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파열음. 그 풍경화
교실의 표정은 다채롭고 변화무쌍하다. 흥미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칠판을 바라보는 얼굴도 있고, 답답함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도 있다. 흥미와 답답함. 어울리지 않는 이 감정들이 무한히 교차하는 곳이 학교다. 그래서 학교의 맨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자세히, 그리고 오랫동안 그 풍경을 응시해야 한다.
반면, 미디어가 전하는 학교의 풍경은 시시각각 변화해서, 오히려 그 실체를 알 수 없게 만든다. 어떤 날은 입시경쟁이 지배하는 잔혹한 지옥이었다가, 또 다른 날에는 친구 간의 우정이 가득한 낭만적인 곳으로 변한다. 자격 미달의 교사들이 학생들을 망치는 곳이었다가 어떤 때는 헌신적인 교사가 학생들을 감화시키는 곳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미디어는 학교를 늘 다른 얼굴로 그리는데,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미디어가 학교를 자세히 살피지 않는 건 관심과 흥미를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특별한, 혹은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면 미디어는 다루지 않는다.
‘학생들이 등교해서 수업하고, 특별한 일 없이 하교했습니다.’
이 문장은 기사가 되지 못한다. 학교의 실상이 대부분 이 문장 안에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미디어가 전하는 단편적인 기사와 영상들은 학교의 맨얼굴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 책은 학교가 가진 다양한 모습 중 ‘균열의 풍경들’을 묘사한 풍경화의 모음집이다. 이 책 역시 학교의 모든 얼굴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늘의 학교가 가진 균열과 파열의 실상만큼은 최대한 담아내고자 했다. 우리는 그 균열의 풍경을, 불편함을 감수하며 바라볼 필요가 있다. 조금이라도 나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여러 ‘학생 A’가 등장한다. 우울에 빠진 A, 무기력한 B, 도박에 빠진 C 등. 이들은 학교가 가진 균열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교사인 필자가 보고, 듣고, 마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가상의 인물이다. 특정한 누군가는 아니지만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학생들이다. 이 책에 묘사된 여러 가상의 학생들이, 오늘의 학교가 지닌 균열의 실상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학생들을 만나고, 또 살펴보았다.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우리 사회, 그리고 학교가 가지고 있는 구조 속에서 차츰 A, B, 혹은 C가 되어 갔다. 그것은 범람하는 디지털 기술, 극심한 경쟁체제, 돈에 대한 끝없는 욕망 같은 이 세상의 차가운 바람이 만든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글들은 대부분 ‘개인’에서 ‘학교와 세상’으로 확대되는 방식으로 쓰였다. 그 과정에서 학교의 공기를 메우는 여러 감정, 구체적인 대화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장면과 대화는 재구성의 결과이지만, 거의 모두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과거에 다녔던 독자라면 그 장면들에서 어떤 기시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학교의 현실에 담겨있는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외딴섬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일부다. 학생들도 당연히 그 안에 속해 있다. 우리는 학교를, 우리 사회에 살아가는 모두와 연결된 인간들의 모임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여러 갈래의 균열 위에서 비틀대는 학교를 향해 다 함께 손을 뻗을 수 있다. 이 책은 학교에서 우리 사회에 내미는 하나의 손길이기도 하다.
현재는 주어져 있지만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여기저기 금 가버린 학교가 붕괴로 치닫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부족함으로 가득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과 함께 상상해 보았으면 한다. 이 책은 교사의 이야기이지만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학교를 걱정과 관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균열된 학교를 묘사하는 손가락은 무겁다. 그러나 미래를 향한 상상은 가볍고 자유로웠으면 한다. 그 안에는 비틀거리는 학교를 잡아 줄 든든한 닻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이제 대화를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