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드 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해가 저문 가을밤,
저마다 안식처를 찾아 떠나버려 텅 비어가는 광장.
한때는 사람들로, 노점들로, 뛰노는 아이들로 가득했을 아케이드는 고요합니다.
한적한 곳의 고요는 현실을 망각하게끔 합니다.
밤은 은밀히 찾아와 저 멀리 떼어 놓은 상념마저 데리고 왔습니다.
애써 떨쳐내려 해도 달라붙는 생각의 찌꺼기들은 현실의 삶입니다.
우뚝 선 채 바라보다가 겨우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러고 나서 주위를 다시 둘러봅니다.
여유로운 저녁 산책길을 노닐던 주민들은 그새 자취를 감췄고 바람마저 숨어버렸습니다.
고요한 낯선 도시의 가을 저녁.
지금도 어딘가 낯선 곳으로 가면 마주치는 적막감.
그때도 지금도 가을입니다.
그러나 사뭇 다른 가을이랍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예상하지도 못했던 가을을 겪는 중입니다.
역병이 돌고,
기술은 그새 또 새로운 세상을 예고하고,
예상치 못한 추위가 찾아들고.
그런데 원고는 더딥니다.
나 혼자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하지만,
나 또한 새로운 공부를 시도하고,
오랫동안 묵혀 놓은 원고를 만지작거립니다.
가을은,
한박자 쉬어가며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혹한의 겨울을 맞이하라고요.
그런데 갑작스레 덮친 추위는 이런 시간마저 주지 않습니다.
금세 닥친 추위에 적응하느라 자신을 바라볼 시간조차 말 줄임표에 가둬버립니다.
이럴 때는 두 손 비비며 자리에 마주 앉아 흐릿한 미소라도 나눠야 하는데,
세상은 그마저도 조심하라고 합니다.
그러니 써야겠습니다.
말로 하지 못할 이야기는 글로 써야 합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겨울이 글을 쓰게 합니다.
뜬금없이 찾아온 겨울이 생각을 이어가게 합니다.
그러니 써야죠.
그래서 나눠야죠.
그게 고독이든 지혜이든 나눌 때 글쓰기는 완성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