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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두둑 Oct 22. 2021

마음의 연료가 바닥나다

서울 깍쟁이의 만만치 않은 강릉살이 기록 (프리퀄) 

아버지 세대는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고 믿었다.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버티면 사장님은 못되어도 차곡차곡 모은 퇴직금으로 치킨집 사장님이 될 수 있는 시대였다. 아버지 세대는 치킨집 사장님이 되기 위해 그렇게 강산이 두 번 넘게 바뀌는 동안 존버하셨다. 길 건너 하나씩 있는 흔한 치킨집 사장님이라도 괜찮았다.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응원하거나 위로할 때 치킨을 먹는 민족이니까. 


나의 어머니 신여사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일찍이 중국집 사장님 타이틀을 다시고 이후 한식당과 양식당, 분식집까지 운영하며 20년 넘게 휴일도 없이 악착같이 일하신 분이다. 성격이 강했던 주방장이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갑자기 출근을 안 했을 땐 가게문을 닫는 대신 주방에서 그 무거운 무쇠 웍을 돌리시며 직접 요리하셨다. 배달하던 오빠가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를 내고 잠수를 탔을때는 사고 배상은 물론 오토바이 대신 쟁반을 머리에 이고 배달까지 하셨다. 155cm도 못미치는 작은 키의 왜소한 신사장님은 식당 사장이라는 타이틀 하나 달고 산전수전을 다 겪으신 분이다. 


신사장님은 당신의 딸만큼은 식당일 하지 않고 한 회사에서 꾸준히 출퇴근하며 사는게 바람이라며 세뇌시키듯이 말씀하셨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밥벌이는 없다’

‘너만 힘든거 아니다’ 


그리고 이 말을 모토로 삼고 회사에서 버티다가 번아웃된 사람, 바로 나다. 


한 회사에서 8년 정도 다닐 때 즈음 번아웃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한 달에 400시간 가까이 일하던 나는 거의 매일 자정이 넘은 시간 막차를 타고 퇴근했다. 막차도 끊긴 날엔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날이 잦아 매월 쌓인 택시 영수증을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금요일 새벽에는 택시 잡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회사 근처 유흥가에서 장거리를 뛰기 위해 대기하는 택시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밤 12시 이후 20분 거리 퇴근길에 응답하는 택시는 없었다. 


중요한 행사 준비를 위해 생일 전날 밤을 꼬박 새우고 당일 밤 10시까지 일한 날. 생일 끝나기 2시간을 남기고 겨우 만난 남자친구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렇게 십 분 동안 목놓아 울었다. 문득 내 귀로 들리는 울음소리가 너무 어색하게 들렸다. 웬만해서는 소리내어 잘 울지 않는 내가 아이처럼 엉엉 운건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울음을 겨우 그친 후 더는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당장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꼬박 일 년을 더 일했다.    


내게 찾아온 번아웃의 첫 번째 증상은 무감각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도 기쁘지 않았다. 즐거움을 느끼는 중추신경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무감각 뒤에 무기력이 따라왔다. 언젠가부터 하루를 갱신하며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돌아 다시 제자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지울 화장을 할 기력이 없어 눈썹도 그리지 않은채 출근하기 부지기수였다. 밝고 수다스러웠던 내가 사무실에서 말수도 점점 줄어들고 점심시간에는 엎드려 있거나 창밖을 응시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흐르는 눈물이 나를 당황케 했다. 아무런 자극없이 눈에서 새어나온 눈물이었다. 무감각 때문인지 슬픈 감정도 들지 않았고 무기력 때문에 눈믈을 닦아낼 기운도 없었으며, 내가 지금 왜 우는지도 굳이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지금이다’


그렇게 번아웃 증세를 강하게 느낀 한 달 후 드디어 난생처음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부모님께는 말씀 드릴 수 없었다. 밤낮 휴일 없이 평생 일해온 분들이 나의 존버 애환과 번아웃 증후군을 이해할리 없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 후 다음 날 아침에도 출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부모님 몰래 회사를 그만 둔지 3개월 째 되던 어느 날, 더이상 아침마다 영화관과 서점에 가짜 출근을 할 수 없어 가족과 치킨을 먹다가 퇴사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저 사실 회사 그만뒀어요. 더 이상 버티면서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어. 떠밀리듯 출근을 하고 하루종일 내 몸과 마음을 연소 시키며 일하다 겨우 막차를 탈 땐 내가 재가 되어 없어진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살기위해 일하는거지 일하기 위해 사는건 아니잖아. 저 조금만 쉬고싶어요.”


닭다리가 내 머리로 날라올 것을 예상하고 움찔하던 찰나 엄마는 의외로 짧은 한숨과 함께 들고 있던 닭다리를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콜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그래” 라고 하셨다.


‘멀쩡한 회사를 왜 그만두냐’ ‘너만 힘든거 아니다’ 레파토리와 함께 잔소리를 퍼부을줄 알았던 엄마의 이어지는 의외의 한 마디가 내 코끝을 찔렀다. 


 “넌 버티면서 살지마. 힘들고 고달파도 참고 견디는건 엄마 아빠로 충분해. 넌 참지말고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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