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새삼스럽지 않을 입김을 내며 카페에 들어섭니다.
그 밤에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잠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죠.
잠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잠을 자야만 하는 상황인데.
추워도 어느 정도 북적이던 카페 정원은 고요합니다.
바람만 정원을 훑어갈 뿐.
하얀 눈이 앉아 사람의 온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커피는 이런 운치에 어울릴 듯해서 그 밤에 마셨나 봅니다.
잘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고요가 감도는 겨울밤은 정적입니다.
한순간의 여유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지친 하루의 여파로 측은한 자신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굳이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뭔가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데 말이죠.
한 소설가는 작품에서 화가가 까마귀를 바라보며 하는 말을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이 검디검은 새는 조금만 힘을 줘도 죽음에 너무 가깝게 들러붙었다.
그 느낌을 아예 없애긴 어렵겠지만,
삶을 향해 날아오르는 기운을 담고 싶었다.
까마귀 역시 매일매일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존재가 아닌가.”
영혼 없이 ‘화이팅!’을 외치는 게 싫습니다.
살아남고자 하는 몸부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몸부림은 애처로운 게 아닙니다.
삶의 민낯이자 솔직함이죠.
그렇게 우리는 엎어져 있다가도 일어서려 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나 불던 바람과 눈보라가 어느새 자취를 감췄습니다.
햇살은 다시 일어나 걸으라고 온누리를 비추네요.
주섬주섬 옷과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야겠죠.
까마귀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지 말고,
반가운 눈웃음이라도 보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