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를 위한 시험과 모두의 불행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
시험을 보는 A, 보지 않는 B
시험시간. 교실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선생님이 들어와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누어 주고, 시작종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종이 울리면 학생들은 일제히 펜을 집어 들고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A는 시험시간 내내 시험지에 집중한다. 종료령이 울리는 그 순간까지 한 시도 시험지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답안지에 답을 표기하는 손길에는 정성과 신중함이 함께 담겨있다.
반면, B는 시험지를 보지도 않고 시험을 끝낸다. 답안지에 학번을 표기한 후 모든 답을 같은 번호로 ‘찍어’ 버린다. 그리고 시험지가 놓여 진 책상 위로 몸을 눕혀 깊은 잠에 빠져든다. 종료령이 울리기까지, B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다.
교실에 앉아 있는 여러 A와 B 앞에서, 나는 시험시간의 침묵에 동참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A를 격려할 수도, B를 깨울 수도 없다.
시험이 치러지는 교실에는 늘 A와 B가 함께 있다. 한 교실의 두 학생. 학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학생이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고, 시험에 임하는 자세에는 흐트러짐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이는 시험에 사력을 다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작도 전에 등을 돌린다. A는 왜 A가 되고, B는 왜 B가 된 것일까.
선별과 배제와 A와 B
시험은 죄가 없다. 본래 시험은 학습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학생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치르는 것이다. 교사는 시험 결과를 토대로 자신의 수업을 점검하거나, 학생들의 특성을 파악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시험은 본래 교사와 학생이 함께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 위해 치르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시험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험이란, ‘선발과 배제’를 위한 관문이다. 대학, 취업, 자격증의 취득 등등. 우리 사회에서 시험은 ‘더 배우기 위한 점검’이 아니라, ‘더 이상 배우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이다.
‘선별과 배제’의 놀라운 사례가 바로 근래에 큰 화제가 되었던 ‘7세 고시’였다. 그 충격의 실체는 7살 아이들이 시험을 봤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고작 7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그것도 사설학원의 입학을 두고 선별과 배제의 통과의례를 치렀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그토록 잔인했다는 사실이 충격 이었던 것이다.
학교는 ‘선별’과 ‘배제’로서의 시험을 정기적으로 치르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1등급에 해당하는 상위 4%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선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학생들은 학업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고, 이른바 ‘상위권’ 학교를 희망하고 있다. 노력하는 만큼, 그만한 평가를 받을 권리도 있다. 학교는, 학생 중 누가 1등급인지 선별할 수 있도록 평가해 줄 의무를 부여받는다. 그것이 바로 학교에서 치러지는 시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그리고 시험에 참여하는 학생 중 4% 이내를 노리고 신중한 자세로 답안지에 답을 표기하는 학생들이 바로 A다.
시험과 수업
선별과 배제로서의 시험은 교사들에게 뜻밖의 의무들을 만들어낸다. 시험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오류의 객관식 문제를 만들어내는 일이며, 다음은 1등급을 가려낼 만한 난이도를 충족하는 일이다. ‘수업에서 강조한 내용’,이나 ‘교과 내용 중에 중요한 내용’을 출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지엽적이고 틀릴 만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넣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 상황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수업은 ‘진도 나가기’가 최우선이다. 학생들이 수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높은 수준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교사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교과 내용 중 일부를 생략하거나 추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1등급을 가려낼 수 있는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수능과 연계된 과목들은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수업의 진행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먼저 강의식 수업에서는 수업의 모든 것을 받아 적어야 하는 A와 모든 내용이 무의미한 B로 나누어진다. 마치 자석의 양극단처럼, 학생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수업의 수준은 자연스럽게 A에게 맞춰진다. 갈수록 이 양극단의 거리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학생 중심의 활동 수업은 하나의 도전 과제가 된다. 특히 활동이 평가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어렵다. 공부를 포기한 B는 의욕이 없고, 4% 안에 들어가야 하는 A에게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쉬운 시험문제와 쉬운 수업은, 때때로 학업 성취가 낮은 학생들에게 의욕을 줄 수 있다. 문제가 쉬웠을 때, 나는 심심치 않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공부했더니 성적이 잘 나왔어요. 저도 공부하면 할 수 있네요.’
쉬운 문제는 학생 중 누군가에게 귀중한 성공의 기회를 준다. 그러나 4%에 맞춰진 시험문제는 이러한 ‘성공의 경험’을 공평하게 나누어주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노력만 만큼의 성취를 돌려줄 수 있을까.
모두의 불행
선별과 배제의 시험 체제에서 가장 큰 불행을 떠안는 이는 학생들이다. A의 교과서는 온통 밑줄과 필기로 가득하다. 그는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철저히 암기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업 시간에 강조했거나,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구분하는 건 중요치 않다. 어떤 문제 때문에 1등급을 놓칠지 알 수 없기에, A는 교과서의 모든 글자에 집착했다.
A에게 물었다.
‘공부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렵니’
A는 대답했다.
‘전부 외우는거요’
나는, A에게 외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말해주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교과서의 구석진 곳에 쓰인, 그 사소한 글자들을 외우는 것은 의미 없는 소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때로는 내가, 바로 그 부분에서 문제를 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공부가 재미있을 때는 없니’
A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재밌어서 하는 공부가 어디 있어요.’
나는 A에게 독서의 즐거움, 생각의 확장과 다양한 관점들이 주는 생각의 발전 같은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다. A에게 그런 이야기는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었다.
잠든 B에게 물었다.
‘수업에 참여하기 어렵니.’
B는, 식상한 질문이라는 투로 말했다.
‘네. 저는 학교를 잘못 왔어요.’
교실에 앉아 있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B의 말 앞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차마 적절한 말을 고르지 못했다.
‘앞으로 학교에서 보낼 시간이 많은데, 계속 이렇게 잠만 자면 너도 괴로울 거야. 조금씩이라도, 선생님이 칠판에 적는 거라도 적어 봐’
허공을 맴도는 내 말에, B는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다음 시간, 그다음 시간에도 B는 잠들어 있었다. 여전히 수업은 그대로였다. 분필 끝에서 이어지는 글자들은 B와 동떨어져 있었다.
‘변별’의 구조 앞에서
우리 사회는 학교에 학생들의 변별을 ‘하청’했다. 학교는 거부할 권한이 없었고 오히려 교사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가 된 지 오래다.
변별은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 주는 낮은 자존감,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을 강요하는 교사에 대한 반항,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학교로부터의 이탈 등.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부작용들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오히려 교육 관련 기구나 학교, 나아가 교사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원인은 구조에 있는데, 책임은 개인에게 지운다. 학교를 결박한 이 단단한 매듭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4%를 위한 시험 체제가 바뀌고, 수업이 함께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의 경쟁체제가 누그러져야 한다. 그것은 학교를 대상으로 한 정책이나 제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체제, 그리고 학벌주의가 무너지지 않으면 학교는 앞으로도 선별과 배제의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학교가 바뀌려면 우리 사회가 통째로 바뀌어야 한다.
고백하자면, 이 글에서만큼은 막연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만큼 학교가 마주하고 있는 구조는 오래되었고, 또 견고하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구조물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학교도, 세상도 결국 사람이 만들었다.
A와 B. 그리고 학교를 둘러싼 모두의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꿀 용기가 필요하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