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멘트] 김고은, 목표를 세우지 않는
목표 같은 걸 세우지 않는다.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면 그 뒤는 뭔가 너무 허무할 것 같다.
(배우 김고은, 2016년 2월 인터뷰中)
인터뷰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꼽자면, 첫 번째 질문을 하기 전에 서로 간의 어색함을 조금이라도 떨쳐내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형태의 가벼운 근황 정도의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것 역시도 '나는 너에게 이제 곧 질문을 줄줄이 쏟아낼 거야'라는 신호탄을 의무감으로 쏘는 것 같아 괜히 멋쩍을 때가 있다.
어?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카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순간, 김고은 배우가 뱉은 첫마디다. 제작발표회, 간담회 등 일대 多의 만남을 제외하자면 일대 일 인터뷰는 (내 기억에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나치게 흔한 얼굴 탓인지, 아니면 출연한 TV 프로그램을 봤던 것인지 그 정확한 답을 인터뷰가 다 끝날 때까지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대화 사이사이 "아~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어요?"라는 말이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긴 했지만, 오히려 그게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
우리는 그 아주 사소한 오해 덕분에 처음이라는 어색함을 미뤄둔 채 이미 알고 있던 사이처럼 속이 꽉 찬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치즈인더트랩>은 김고은 배우의 드라마 첫 출연작이자 주연작이었고,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모로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었기에 우리가 주고받을 문답은 아주 풍성했다.
정해진 시간이 다 되면,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인터뷰를 끝내는 사인은 다양하지만, 대개는 '앞으로의 일'을 묻는 방식을 활용한다.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작품, 앞으로 맡아보고 싶은 배역, 앞으로 배우로서의 목표, 앞으로 인생의 목표 등. 이는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인터뷰 내용을 기사화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매듭짓기 적합하다. 식상함이 버무려진 이 같은 기계적인 질문에 "목표 같은 걸 세우지 않는다"라고 돌아온 답변은 그래서 어쩌면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좋은 배우의 기준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다"는 말을 덧붙이며, 애초에 달라질 기준점을 붙들고 괜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겠다는 그 이야기가 좋았다. 이를 그날의 인터뷰 이후에도 몇 번이고 곱씹는다.
학창 시절, 집요하게도 계획을 세웠던 시절이 있었다. 어쩔 때는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 한 달 뒤, 일 년 뒤, 심지어 십 년 뒤. 지금 와 돌아보면 그렇다고 딱히 계획대로 이뤄진 게 없다. 목표라는 녀석이 어떤 식으로든 삶의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사실상 의문이다. 도리어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나'를 포기하고 고스란히 내어준 억울한 기분마저 든다.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나를 놓을 필요는 딱히 없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지금 철썩 같이 옳다고 생각한 방향이 나중엔 옳지 않은 방향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가급적 손이 닿을 정도의 단기 목표만 세우기'. 요즘의 내가 찾은 나름의 대안이다.
목표라는 것은 어떤 의무감에 떠밀려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가 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넌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라고 다그치듯 대답을 강요하는 작금의 세상에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그렇게 가만히 흘러가다 보면 자연스레 무언가에 가닿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