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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찬영 Nov 19. 2023

당신이 죽은 뒤에야 시작하는 요가

1년 전, 남편이 죽었어요. 췌장암으로요.


수련이 끝나고, 요가원 바닥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한 남녀. 그리고 시작된 갑작스러운 고백. 


“혹시 남편분이 돌아가신 거랑 요가를 시작한 거랑 관련이 있어요?”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시작한거에요.”

“저는 그랬거든요. 갑자기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이 연달아서 죽었어요. 그리고 요가를 시작했죠.”

남자는 덩달아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심지어 죽음의 이유도 같았다. 췌장암.  


'저도에요. 얼마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요가를 시작했어요.'

나도 그랬다. 다만 사인을 말하고 싶지 않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코로나로 인한 폐렴. 사망진단서에 적힌 그의 병명.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의 사인이 알코올이라는 것을.


무심코 대화를 나눈 세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어쩌면 그곳은 더이상 고인의 무덤 위에서 울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을지도.  


새벽 5시 30분, “요가 다녀 오겠습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아무 생각 없이 주섬주섬 요가복과 출근복을 챙겨 대문을 연다.


6시 30분. 회사 앞 요가원에 도착. 정해진 시퀀스에 따라 혼자 동작을 이어나가는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하다보면 어느덧 온몸은 땀으로 범벅되어 있고, 시계는 8시를 가르킨다.


어느날 거실 청소를 하는 나를 보고 아빠는 소파에 누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참 게을러. 구석구석 잘 닦아야지 그렇게 대충해서 되겠니.


소파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그게 할 말인가. 화가 난 나는 보란듯이 더 대충 청소를 한 뒤 툴툴대며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정확했다.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나는 학창시절 체육 과목에서 전교 최하의 점수를 받기 일쑤였다. 심지어 수업을 안나오는 학생 보다 낮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주 5일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도 최고강도의 운동으로 알려진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 1시간 30분의 수련이 끝나면 손과 다리는 바들바들 떨려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심지어 그의 죽음까지도.




나는 왜 갑자기 월화수목금 새벽마다 요가원으로 향한 것일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장 동료는 출퇴근 시간마다 지하철에서 울음을 삼킨다던데. 애도할 틈도 주지 않는 극한의 운동을 1년이나 반복한 것에는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었다.


1미터 남짓의 공간에서 혼자 몸을 허우적대는 것이 전부인 시간. 매일 아침 벌어지는 그 분투 속에서, 사라진 아버지의 죽음은 과연 치유였을까, 애도일까, 아니면 그저 망각일까.


수많은 의문을 뒤로하며 오늘도 매트 앞에 선다. 적막을 뚫고 하늘을 향해 뻗는 두 손과 묵묵히 뿌리 내린 두 발. 그 자체로 하나의 기도가 되어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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