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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찬영 Dec 10. 2023

요가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그려진다

장례를 마치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회사 헬스장.


5시 기상. 6시 출근. 태어나 처음으로 새벽 운동을 나섰다. 미친 듯이 러닝머신을 달리기 시작했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 보여요?


회사에 복귀해 일에 열중하자 동료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게요.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까요.


좋은 회사에 취직해 뛸 듯이 기뻐했지만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 내내 제대로 울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매진하기 시작한 일상.


한 달 정도 되었을까.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한 뒤 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생애 처음으로 5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기록을 경신했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 체력은 늘어나는데, 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근육통이 아니었다. 삐걱삐걱. 걸어 다니는 것이 불편하기 시작했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요가를 해보는 건 어때?


여기저기 알아보니 골반이 틀어진 채로 너무 많이 달린 것이 문제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가 권한 것은 바로 요가. 체형 교정에도 좋고,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에 아주 적합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필요해 보인다고.




업무 특성상 새벽 운동 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오전 7시 30분이면 운동을 마쳐야 하는 나에게 찾아온 요가는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


혼자서 정해진 순서를 반복하는 이 요가는 아주 악명 높은 운동량을 가지고 있었다. 기이한 동작을 이어나가며 전체 시퀀스를 모두 마치면 1시간 40분이 흘렀다. 태어나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린 적이 있었나. 수련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면 팔다리가 후들거려 키보드를 치는 것도 힘에 부쳤다.


"아쉬탕가 수련 하다 보면 회사 생활이 편해져. 너무 힘들어서 화낼 힘도 없어지거든."


아쉬탕가 요가를 20년간 하셨다는 원장 선생님의 명언에 나는 헛웃음이 터졌다. 사실이긴 했다. 가끔씩 요가를 마치고 회사로 가는 길이 이게 출근을 하는 건지 퇴근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분명 달리기가 너무 힘들어서 택한 운동인데... 나는 다시 '미친 듯이 움직이는' 굴레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힘든 수련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 요가원을 향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붙잡고 차투랑가(푸쉬업)를 반복했다. 아마도 나는, 무언가 아주 많이 잊고 싶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요가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좋아하는 배우, 문숙 선생님의 말씀이 잊히질 않는다. 유튜브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요가를 하는데 숲 속에서 나무들과 함께 대화를 하며 팔다리를 쭉쭉 뻗고 있었다.


그녀는 요가가 꼭 정해진 틀이나 고행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아마 그녀가 내 모습을 봤으면 분명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애쓰면서 살아요?


동반 중독자(coaddict), 돌보는 자(caretaker), 구출자(rescuer) 등으로 불리는 동반의존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통과 역기능적인 행동의 유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알코올 중독자의 자녀들은 출생순위에 따라 각자의 역할이 다소 차이가 난다.

첫째, 가족의 영웅: 과잉 성취자로 가족의 고통에 책임감, 부적절감 및 분노를 느낀다.

둘째, 가족의 속죄양: 위축되고 파괴적이며 무책임한 방식으로 화, 외로움 및 거부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며, 없는 듯한 자식의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셋째, 마스코트 역할: 가족체계에 웃음과 유머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가족의 마스코트, 이 자녀는 미성숙하고 불안전감, 혼란 및 외적인 광대 짓 속에서 외로움을 경험한다.

- 고병인 저 「중독자 가정의 가족치료」


첫째 아이로 태어난 나는 전형적인 '가족의 영웅' 역할을 맡고 있었다. 과잉 성취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에 시달리는 이 아이는 부모의 기대를 한껏 안고, 자신이라도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가족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책임감을 안고 살아간다.


새벽마다 나서는 요가원은 분명 그 쳇바퀴의 일부분이었다. 물론 아쉬탕가 요가를 한다고 해서 누구나 이런 굴레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귀신에 들린 것처럼. 이걸 하지 않으면 누군가 벼랑 끝에서 나를 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는 이게 정말로 필요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땐 그랬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었고, 분명 그 굴레를 통해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요즘은 '무의식'이라는 말이 마치 절대 순응해서는 안 되는 힘처럼 비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비록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을 지라도, 남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치는 행동일지라도 모든 무의식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중요한 것은 결핍이 아니다. 그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선택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그 행동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질 때가 오면 과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보려 하는 것.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또는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행위다.

-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정신과 의사이자 영적 안내자인 스캇 펙은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과거에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린, 그 행동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 그렇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점점 확대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드디어’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이제는 물어야 할 때임을 직감한다.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던 것이 맞느냐고. 새벽마다 매트 위에 홀로 서 내가 진정으로 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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