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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책도 학교를 바꾸지 못했다-2

교과서가 없다

by 소소인

교과서가 없다


교과서는 학교 수업의 기본을 이루는 핵심적인 교재다. 교사들은 교과서를 보고 그 교과가‘무엇을’다루는지 이해하고,‘어떻게’다루어야 할지 고민한다.


최근 몇 년간 학교에는 새로운 교과목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런데 이 교과목들을 수업 할 교사들은 그 교과서를 대부분 2월이 되어서야 처음 받아보았다. 3월이면 개학이고, 3월 2일에는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한다. 3월 3일에는 정상수업 시작이다. 그런데 그 수업을 담당할 교사들은 교과서를 수업 시작 보름 남짓 전에야 처음 접한 것이다.


교과서의 늦은 개발과 보급은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 교육과정이 바뀌고 새로운 교과서가 발행될 때마다, 새 책들은 개학 직전에야 학교에 도착했다. 늘 생각했다.


‘1년만 시간을 주면 안될까.’


부끄럽지만 나는 처음 본 교과서의 내용을 곧바로 파악해서 수업에 적용할 정도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감히 예상컨대, 나 이외의 많은 선생님들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교과의 내용을 파악하고, 수업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1년 정도면 조금이나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중요해서 1년이 시급할 만큼 빨리 배워야 하는 교과목을, 아직 나는 보지 못했다.


숙의 없이 질주하는 정책들


섣불리 만들어진 정책들은 정치적인 상황, 혹은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빠르고 과감하게 추진된다. 교육 정책은 대부분 몇 개의 학교에서 ‘시범학교’의 형태로 초기 실험을 거친 후 전국적으로 확대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범학교를 운영한다는 자체가 이미 전국적인 확대를 전제하는 것이다. 고교 학점제나 AI 디지털 교과서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어서 유명해진 정책들은 모두 이런 절차를 거쳐 전국에 확대되었거나, 또 그렇게 될 예정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우려를 가장 크게 가지고 있는 정책은 단연 AI 디지털 교과서의 보급이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콘텐츠는 충분한 검증의 시간을 거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디지털 매체가 종이책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데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 매체를 교육의 매체로 활용했던 북유럽 국가들은 이 정책의 부작용을 경험한 뒤 그들을 폐기하고 있다.


성공의 경험은 없고 실패의 사례는 널리 존재하는 이 정책이 전국의 학교에 적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급식의 경우, 식사를 한 10명 중 1명만 탈이 나도 학교에 민원이 빗발친다. 그런데 전국의 AI 디지털 교과서가 학생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도 정부는 이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일 모양새다.


애석하지만 이 교과서는 학교에, 그것도 전국의 학교에 보급될 것이다. 지금까지 정책들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또 시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관료제 아래의 실적주의 앞에서 당사자들의 의견은 ‘비효율을 만들어내는 소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람이 없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의 정책은 상명하복식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이 결정되고 예산이 편성되면 그 실행도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책이 추진되려면 그것을 추진하는 주체, 즉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은 전문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들은 예산은 있되, 그것을 추진할 전문적인 인력과 부서는 따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학교의 업무 부서 중 하나에 예산과 정책이 투하되는 방식으로 정책이 추진된다. 그래서, 새 정책은 새 업무일 따름이다.


이 아이러니는 한창 교권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았던 2024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교육부는 교권을 보호하겠다며 몇 가지 대책을 학교로 내려보냈다. 그 대책을 추진하는 것도 결국 학교에서 근무하는 특정 부서의 교사들이었다. 교권 보호를 위한 조치들조차 학교에서는 ‘행정 업무의 연장’이라는 형식을 통해 실시되었다.


학교에서는 새로운 사업이나 정책이 추진되면 ‘어느 부서에서 맡아야 하는지’를 놓고 교사들 사이에서 입씨름이 벌어진다. 새 정책이 교사들 사이를 갈라놓는 분쟁 거리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었을 때, 내 뇌리에는 늘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부서가 맡을까.’

‘어떤 갈등이 벌어질까.’

‘어떤 공문이 새로 만들어질까.’

새로운 정책은 대부분, 저 세 가지 고민 안에서 시작되었다.


입시 앞에서 무력한 정책들


우리나라의 학교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극심한 경쟁체제에 있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자연히 학교를 향한 정책들의 대부분은 ‘극심한 경쟁의 스트레스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사뭇 거대하고 이상적인 비전을 내세운다. 그런 정책들이 발표되는 패턴은 한결같았다. 학생들의 행복 척도, 청소년 자살률과 같은 비극적인 통계를 근거로 평가의 방식과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들은 대부분 학교가 내리는 ‘평가’를 문제 삼아 왔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까지의 무시험 제도나 ‘성취 평가제(절대평가와 비슷한 개념으로, 학생들이 도달해야 하는 ‘성취 기준’을 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면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같은 것들이 실시되었다. 그렇다면 이 제도들이 시행된 이후 학교는 덜 경쟁적인 공간이 되었을까?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학교의 경쟁은 평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본래 평가는 ‘얼마나 잘 배웠는지’를 점검하고, 더 잘 배우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한, 교육의 당연한 일부다. 평가의 목적은 본래 학생들 사이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게 아니었다. 학교가 경쟁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은 평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평가의 결과를 ‘입시’와 연동하는, 말하자면 평가 결과를 활용하는 방식 때문이며, 그 활용의 방식이 실제 학생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도록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구조 때문이다.


결국 어떤 평가 방식을 적용해도 소용없다. 아니, 학교가 평가의 기능을 완전히 내려놓는다 해도 학력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면 어떤 노력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학교는 여전히, 경쟁의 터전일 것이다.


평가와 관련 없는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그것이 입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그 정책이 시행되면 어떻게 1등급을 맞아야 해?’

‘그 정책은 의대 진학에 어떤 영향을 줘?’


모든 정책에 이 같은 질문이 따라붙은 것은 학교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차가운 경쟁의 구조가 학교에 선별의 과정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의 경쟁체제를 바꾸려는 시도는 우리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학교는 사회의 일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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