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두둑 Oct 13. 2020

걱정은 사랑니 같은 것

나는 걱정하는 나 자신을 걱정하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왼쪽 상단 어금니 안쪽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사랑니가 잇몸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감각이 느껴졌다.


치과의 서늘한 공기,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기분 나쁜 약품 냄새, 여기저기서 들리는 전동 드릴 소리, 마취주사의 굵은 날카로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치과에 대한 기억은 냉동고에 보관되고 있었나 보다.


밖으로 난 사랑니가 아니니 잇몸을 째고 뽑아야 할 텐데,

엄청 아프겠지?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크게 수술해야 한다던데…


온갖 안 좋은 생각들과 걱정들, 치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며칠을 보냈다. 사랑니는 심지어 꿈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마취도 안 한 채 생 어금니를 뽑으려는 의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악몽을 꾸다가 새벽에 일어나 어금니의 안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치과를 찾았다. 치과가 있는 층의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내 기억 속 감각이 현실로 재현됐다. 공기, 냄새, 소리는 내 기억 속 그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어디가 불편하시죠?”

“사랑니가 잇몸 안쪽에서 나고 있는 것 같아요. 잇몸이 욱신욱신 아파요”

곧장 엑스레이를 찍고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침대에 누웠다.

“사랑니가 없는데요?
“네? 분명히 느껴지는데요?”

“왼쪽 윗니에는 사랑니가 없어요. 어금니 쪽 잇몸에 염증이 생긴 것 같네요. 앞으로 양치질 꼼꼼히 하시고 스케일링하고 가시죠”


순간 사랑니를 뽑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랑니 때문에 며칠 동안 걱정하고 두려워하다 힘들게 용기 내어 치과까지 갔는데 이 모든 감정의 대상이 실체 없는 나의 상상이었다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걱정하는 대상은 정말 사랑니 같았다. 그것은 진짜 존재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드러나 있기도 하고 때로는 숨어있기도 하다. 한동안 숨어있다가 점점 자라나 어느 순간부터 나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그 대상이 존재하든 아니든 사랑니 같은 걱정이라는 감정에 대응하는 방법은 온전히 나에게 달렸다. 그 감정은 앞으로 벌어질 일(혹은 그렇지 않을 일)과는 별개로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소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걱정하는 나 자신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 감정은 불현듯 찾아와 내 마음 한편을 차지할 수는 있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떠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에 쌓이는 걱정과 두려움에 대해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감정을 굴려 감당하지 못할 크기의 눈덩이로 만들어 나 자신에게 다시 던지지 않는 것,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고 기다리면 결국 그 걱정과 두려움은 녹는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