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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러너 Oct 22. 2019

꼴찌라도 마라톤

실패한 마라톤에서 얻은 교훈  / 2019 경주마라톤

마라톤이 일상의 일부가 된 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운동에서 오는 만족감은 내게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고 또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을 꿈꾸게 했다

스스로 할 수 있으며 결과가 눈에 보인다는 쾌감에 중독되듯 빠져들었다

세상의 모든 운동처럼 마라톤의 완주 성공 역시  참을성 있게 단계를 밟아가며 차곡차곡 과정을 쌓아가야 한다

내가 그 내용을 받아들였고 몸을 움직여 체득한다는 점이 신기해 견딜 수 없었다

운동은 다음 생에서나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이 진심으로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물론 다 좋을 순 없듯 운동엔 부작용이라는 것도 있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0월 20일에 있었던 경주 국제 마라톤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이 대회의 완주에 실패하고 말았다

완주 실패는 두 번째였고 첫 번째 실패와 똑같은 패턴으로 참가신청을 했던 풀코스의 딱 절반인 하프코스에서 달리기를 멈췄다

(한 번 전적이 있다)


원인은 다리 통증


마라톤 직전엔 잠을 잘 자고 충분한 휴식으로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하지만 전날 밤을 틈타 인천에서 경주로 이동을 하느라 꼬박 밤을 새웠다

피로감보다는 장시간 이동에 의해 뻣뻣해진 다리가 마음에 걸렸다

최근엔 통증을 거의 못 느껴 안심하고 있었는데 문제의 다리가 대회 당일 고장을 일으킬 줄이야

'달리는 중 상태가 심각해지면 어쩌지' 통증에 대한 걱정으로 평소보다 스트레칭도 꼼꼼히 하고 에어파스를 뿌리며 다리 상태를 살폈다

장에서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대회의 시작을 기다려 드디어 스타트

기대도 기다림도 컸던 대회가 드디어 시작됐다

이 대회에서 지금껏 달렸던 중 가장 좋은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하고 말겠다

인생 기록을 꿈꾸며 달려 나갔는데 300m도 못가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고 이내 들판에 지른 불길 마냥 순식간에 허벅지에서 종아리를 타고 내려가는 통증에 무릎을 굽히는 것도 펴는 것도 힘들어졌다

이제 막 출발했는데 기권해야 하나

이전에 시작하자마자 달리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참가자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이 달리기를 포기한데도 이런 이유가 있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밤의 고속도로를 타고 5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는데 이제 겨우 대회장 입구를 벗어나 할만한 생각이 아니지 않나

일단 참아보자

오히려 달리다 보면 나아질 수도 있으니 참고 가보자

남의 다리 타이르듯 하며 1km, 2km 앞으로 나아갔다

지방이긴 해도 대도시의 신문사가 주최하는 규모가 제법 큰 국제대회여서인지 거리엔 응원을 나온 시민들도 많았고 국내에서 대회를 뛰었던 중 분위기는 가장 좋았다고 생각한다

흥도 오르고 초반엔 힘이 있어 앞서가는 주자들에 크게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붙으며 달렸다

그 와중에 코스에 포함된 관광지들을 지나자니 이건 또 이것대로 달리는 즐거움이 됐다

첨성대와 대릉원을 달리는 코앞에서 보다니

'대문을 열고 나가니 집 앞에 첨성대가 있다'라는 상상에 당장 경주로 이사 가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다

 활기찬 분위기에 맑고 시원한 날씨도 잘 다녀오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10km를 57분에 통과 후 기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다음 구간을 머리에 그릴 찰나 문제가 생겼다

다리가 굳어버린 것이다

아프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완주 의욕은 통증에 잡아먹혀 버린 듯 무섭게 움츠러들었다

내 정신이 나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구나

통증을 무시하고 달려 나가지 못한 건 이미 한차례의 경험으로 후유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알고 있고 순간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리 통증이 생긴 후 예전처럼 꾸준한 달리기 연습을 하지 못했다

여름까지는 힘이 부족해 못 달렸을 뿐이지 아프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부상 이후로는 달리는 주기가 들쑥날쑥했다

대회에 자주 나가고 있어 강도 높은 달리기는 대회로 대신하고 있지만 아프다는 이유로 평소 운동엔 소홀했다는 것이 후회되는 한편 그간의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다만 핑계나 꾀병으로 치부하기엔 정말 아팠다!)

  

결국 달리기를 포기했다

경주까지 가서 포기하기엔 마음이 쓰리지만 이 날의 달리기는 사실 장기 계획의 일부로 일주일 후 다른 큰 대회를 앞둔 상태이기도 해 일단 몸을 보전하기로 했다

하프코스만큼의 거리를 달린 후 달리기를 끝냈다

기록은 2시간 17분

21km의 거리 중 5km 정도는 걸어서 들어왔지 않았나 싶은데 역시 하프코스 정도까지는 지금의 다리 상태로도 완주 성공이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드니 괜한 풀코스 욕심에 즐거웠을 마라톤 대회를 스스로 망친 것 같아 자책감까지 들었다

사람의 능력치엔 분명 차이가 있고 달리기에 있어 내가 남들만큼의 기능을 발휘해 적당한 시간에 완주를 하기엔 하프까지가 최선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자니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의 차이 실감에 낙담했다



다음날 한 달 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입장에서 나는 환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것 같지만 일단 마주했으니 지난 진료 때보단 좀 더 조언을 해주신다

첫 소견은 '달기기 후의 근육통'이었다

근력 운동이 덜 된 상태의 무리한 달리기에서 축적된 통증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음 쓰린 조언을 덧붙이셨는데 이 내용은 병명이라던가 진료에 대한 내용이기보다는 운동에 대한 조언이었다

일단 마라톤을 운동으로 권하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의 개인 의견이다)

운동 효과만을 놓고 봤을 때 유산소 운동으로써의 달리기는 10km 정도가 적당하며 하프코스 이상의 거리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하셔서 잠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또 달리기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허벅지 근력 운동이 필요하고 평소 스쿼트나 런지를 자주 하라고 하셨는데 이 내용은 최근에 다리 통증과 관련해 찾아본 대책과도 상통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달리기는 다리에 부담이 가는 운동이고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근력이 좋아야 한다는 누구나 다 알되 실천이 어려운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을 달고 진료실을 나왔다

사실 마라톤뿐 아니라 중년 이후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라도 다리 운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리를 제2의 심장이라 칭하는 표현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혈액순환에 있어 다리 근육의 역할이 정말 소중한 이유는 하체로 내려간 혈액을 다시 위로 올려주는 일종의 펌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근손실이 심해지며 하체에 힘이 없고 다리가 약해지는 현상을 '늙으면 다 그래'라고 치부하기엔 이 근육의 정도에 따라 건강한 중장년, 노년의 일상생활의 만족과 삶의 질이 정말 크게 갈리기 때문에 미리 운동을 통해 다져둘 필요가 있다

운동은 어려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편이 좋다고 한다

젊어선 별 차이를 못 느낀다 해도 이때부터 몸에 축적된 운동의 효과는 운동 능력이 저하된 중년 이후의 삶의 활기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데 당장 눈앞의 일이 아니다 보니 '운동해야 하는데'에서 흐지부지 흐려지고 마는 게 아닐까

통증으로 완주를 포기하면서, 또 병원을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무서워졌다

이제 겨우 운동할 마음이 생겼는데 이 재밌는 것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니

겨우 좋아하는 것을 찾았는데 역시 나이 들어서 시작한 운동은 그만큼의 어려움이 따르나 보다

달리기가 취미라고 하니 의사 선생님은 위로하듯 그럼 몇 년만 더 하란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그 몇 년이 대체 몇 년인데요?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시한부 선고부터 받은 기분이다

조금 더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하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번 마라톤 대회 참가지 중엔 굉장히 의미 있는 분이 계셨다

마라톤 500회 참가

72년생의 여성 러너분이셨는데 절로 마음의 박수가 나왔다

오랜 시간 꾸준히 달려온 그 분과 내 경우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타고난 능력과 체력 안배, 관리에 따라 저분과 같은 달리기도 가능하단 이야기인데 오랜 시간 단련된 러너의 다리를 탐내기엔 아직 크게 부족함을 느낀다

풀 마라톤에 도전하는 러너들이 10km나 하프 참가자에 비해 연배가 높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 이유라면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을 하기 위해선 경력에서 나오는 적잖은 달리기 연륜도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이제와서 기록 경쟁이 가능할 리 없고 애초에 그런 능력은 있지도 욕심 나지도 않지만 딱 하나 좀 더 오래 달리고 싶을 뿐인데 과욕일까

무리를 하지 않으면서 시간 안에 완주를 해내는 이분들의 실력을 본받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과 할 수 있는 능력 차이는 잘 알고 있다

잘하고 싶다고 해서 다 잘할 수 있다면 마음으로 하는 내기에 누군들 이기지 못할까

꾸준히 10년, 20년 달려온 오랜 러너들이 부럽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될 일이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나도 경력 20년 차가 되어있겠지

준비 없이 뛰어들어 좋아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조바심 내지 말자

그리고 다시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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