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멘트] 단 하루라도 박보검처럼
단 하루라도 박보검처럼
처음 작품에 임했을 때 "모두 다 주인공이다. 한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니깐 다 함께 '으샤으샤'하자"고 해준 신원호 감독님과 이우정 작가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가족들도 <응답> 시리즈를 정말 좋아하는데, 가문의 영광이다. (배우 박보검, 2016년 2월 인터뷰中)
착하면 손해 보는 세상, 호의를 베풀면 호구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본인의 경험, 혹은 지인과 동료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 그게 꼭 아니더라도 인터넷과 SNS를 떠도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힘을 모아 '마음 독하게 먹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시대다. 착한 고객은 호갱이 되어 지갑을 열어 돈들의 외출을 독려할 뿐인 존재로 비추어진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심하면 더 심했지.
혹시라도 착한 사람이 보이면 주변 사람 모두가 달려와 충고하듯 조언한다. "여기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곳이다"라고. 이기적으로, 여우처럼, 성공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야 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이미 성공한 이쪽 업계 사람들이 모두 다 그래 왔다고, 실명을 끄집어내 친절한 예시를 들어가며 긴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결론은 항상 "그래서 넌 이렇게 살면 안 돼!"가 된다.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내기 어려울 만큼 쏟아져 들어오는 방대한 이야기의 물량에 결국 몽글몽글한 마음을 저 안쪽 깊숙한 곳에 꽁꽁 싸매 숨겨놓게 된다. 손해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누구도 호구를 자처하고 싶진 않으니깐.
박보검 배우를 만났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을 끝내고, '꽃보다 청춘-나마비아' 편을 찍고 귀국한 다음이었다. 지나치게 예의 바르고, 따뜻하고,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다해 또박또박 이야기를 이어갔다.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했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신기했던 것은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오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둘러싼 성공의 원인을 모두 주변 이들에게 떠미는 모습이다.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를 비롯해 함께 호흡했던 배우들을 향한 격한 칭찬과 고마움을 한가득 쏟아냈다. 삐뚤게만 세상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응팔>에 출연한 것을 놓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문의 영광"이라 말하는 것을 듣고 좀 과도한 겸손이 아닌가 하며 진정성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확실히 우리의 직업병이다.)
그날 인터뷰 이후에도 박보검을 둘러싼 미담이 쏙쏙 귀에 수집됐다. 차기작 KBS 2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또 대박이 났다. 해당 작품이 끝나고 <응팔>의 신원호 PD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박보검에게 오는 연락들에 대해서 우연히 듣게 되었다. "덕분에 <구르미 그린 달빛>을 잘 끝냈다고 연락하고, 감사하다고 계속 문자가 온다. 아니, 그 드라마 잘 된 게 왜 내 덕이냐?"라고 툴툴거리면서도 기분 좋게 웃는 신원호 PD를 보면서 박보검의 그 마음과 태도를 향해 겨누었던 의심을 완전히 걷어내기로 마음 먹었다. 박보검의 그 착함은 '찐'(*진짜)이라고. 착한 사람은 결국 성공의 문턱을 밟지 못하고 사라지기만 했다는 이 연예계에 '박보검'이라는 배우의 존재는, 그 자체로 충분히 중요한 의미다.
"독해야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자의든 타의든) 모아서 곳곳에 배포하는 행위는, 어쩌면 스스로 옳지 않다고 여기는 언행이 생성하는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착하거나 나쁜 것은, 성공 가능성을 뒤집을 만큼 중차대한 요소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니 '평생'은 아니라도, '단 하루'라도 박보검처럼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보면 어떨까. 잘생긴 얼굴 말고, 따뜻하고 겸손한 그 마음씨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