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 마이런
두 번째 풀코스, 다시 길에 서다
풀코스 1주일 만에 다시 달리기를 위한 길에 나섰다
이번의 대회는
새벽 강변 국제 마라톤 대회
오전 7시 시작되는 대회였고 대회가 열리는 한강공원 이벤트 관장에 30분 전까지 도착하기 위해 새벽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집을 나섰다
이 대회를 작년부터 눈여겨봤지만 참가 시기를 놓쳐 올해는 일찌감치 참가신청을 하고 기다렸다
1주일 전 풀코스 후
기록은 안 좋았어도 첫 도전이라는 긴장과 처음 느낀 피로감과
한 주 쉬고 다시 장거리 달리기에 나선다는 점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하프 정도의 거리를 달리고 중도 포기를 해야겠다는 (시작도 전에 포기를 먼저 하는) 해이한 정신머리로 제주에서 돌아왔는데
1주일 꼬박 쉬고 나니 피로도 풀렸고 슬금슬금 뛰고 싶다는 생각이 비집고 올라왔다
그렇다면 지난 대회의 처참했던 결과를 지우러 다시 나서 볼까
그런 마음으로 다시 이른 아침의 출발선에 섰다
10km 부분의 참가자가 가장 많았고 이 코스의 러너들이 점점 늘어나는 듯 하다
한강공원 이벤트 광장을 출발해 쭉 달려 방화대교 조금 못가 반환점이 나오고
다시 되돌아오다 성산대교 조금 못 미치는 곳에서 안양천 방향으로 빠져 고척을 지나
광명 어디쯤에서 반환점 통과
출발지로 돌아오는 에누리 없는 42.195km의 도전에 나섰다
출발!
시작은 상큼했다
조금 흐렸으면 좋았을 텐데 어찌나 맑고 쨍쨍하던지
그늘 없는 코스로 한강을 끼고 쭉 내달렸다
출발 후 2~3km를 지날 즘이면 당일의 컨디션을 알 수 있다
이때의 느낌은 '오늘 날 이구나'
기가 막히게 좋았다
갈 때는 그리 가깝게 느껴졌던 이 다리가 돌아올 땐 멀기만 해 너무 고통스러웠다
5km를 순식간에 통과했다
장거리를 염두에 두고 천천히 달리고 있었지만 발이 가볍고 호흡도 편안했다
지금껏 달리던 중 가장 좋은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10km 통과 시간은 평소와 차이가 없었지만 순식간에 지나간 듯 정말 즐기며 편안하게 달렸던 구간이었다
10km를 조금 지나 누군가 넘어져 부축을 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속도감 없이 달리는 나도 한 달 전 넘어진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데 힘 있게 달리던 분들의 타격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아 걱정됨과 동시에 발에 걸릴만한 것이 뭐가 있나 작은 돌부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눈이 갔다
가뿐히 반환점을 돌고 하프와 코스가 나뉘는 지점까지 꾸준한 페이스로 달려갔다
평소 10km 지점까지는 급수를 건너뛰고 있고 이번엔 하프에 해당되는 22km 정도까지 급수 없이 쭉 달려보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그늘 없는 초여름의 더위는 내게 물을 권하고 있었다
"마셔! 안 마시면 길에서 말려 죽일 거야"
15km 이후 첫 급수대에서 물을 마셨다
정신력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한 번 물을 마시면 다음 갈증을 참는 게 힘들다
이번엔 꾹 참고 한 번 정도는 건너뛰었지만 이후론 급수대를 발견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찾은 양 갑자기 발이 빨라지고 숨넘어가게 물컵으로 손을 뻗었다
심지어 이 대회는 장거리의 급수대가 부실했다
찬물을 적신 스펀지는커녕 나중엔 물이 떨어지거나 컵이 부족했다
제주에선 물과 스펀지, 뿌리는 파스는 필요한 만큼 제공받았었는데 여긴 파스도 부족했다
아, 진행 요원도 부족했다
무사히 잘 달려 20km를 통과했을 때 진심 뿌듯했다
작은 계획대로 하프 코스의 거리에 해당되는 22km(21.0975km)를 쉼 없이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이었다
하프에 도전하고 3번째가 풀코스 참가였기 때문에 하프를 미처 편안히 달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풀코스 달리기로 넘어왔고 확실히 성급했다고 반성했다
체계적인 연습 없이 도전한 미련한 결과였지만
풀코스 도전 자체가 나의 하프 코스 달리기 능력을 단번에 끌어올려 줬다
다시 달려도 하프 코스는 공포감 없이 내 페이스로 들어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목동 야구장을 지나치고 얼마 안가 우주선 뚜껑처럼 생긴 고척돔이 시야에 들어왔다
야구 보러 갔을 땐 그렇게 즐겁기만 했는데 멀리 떨어진 그늘 없는 길바닥에서 바라보자니 좋은 것도 모르겠다
25km 지점을 지나면서 힘이 훅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안 된다
30km까지는 어떻게든 끌고 가야 된다
풀코스 마라톤 훈련법 중 '거리주'라는 내용이 있다
풀코스 도전 전 꾸준히 하프 코스 달리기로 단련을 해야 함과 동시에 장거리 대비 훈련으로 30km를 달려 장거리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연습 내용인데 나는 이걸 건너뛰었다
속도까지 고려해야 하는 러너들은 대회 전 꾸준히 30km를 달려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유지한다고 하는데 그게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가늠이 안됐다
마라톤을 글로 배운 자의 경험치 한계다
이걸 왜 실제 대회에 나와서 훈련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게 필요한 것이 대회 안에 있었다
'강제성'
혼자 달리다 보면 어떤 날은 기분이 안 좋아서, 먼지가 많아서, 날이 더워서, 추워서, 좀 아픈 것 같아서
무궁무진한 핑계를 찾는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혼자 30km를 어디서 달리고 그 거리를 착실히 채운다는 보장도 못 하겠는 내겐 강제적으로 뛰는 방법이 최고의 훈련이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대회는 참가비를 지불하니 작은 족쇄가 되어 내가 쉽게 코스 이탈하지 못하게 붙들어 주지 않겠는가
30km까지가 내 한계였다
이후로는 다시 사정없이 걷다가 '이러면 안 되지' 정신이 들면 또 뛰는 무한 반복이었다
그리고 이 대회의 아쉬웠던 부분을 꼽는다면 앞서 말했던 급수대 문제뿐 아니라 이 코스 자체가 자전거길이라 꽤 위험했음에도 통제라던가 보안을 위한 인원이 전혀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풀코스 참가자가 굉장히 적었고 거리가 늘어날수록 주자 사이의 거리도 벌어졌지만 알아서 살아 돌아가는 시스템인지 그저 앞사람만 보고 따라 달렸던 것 같다
심지어 공원 다 들어와서 쉬러 나온 사람들, 자전거에 섞이면서 길을 잃어버렸다
엉뚱한 내리막길로 300m쯤 갔다 되돌아오면서 그만 뛸까라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혔었다
급수대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사이사이 공원 급수대만 보면 우물이라도 찾은 모양으로 달려갔다
수도꼭지가 어찌나 반갑던지 아리수 최고라며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자전거길이라고 했는데 역시나 다리 아래 냉커피 파는 커피 수레가 눈에 들어왔다
주머니에 천 원만 있었어도 ㅜㅜ
냉커피뿐 아니라 식혜에 사이다도 있단다
정말 돈이 있었다면 바로 달려가 마라톤 배번 달고 자전거 아저씨들 틈에 앉아 "커피가 맛있네요" 할 뻔했다
안양천 코스를 힘들게 빠져나와 원래의 한강 코스로 접어들었다
여기부터 7km만 가면 된다
기록은 이번에도 넘어갔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거리니 완주라도 하자
여기부턴 오기로 달린다
걷다 뛰다 하는 사이 아까 지나갔던 GS25와 이마트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저기에서 뭘 파는지 안다
그리고 돈이나 카드는 없지만 내겐 삼성 페이가 있다
정말 간절하게 '더위 사냥' 이 먹고 싶었다
영혼도 빠져나간 몸 껍데기로 마지못해 달리고 있는데 익숙한 비주얼의 친근한 뚱뚱이가 언덕 위에서 멋지게 자전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네
아♡ 우리 남편이다!!
한강 공원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무려 5km 지점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차피 어린이 자전거들까지 섞여 있던 도로라 이 아저씨가 자전거로 나와 동반한다 한 들 문제 될 건 없었다
얼음과 물을 사 와 시원한 물도 먹여주고
늦다고 지난번과 다를 것 없다고
어쩜 너는 이렇게 향상이 없냐, 느리다, 꾀부린다
엄청난 잔소리를 원 없이 쏟아내고 자전거 반납하러 가버렸다가 골인 지점 가까이에서 다시 만나 마지막 피니시 통과 지점까지 함께 달려줬다
그렇게 보잘것없는 기록으로 이번 완주도 성공이라면 성공했다
달리는 동안은 갈증, 그리고 다리의 힘이 부족해 거의 끌다시피 뛰고 걷는 고통에 몰랐지만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여기저기 하얗게 푸석거렸다
심지어 눈썹 끝에 하얀 염분 알갱이들이 송골송골 매달려 역대급 비주얼이라고 보는 사람을 박장대소하게 했다
시작은 7시였어도 12시에 들어왔으니 정수리는 뜨겁고 온몸의 물기를 다 쥐어 짜낸 듯 탈진한 상태였다
우는 게 아니라 짭짤한 몰골을 가리는 동작이다
풀코스에 욕심이 있어 일단 뛰고는 있는데 정리가 필요하다
경험한 대회 두 번은 6시간 마감이라 여유가 있었지만 국내 대회는 보통 5시간의 제한이 있다
이번 대회는 교통 통제가 전혀 없어 시간 여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들어왔을 땐 이미 자리 정리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대회를 즐기기엔 내 도착시간이 너무 늦다
대회를 즐기며 놀고 싶다면 하프로 내리던가 아니면 연습을 악착같이 해서 도착 시간을 당기던가 둘 중 하나다
(마음은 연습으로 기울었다)
나 대신 남편에게 놀아달라 부탁했다
동영상도 찍어서 보여주고 참가는 했으나 내가 경험 못하는 재미난 마라톤 대회를 즐길 수 있게 도와달라 했다
그 사이 나도 나름 노력을 해 속도를 붙이고 도착 시간을 당겨 뒤늦게 도착해 쓸쓸한 대회장을 마주하는 일이 없도록 분발하겠다
이번 대회의 반성과 정리를 하자면
30km 이후의 남은 거리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인데
이번 대회를 통해서 일단 30km까지는 극복이 가능하다고 접수됐다
10km당 한 시간으로 힘을 쏟아붓는다 → 도착까지 남은 12km는 걷뛰 하며 버틴다 → 4:40으로 들어간다
지금으로선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발전 없이는 지루하고 뻔한 레이스가 될 테니까 일단 버티며 연습하고 능력을 키워 더 나은 러너가 되는게 어떨까
실패도 성공도 아닌 이번 대회를 경험하며 좀 더 방향이 명확해진 느낌이다
(두 번째 대회여서인지 어쩐지 실패의 느낌이 크다)
...
두 번째 후기
남편이 말했다
"이제 큰 대회만 나가"
거드름이 아니라 진행에 불만이 있어 한 소리다
참가비는 또박또박 다 냈는데 어린이 자전거에 치일뻔하고 길 잃어 딴 세상 다녀오기도 하고
의외의 상황에서 다칠 수 있어 걱정되어 한 말이지만 쌓이면 경험이 된다고 이번 대회에 고마움이 있다
늘 생각하지만 마라톤이 보는 사람 입장에선 지루한 시간 싸움인데 끝까지 남아 급수에 도움을 준 학생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다음엔 좀 더 빨리 달려서 너네 퇴근 시간 당겨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