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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찬영 Nov 26. 2023

애도 없는 장례를 치렀습니다

입사 첫날, 상사는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바뀌기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때에요. 뇌신경 회로가 그때 막 흔들리기 때문에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가 쉬워요."


상사의 말에 따라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온 마음을 쏟고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알코올에 의존하던 그는 음식을 거부하며 사실상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억 속 아버지는 평생 죽음을 준비하던 사람처럼 보였다. 아마 그런 당신을 보며 나는 매일매일 장례를 치르고 있었던 것 같다.


장례식 안 할 거야. 유골도 자연장으로 처리하자.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엄마는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무덤도 마련하지 않았다. 화장을 하기 전까지 가족들은 아버지를 병원 안치실 냉장고에 넣고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지인들에게는 코로나로 인해 빈소가 없으니 양해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발인 전까지 어느 누구도 엉엉 우는 이가 없었다. 아빠의 시체가 불에 타는 것을 보고 난 뒤에야 엄마는 울며 소리쳤다. 왜 그렇게 자기를 힘들게 했느냐고. 도대체 뭐가 미워서 그렇게 괴롭혔느냐고.


그렇게 장례식 없는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날. 불현듯 깨달았다. 드디어 내 인생의 한 챕터가 끝이 났다는 것을.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 보여요?


장례가 끝나고 회사에 복귀하고 사람들은 간간히 이런 말을 건넸다. 장례식이 끝나고 몇 주가 지난 뒤, 연말 회식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이야기했다. 슬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지어낸 말 절반, 진심으로 그러한 것이 절반인 말이었다. 이 와중에 아버지의 죽음을 팔고 있다니. 나의 애도에는 확실히 슬픔이 없었다.


나는 지금 밑바닥까지 절망에 빠져서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울적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더는 그렇게 견딜 수가 없어서 그만 ‘허물어지고’ 만다.

-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애도라는 걸 해보기 위해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어 보기도 했다. 어머니를 여읜 작가의 지독한 슬픔에 모든 문장이 축축했다. 그와 비교하니 나는 불효녀가 분명했다. 이렇게 잘 지내도 되는 건가. 그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괜한 부끄러움과 함께 뱃속이 메슥거렸다.


드디어 그가 죽었다


'드디어'. 부모의 죽음에 절대 붙여서는 안 되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만한 단어가 없었다. 누구도 쉽게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모두의 입에 맴돌았던 그 말.


하지만 적어도 나만은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 자신의 딸을 아주 많이 사랑했다. 매일매일 술에 취한 손가락으로 보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가끔은 1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와있기도 했다. 부모의 진실된 사랑과 중독자의 왜곡된 애착이 촘촘하게 엮인 그의 눈빛에 나는 아주 오랫동안 혼란스러웠다.


마침내 그가 세상을 떠났다. 슬픔과 해방감. 도저히 하나를 고를 수가 없어 내가 선택한 것은 '마비'였다. 나는 도저히 어디로 허물어져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그저 '침착'하기로만 했다.


사실 중독자의 자녀가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온몸을 덮쳐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수많은 감정의 덩어리를 꾹꾹 눌러 어딘가에 담아두었다. 아마 사람들은 그것을 무의식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렇게 잔뜩 억누른 마음을 끌어안고, 새벽엔 매트 위에서 몸을 굴리고 낮엔 회사에 온 마음을 바쳤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주 열심히, 열심히. 그러나 진짜 보아야 하는 것에는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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