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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연 Dec 03. 2023

중독자에게 중독된 사람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일 뒤, 가족들은 그가 불에 타는 장면을 바라보며 그의 인생을 논했다. 60년간 지켜본 사람들이 내린 총평은

참 특이한 사람이긴 했어.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어서'라는 말이 있다. 어릴 적으로 돌아가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세상 눈치 보지 않고 살아보고 싶어서.


그 역시 그랬다. 밤이 되면 유년 시절 하지 못한 어리광을 가족들에게 마음껏 부렸다.

엄마는 아빠가 조금 아픈 사람이니 우리가 조금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딸은 감히 그를 미워할 수도 없어 애꿎은 침만 꿀떡꿀떡 삼켰다.




그렇게 그의 생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새삼스러운 생각이 하나 스쳐갔다.


'원래 친척들이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이었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렇게 대해주는 건가?'


어머니에게 물으니 '그걸 이제야 깨달았구나'라는 표정이다.


네 아빠랑 있을 때는 또 무슨 사고가 터질까 노심초사하느라 몰랐던 거지. 원래 그런 사람들이야. 되게 따뜻하고 착해. 아마 너도 아빠만 보느라고 친척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신경도 못썼을 거야.



알코올 중독자에게 중독된 가족들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들은 알코올중독자와 함께 살면서 예측할 수 없는 음주 행위, 또 음주 후에 나타나는 폭력 등의 문제 행동 등에 반응하면서 적응해 가다 보니 점차 자신보다는 알코올중독자의 행동에 더 집중한다. 즉 알코올중독자가 술에 중독되어 있듯이 가족들이 알코올 중독자에게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 김명아, 알코올중독 아버지와 사는 자녀의 경험, 2001


부모가 어리광을 부리는 동안, 자식들의 신경은 온통 그에게로 향해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무슨 상황에 처한 것인지 알아차릴 틈도 없다. 그렇게 아이들의 세상은 '중독자에게 중독'이 된 상태로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버린다.


언제 벼락이 들이칠지 몰라 항상 신경이 외부로 곤두서 있는 아이들에게 ‘평온함’이란 이 세상에 없는 단어다. 생존을 위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내면을 느끼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가 아닐까. 그 모든 것을 느끼는 즉시 더 큰 악몽을 꾸게 될 것이 분명하니 그냥 마비된 채 살아가는 수밖에.


몸으로라도 마음에 가닿고 싶은 사람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미친 듯이 운동과 일에 빠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시선을 훔쳐갔던 사람이 사라지니 그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몰라 나는 다시 침만 꼴딱 꼴딱 삼켜냈다.


그런 나에게 '요가'라는 또 다른 중독이 찾아온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인 셈이었다. 힘도, 유연성도 없는 몸뚱이를 가지고 고난도의 동작을 반복하는 것은 어쩐지 지금 내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삶을 유난히 열심히 살던 과거의 패턴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라는 점 역시 나의 머나먼 치유 여정에 반드시 필요한 친구였다.


사람들이 명상으로 선(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불교수행)에 다가가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몸으로 접근하면 조금 수월해하더라고요.


함께 요가를 배우는 스님은 우리가 마음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기 때문에, 몸을 통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느껴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몸'이라는 안전지대. 곧바로 마음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 자신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 내가 지금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부터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도 있어야, 비로소 나라는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토록 우리를 뒤흔들었던 당신이 떠난 후에야 묻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심지어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지.


지금 여기에 있는 내 마음에 가닿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두렵다. 아니, '마음'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지 못하는 이도 적지 않다. 특히 유년시절, 어리광을 부리며 자신을 마음껏 느끼고 표현해 보지 못한 사람일수록.


이제라도 배워보려 한다. 건강하게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방법을. 그렇게 나라는 인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을.


지고 태어난 이 몸뚱이 하나라도 평안으로 이끄는 길. 그 길을 걷기 위해 오늘도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매 순간, 나는 나 자신과 얼마나 접촉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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