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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무덤덤하게 보내는 방법

by 임혜영

나에게 몸의 고통이 극에 달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니가 난 무렵 빈번하게 나타나는 부정맥을 견뎌보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참다가 반듯이 난 사랑니가 돌아갔다. 치과에 갔다. 나에게 이를 아주 강하게 물고 입을 다무는 습관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얼마나 강하게 무는 줄은 모르겠지만 부정맥이 있어서 그 고통을 참으려면 이를 악 물고 옆으로 누워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잔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멀쩡한 이가 돌아가는 것이 신기한 일이라고 했지만 과도하게 힘을 주어 이를 앙다물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다 멍청하고 아주 힘겹게 고통을 참아냈다. 이를 악 물고 아픈 상황에서 벌어진 모든 분노, 억울함, 고통을 누르고 눌러 참기만 한 것이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꾹꾹 눌러 담지 말고 멀리 내버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통을 무덤덤하게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고통을 공이라고 생각하며 이 공을 멀리 던진다고 생각했다. 이 고통이 잠시 후에는 내 앞에서 조금 더 멀리 갈 것이다. 나는 이 고통을 던진다 마치 공처럼 내 손에 있던 고통이 내가 던지면 내 발아래로 내 발아래에서 조금 더 멀리 그보다 더 멀리 공이 보이지 않게 더 멀리 가면 이 고통도 끝나 있을 것이다.


고통에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상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주말 아침에 편두통이 심하게 왔어도 다시 약을 먹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수박을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봉투를 사러가는 그런 일상을 잘 보내야 한다. 그러다가 문득 짜증이 올라온다. 두통으로 한번 게워낸 신물에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화가 난다. 그래도 금세 평정을 되찾는다.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고통이라고 다독인다. 내가 번 돈으로 낸 월세살이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노을을 매일 볼 수 있는 집에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글과 책을 읽고 쓰면서 살고 있다고 나에게 감사와 칭찬을 보낸다. 그래도 이런 삶이면 건강한 삶이라고 위로한다.


아침에 눈뜨면 심장약을 챙겨 먹어야 하지만 먹을 수 있는 약이 있고 치료할 수 있는 수술법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는 시간, 취업을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국에 내가 다닐 직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렇게 아파서 죽네 사네 했는데 사람 구실을 하고 사는 것에 그냥 나는 다 괜찮은 것이다 또 감사한다.


아픈 사람들이 괴로운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것에도 많은 이유가 있다. 통증, 살고 싶은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것, 가족, 돈 등등 그러나 심리적으로 가장 괴로운 것 중 하나는 이 고통이 끝나지 않고 평생 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일 것이다. 나아지지 않고 그렇게 죽어버려 끝이 나는 결말 말이다. 그러나 나는 심장의 고통이 내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 것이라도 이제 두렵거나 막막하진 않다. 그냥 하루를 열심히 살면 그 막막함이 사라진다. 내일 뭘 할지 다음 달에 뭘 할지만 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20대 초반 그 시기에 미친 듯 오늘을 살고 나니 하루를 견디고 나니 10년이 지났다. 곧 30대다. 또 10년을 살면 40대가 된다. 그렇게 살아가고 쌓아가다 잠깐 뒤를 돌아보면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지나온 길이 대견한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고통을 담담하게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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