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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바투르산 등산

오늘처럼 살기

by 아루나

2019년 7월 1일

발리에 와서 제일 기대했던 액티비티 중 하나는 아궁산 등산이었다.


그러나 현재 아궁 화산이 분화 조짐을 보이면서 출입이 제한되었다. 그래서 대체로 쉽다고 평가되고 있는 바투르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하.. 나름 등산에는 자신 있는데 쉬운 산을 타다니.."라는 생각으로 바투르산 등산을 앞두고 있었다.


2:00 am 숙소 픽업

3:00 am 인원수 체크 간단한 차와 커피 제공

4:00 am 산행 시작


첫 밤 산행이라니.. 그것도 바투르화산에서..

허세기와 함께 멋지게 등산하려는 내 마음과는 달리

일교차로 인해 날씨가 너무너무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보는 사람 걱정되게 하는 측은한 등산인의 모습이었다.


우리 팀은 총 10명이 되는 인원이었다.

아시아인은 나와 중년의 한국 아저씨뿐이었다.

다들 대열을 맞춰서 서로의 숨소리와 그리고 앞사람의 발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산 입구까지 2킬로를 걸어야 했는데, 그때 본 하늘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히 기억이 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도 불을 켜 둔 것처럼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었다.

팀에 중간쯤에서 이동하던 나는 어느 순간 한국인 아저씨와 함께 선두가 되어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며 할만한데?라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다 보니 내 몸에 뜨거운 열기 조차 식힐 수 없을 정도로 숨도 가빠지고 힘들었다.

바투르산은 자잘 자잘한 돌 그리고 다져지지 않은 화산 돌이 오르기가 쉽지 않았고, 어둡다 보니 미끄러기지고 쉬웠다. 다리에 힘이 점점 풀려가는데 바짝 따라오는 러시아 여자가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현지인 산 가이드가 휴식할까?라고 묻자 한국인 아저씨는 괜찮다고 하고 러시아 여자도 괜찮다고 답했다.


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두 사람의 의견으로 산행은 계속되었다.


아니.. 선두에서 원래 약간 쉬어주면서 가야 하는데 자기들 안 힘들다고 저렇게 괜찮다고 하다니..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뒤로 빠지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어두워서 시야 확보도 어렵고 다리 힘이 풀려서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순간에 다시 한번 쉴지 가이드가 물었다. 나는 예스 예스 예스라며 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여자애 표정이 약간 떨떠름했지만 나부터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는 타임을 외쳤다.


등산하기 전에 한국인 아저씨가 산을 잘 타냐고 물었을 때

내가 호기롭게 "네"라고 답했다.

도대체 "네"라고 한 기준은 무엇인가?

불암산을 쉬는 날 종종 올랐던 것? 아니면 한라산을 타본 것?


어느 순간 일출을 보기 위해 한 등산에 대한 설렘보다 매 순간 내 앞에 있는 돌 바위와 아득한 산의 높이만 신경이 쓰였다. 이제부터는 목표보다는 순간순간 내 발 스텝에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들어서 못 견딜 것 같던 순간이 지나서 정상에 도착했다.

구름이 너무 한가득해서 일출을 못 볼 것 같았는데 구름조차 감출 수 없는 빨갛게 달아오른 해는 고생했다고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바람이 구름을 몰아내고 내 인생 정말 아름다운 일출을 바투르산에서 맞이하였다.

최근 며칠간 등산을 해도 일출을 못 본 경우가 많다고 했다.근데 나는 불과 며칠 전에 바간에서 봤던 아름다운 갱신하는 일출을 다시 보게 되었다.


감사했다.

일출을 보았다는 것으로 새벽 등산의 힘듬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순간들도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아득한 기억으로 변한다.

인생에서 힘든 순간에 목표를 잊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때 목표를 생각하는 것보다 하루하루 그 순간에 살다 보면 목표에 도착하게 되는 것 같다.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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