주할 것인가, 새로운 길을 택할 것인가


다시 말해 유불리는 동서남북이 계속 변하는 나침반과 같아서 확실한 길잡이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얼마 전 친구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이 친구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한 대기업에서 20년간 장기 근속하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해외지사 파견도 몇 년씩 다녀왔습니다. 한 회사에 20년이나 다녔으니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죠. 


아무튼 이 친구가 최근 신사업 TF 팀장을 맡았는데, 1년 정도 TF를 꾸리고 2021년에 새로운 자회사를 만드는 일이라고 합니다. 기존 핵심 사업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지 몇 년 전부터 경영진 내 논의가 있었고, 결국 새로운 핵심 사업을 찾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져 내린 결정이라고 했죠. 하지만 정작 친구는 1년 후 자회사로 발령이 나게 될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타고 있는 모선에 물이 새고 있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당장 침몰하지도 않을 모선을 버리고 금방 좌초될 지 모르는 작은 배로 등 떠밀려 자리를 옮기는 것이 맞을지 고민하고 있었죠. 더군다나 모선의 침몰이 자신의 퇴직 후 일이라면 더더욱 현재 문제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며 주변 친구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기업의 중장기 비전과 신사업의 성공 가능성, 그리고 회사 내부의 사내정치 등 역학구조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 친구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각자 ‘최악’, ‘차악’, ‘차선’, ‘최선’의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습니다. 과연 어떤 결정이 친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할지 다양한 의견을 나눴죠. 


저는 그렇게 봐요. 큰 배를 쭉 타고 갈지, 작은 배로 옮겨 탈지, 어떤 결정을 하든 그 친구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요. 이제 40대 중반이니까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15년, 길어야 20년 남은 것이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결정


꼭 새로운 도전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스타트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다만 스타트업을 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왜 스타트업을 하려고 하는지, 스타트업이라는 길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나 주어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것은 절대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배를 타야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지를 생각하기보다, 지금 이 배를 타는 게 맞는지, 이 배가 내 삶을 어디로 이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더라도 불안감은 여전하겠지만 그럴 때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스스로 납득한다면, 다시 말해 정확한 나침반이 있다면 덜 흔들릴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방향을 유지할 수 있죠. 



주관식 인생, 해답은 내 안에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하고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내가 ‘왜’ 일하는지, ‘왜’ 사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며 불편한 질문을 피하기 일쑤입니다. 오늘 당장 할 일이 산더미인데 이 일을 왜 하는지 묻고 따질 새가 없죠. 설령 한 번쯤 떠올려본다 해도 마땅한 답이 생각나지 않으니 대책도 없는 고민 계속할 바엔 아예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명확한 답을 낼 수 없어도 혹은 그 답이 계속 변할지라도 내가 일하고 사는 이유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습관은 현재 주어진 일에서 의미를 찾는 습관으로 이어집니다. 답은 변해도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것이죠. 답이 보이지 않아도 계속 고민하면서 자신만의 논리와 답을 찾아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 실용적인 팁을 드리자면, 일단 뜬 구름 잡는 것 같아도 이런 생각을 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없으면 시간을 만들어야죠. 그러려면 본인의 삶에서 덜 중요한 것들을 덜어내야 하고요.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야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습니다.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아서 만나는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허비하는 시간을 모아야 합니다.


마무리해보겠습니다. 내가 왜 일하는지, 왜 사는지 묻는 것은 더 이상 쓸데없는 없는 질문이 아닙니다. 단순히 생존하는 것 이상의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매 순간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아까 이야기한 제 친구가 모기업에 남아 임원이 될지, 신사업 TF로 가서 신규 자회사의 대표가 될지, 어떤 결정이 그에게 유리하고 불리할지 저는 몰라요. 자신의 남은 2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니까요.


그런 친구에게 묻습니다.
“왜 일하나요?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마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시리즈 1편

- 스타트업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는 당신에게 하는 조언


마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시리즈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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