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규 Jinkyu Park Sep 21. 2020

투자자 관계관리, 일의 우선순위부터 정하라

[스타트업 서바이벌 팁 #1] 세상에 알아두면 좋은 사람은 있다?

세상에 알아두면 좋은 사람은 있다?

"알아두면 좋은 사람이야~" 

아마 여러분들 모두 한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세상 사는 지혜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지혜가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창업가에게도 통용될 수 있을까요?


‘알아두면 좋은 사람인데’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


제가 창업한 스타트업은 최근 회사 운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엔젤 투자자들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펀딩 시점을 의도한 건 아니지만, 2019년 시리즈A 투자에 이어 최근 엔젤 투자까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시장 환경 속에서도 투자 유치를 통해 안정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경영자로서 투자자 한 분 한 분에게 감사한 마음과 함께 재무적 수익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물론 스타트업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이 망할 가능성(신용 리스크)과 오랜 기간 돈이 묶일 가능성(유동성 리스크)을 감안하고 투자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경영자 입장에서 신의성실하게 회사를 경영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해서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주지 못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부담감입니다. 저의 경우, 최소한 투자 원금을 투자자들이 회수하는 시점까지는 투자자들에게 빚을 진 기분입니다.



아무튼 며칠 전 투자자 중 한 분의 아쉬움 섞인 이야기(이하 complaint)를 중간에 소개해주신 분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 역시 이번 엔젤 투자에 참여한 투자자였고, 제가 이해한 complaint의 요지는 “앞으로 알아두면 좋은 사람인데 투자 과정에서 피투자회사로서 투자자에게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아 다소 당황스럽고 불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직접 전달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전해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complaint의 정확한 온도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투자자분이 느꼈을 서운함이나 제가 느낀 당혹감에 대해 말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다만 complaint을 전달한 투자자 분의 ‘알아두면 좋은 사람인데’라는 말 속에 숨겨진 “좀 더 관계관리(relationship management)에 신경 쓰면 좋겠다”는 메시지에 대한 제 생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결국 투자자가 원하는 것은 ‘친분’이 아니라 ‘수익’


알아두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관계를 쌓는 지혜는 통상적인 회사생활과 조직생활을 하는 분들에게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경영하는 창업가에게는 매우 부적절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가는 회사의 생존과 성장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아두면 좋은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 에너지를 흩뿌리는 것은 철저한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창업가에게 소모적일 뿐입니다.



당연히 투자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경영자의 기본 중 기본입니다. 하지만 ‘좋은’ 관계라는 것이 반드시 함께 식사하고 자주 어울리며 친분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투자자는 회사의 성과를 통해 재무적 수익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경영자를 원하지, 단순히 자신의 여가시간을 채워줄 경영자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영자로서 투자자의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핵심 본질이 충족되지 않으면 투자자와 피투자회사가 어떤 친분과 신뢰를 쌓는다 하더라도 말짱 도루묵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최우선 과제는 회사의 생존과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말전도(本末顚倒)를 경계 또 경계하자


종종 스타트업을 창업했거나 준비하는 분들을 보면 본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허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1) 자신만큼 해당 시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지인들의 가벼운 피드백에 필요 이상으로 용기를 얻거나 위로를 받는 사람과 2) 자신의 아이디어와 수익모델에 공감하지 않는 벤처캐피탈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해서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는 사람, 그리고 3) 정부지원 프로그램과 행사 등을 전전하면서 정작 사업의 본질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사람, 마지막으로 4) 투자 좀 받았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여기저기 보도자료를 뿌리며 이미 성공한 양 으스대는 사람 등 유형은 매우 다양합니다. 



결국 핵심은 회사의 생존과 성장입니다. 하루를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고 생산적인 하루를 보낸 것은 아닙니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사업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명함을 주고받았다고 해서 회사가 생존하고 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벤처캐피탈을 내편으로 만들 필요도 없고, 별의별 정부 행사에 다 참여할 필요도 없습니다.(벤처캐피탈과 정부 행사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본말이 전도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적 네트워크는 투자 유치의 본질은 아니다


스타트업 대표가 벤처캐피탈 네트워크가 풍부한 것은 당연히 펀딩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 인맥이 내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의 투자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인적 네트워크는 도움은 되지만 투자 유치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투자를 이끌어내는 스타트업의 본질은 사업 아이디어와 팀 구성, 수익모델, 실행력 그리고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느 스타트업 창업가보다 투자자 네트워크가 풍부하다고 자부했지만, 평소 알고 지내던 투자심사역들의 무수히 많은 거절 통보를 받았고, 결국은 처음 만난 미국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소개에 소개를 받으며 많은 벤처캐피탈을 만나려고 노력하던 시간에 회사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더라면, 어쩌면 훨씬 순조롭게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문해보곤 합니다.



투자자 분들이 들으면 서운할 수 있겠지만 회사 입장에서 모든 투자자가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더 큰 금액을 투자하고 회사의 성장을 위해 직접 기여하는 투자자와 소액을 투자한 단순 재무적 투자자는 동등하지 않습니다. 투자자가 서운하다면 유감이지만, 모든 투자자와 필요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 소통하는 것은 경영자로서 수용할 여력이 없습니다.


스타트업을 생각한다면 매 순간순간 주어진 자원을 가장 중요한 일에 사용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알아두면 좋은 사람’을 만나면서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마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시리즈 1편

- 스타트업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는 당신에게 하는 조언


마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시리즈 2편

- 기업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나? 아이디어, 자금보다 실행력이 우선이다


마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시리즈 3편

- 스타트업 팀 멤버 구성 시 반드시 알아둘 것들


마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시리즈 4편

-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잘하려면? 자신만의 '원씽' 찾기


마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시리즈 5편

- 스타트업 동업자의 조건, '필요'와 '신뢰'


마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시리즈 6편

- 감히 달라져라, Underdog 혹은 First Mover


마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시리즈 7편

- 투자자 관계관리, 일의 우선순위부터 정하라


마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시리즈 8편

- 스타트업,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자


박진규 대표의 레인지엑스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Underdog 혹은 First Mov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