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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두둑 Sep 16. 2021

심리상담은 아직 사절입니다만(1)

갱년기를 관통하는 엄마의 내면에서 상처 받은 여린 소녀를 보았다. (1)

"심리상담에 대해 공부한다고? 그럼 심리상담 좀 해줄래. 나 요즘 마음이 너무 힘들어"

내가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하니 많은 지인들에게 돌아온 반응이다.

"아직 누군가를 상담해 줄 내공은 안돼. 한참 공부해야 해"

"그럼 나중에 꼭 상담해줘!"


그러고 보니 주위에 전문 심리상담사 또는 정신건강학과에 찾아갈 용기는 없지만 힘든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밥벌이에서 오는 고단함 또는 압박이든, 관계에서 오는 갈등 혹은 부적응이든, 누구나 애쓰는 밝은 모습 뒤 마음 한켠에는 어둡고 추운 방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혼자 앉아있는 외롭고 연약한 내면아이가 있다. 심지어 요즘 주위에 공활발작, 우울증, 범불안장애, 경계선 성격장애(일명 조울증)등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도 심상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심리상담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엄마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사소한 일에 화를 잘 내고 한번 끓어오른 화를 좀처럼 가라앉히기 힘들어했던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적당히라는 것이 없는 엄마는 화도 적당히 내는 법이 없었다. 어렸을 때 마트에서 딱 한 번 바비인형을 사달라고 졸랐다가 매서운 눈으로 날 쳐다보며 복화술로 "느 즈브그스브 (너 집에가서 봐)"라고 말할 땐 저승사자같이 느껴졌고 집으로 가는 길은 곧 지옥길이었다.


엄마와 대화할 때는 늘 지는 피구를 하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모진 말을 나에게 던지면 나는 그 공을 몸으로 맞아야만 했다. 던진 공을 잡아 되던지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엄마니까 딸에게 모진 말을 할 수도 있지만 딸은 엄마한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룰이었다. 어쩌다 반항심에 되받아치기라도 하면 그 공은 곧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결국 내가 화살에 맞아 마음의 피를 철철 흘려야만 끝났다. 게임으로 시작해 전쟁으로 마무리되는 이 지겨운 지옥의 피구는 잦아들기는커녕 최근 몇 년간 더 심해졌다. 더 큰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본인을 향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Photo by Noah Silliman on Unsplash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응 엄마"

"야. 심리상담 좀 하자"

아직은 상담을 할 수 있는 자격도 능력도 안되고 가족은 더군다나 감정이 섞이기 때문에 상담할 수 없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의 넋두리가 시작되고 나는 숨죽인 한숨과 함께 주섬주섬 이어폰을 찾아 한쪽 귀에 꽂았다.

최소 30분 이상 이어질 통화가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의 24시간 상시 대기 무면허 비공식 무료 심리상담사다.

날로 우울증이 심해지는 것 같아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자고 몇 번 제안해 봤지만 엄마는 한사코 나에게 말하는 게 제일 편하다고 했다. 우울증 약이 사람을 무기력하고 졸리게 만든다는 주위 이야기도 그녀의 정신건강학과 상담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였다.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는지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얼마나 무심한 사람인지, 타인이 얼마나 엄마를 무시하는지, 세상이 얼마나 엄마에게 가혹한지, 그로 인해 왜 사는지 인생이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나마 의미 없는 인생의 시간마저도 죽음을 향해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두렵다고도 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아무 의미 없다"

"이제 죽을 날만 다가오는데 이게 다 무슨 의미겠니"


처음에는 낯선 삶의 의미 타령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내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맨날 밖에서 사 먹지 말고 집에서 된장찌개 끓여먹으라고, 돈은 모으고 있냐고, 쓸데없는 물건 사지 말라는 잔소리가 익숙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대화의 중심이 나의 안녕이 아닌 엄마의 인생, 정확히는 엄마 삶의 의미 찾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갱년기인가 싶었다.


엄마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곳저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어쩌면 더욱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녀의 과거가, 그녀가 그토록 찾는 인생의 의미가 나 때문에 상실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엄마, 나 때문에 엄마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살았지"

"그래도 난 지금 너 하나 바라보고 산다"

순간 그 말이 묵직하게 내 어깨에 툭 앉았다.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난 엄마만 바라보고 살 수 없는데...'


나는 과연 그녀의 기대를 채워줄 수 있을까? 엄마의 아픔을 마주하고 보듬어 줄 준비가 되어있을까? 그 상처를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애당초 도와주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생각해보니 그동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내 문제가 더 급하다는 이유로 엄마와의 깊은 대화를 미뤄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랜 기간 동안 엄마와 감정 씨름을 하면서 연민이 고갈된 것 같기도 하다. 대화를 했다 하면 싸움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이어질까 두려워 긴 대화를 회피하고 싶었다. 내 말은 항상 곡해되어 엄마에게 화살로 꽂혔고 난 그런 뜻이 아녔다고 나 자신을 변호하기 급급했지만 늘 폭발하는 엄마의 분노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악순환이 이어지며 엄마와의 대화가 점점 두려워져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엄마는 분명 절벽 끝에서 나에게 S.O.S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절망감에 빠져있는 엄마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와 거의 매일 장시간 통화하며 자연스럽게 나는 엄마의 어두운 내면의 방으로 초대되어 함께 인생의 의미 찾기 여정을 시작했다. 도대체 엄마가 찾는 그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꼭 찾아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의 하루를 쪼개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이번에는 나의 색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최대한 엄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고 공감해주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함께 과거로 돌아가 그때 미처 풀지 못해 꼬여있는 감정의 실타래가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기로 했다. 이왕 대화가 낯설어진 거 나는 평소에 잘하지 않았던 엄마의 어렸을 적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그 당시 엄마가 느꼈던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엄마 어렸을 때 집의 분위기는 어땠어?"

"그때, 엄마의 기분이 어땠어?"

"그 당시 엄마에 대해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엄마는 웬일로 꽁꽁 싸맸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으면 들을수록 보이기 시작했다. 꼬일 대로 꼬인 인생의 미로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상처 받은 어린 소녀가. 어릴 적 부모님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로운 아이, 매서운 사회에서 밀리고 치여 인정받지 못해 의기소침해진 아이, 그리고 생활고로 인한 각박한 생활을 하며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한 내면아이였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마음의 생채기가 많은 사람은 무심코 던진 말을 가볍게 받아칠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아무리 하찮은 말과 행동이라고 그것이 상처 부위를 건드린 거라면 속절없이 아프다고 소리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엄마 내면에 상처 받은 그 아이를 일으켜 세워 안아주고 싶었다.  


"엄마 많이 힘들었겠다. 외로웠겠어."

"와 나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야. 진짜 강단 있고 용기 있는 선택이었네"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겠어."


진심으로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었고 이해해주고 싶었다. 가끔은 엄마가 모든 감정을 토해낼 때까지 묵묵히 듣다가 "괜찮아 엄마. 그래도 돼."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엄마는 가끔 울며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늙어서 노망 난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이따금씩 엄마의 내면아이와 연결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내가 그런 말에 상처를 잘 받나 보네"

"그래서 내가 툭하면 무시받는다고 생각하나 봐.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 없는데"


평소 같았으면 "이게 다 그 사람 때문이야. 나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지"라고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겨냥하거나 "내가 못 배워서, 못나서 그렇지"라고 본인에게 화살을 쏘던 엄마였다.

그런데 점점 본인의 감정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상처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상처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 분명 변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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