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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Apr 07. 2023

12 우리는 또 그런 사랑을 하려고 만난 사이上




 가끔 인연이 어떤 경로로 내 삶에 침투했는지 무한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작고 큰 모든 관계에는 만난 이유와 서로에게 새기는 흔적이 존재하는데 당신은 어떤 이유로 내게 왔을까?


 당신은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이다. 매사 자신감이 넘치고 낯간지러운 표현도 서슴없이 턱턱 던져 가끔씩 나를 당황케 했다. 내가 만나 본 남자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당신만의 색이 신선했다. 그래서 내게 당신은 예외였고 변수였다.


 그런 당신이 서로를 연인으로 부를 수 없는 일명 알아가는 사이일 때 불현듯 전화를 해왔다. 자연스레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내비치며 나 이런 사람인데 혹시 사랑해 줄 수 있어? 라 말하듯 찬찬히 그러나 묵직이 이야기를 해나갔다. 사실 자신이 없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을 살아온 당신의 이면을 알아버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당신을 끌어안을 자신이 없어 뒷걸음질 쳤다. 당신은 외로워 보였다. 누군가에 기대 한참 울고 싶어 보였다. 그게 마치 내가 될 것 같아 지레 겁이 났다. 나는 좀 더 평온한 사랑을 원했는데 별안간 당신이 내게 왔다. 온갖 생채기를 가득 안고서 말이다.


 '이별을 하고 나면 회복하는 시간이 쉽지 않죠'

 '연애라는 게 평생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기에 만나는 동안 최선을 다해도 헤어지면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된다는 게... 참'

 '그러게요. 몇 번 반복해도 적응이 안되네요'

 '우리는 또 그걸 해보려고 만난 거구요'


 연인이 아니기에 우린 사랑과 이별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당신은 말했다. 그 숱한 과정을 거치고도 우리는 또 그걸 해보려고 만난 사이라고. 그렇다. 지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사랑할 준비를 하는 우리는 어쩌면 사랑과 뗄 수 없는 존재들이다.


 당신은 2년 전 어머니를 여의었고 순애보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한 순간부터 서서히 아프시기 시작했다고 조심스레 말해주었다. 나는 초면에 듣는 이야기 치고 다소 무거워 어떠한 대답도 없이 묵묵히 들었고 당신은 이러한 상황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비록 예전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잘 이겨내고 있다며 애써 씩씩하게 말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만나는 날이 다가올 무렵 당신의 아버지는 어머니 곁으로 떠나셨고 당신은 내게 연이어 미안하다 말했다. 하늘의 뜻이 과연 누구의 잘못일 수 있겠는가 싶어 담담히 당신을 토닥였고 우리의 대화창은 며칠 동안 고요했다.


 문득 무서웠다. 사랑만으로도 버거운데 당신의 마음 빈 공간을 채우는 역할까지 해낼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당신을 만나려면 적어도 진지한 마음으로 이 정도 고민은 필요하다 생각했다. 당신은 부담을 주고 싶지 않겠지만 나는 부담이 된다.


 사랑은 진실된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생각해 온 나 자신이 위선이라 여겨졌다.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을 겪고 있을 당신 뒤로 나는 벌써부터 이 사랑이 겁이 난다. 그래서 숱하게 머리를 굴린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당신과 마주해야 하는지 말이다.



 일면식도 없는 당신의 아버지지만, 나는 이 공간에서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당신이 솔직하게 말해준 다음 날 당신의 아버지는 하늘로 가셨고 비는 거세게 내렸고 잘만 작동되던 이어폰은 고장 나 긴 퇴근길을 오로지 세상 소음과 함께 왔다는 걸. 나는 당신을 모르는 수많은 타인 중 가장 가까운 타인으로써 당신의 마음도 머지않아 평온해지길 바라본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될 사이가 될지, 그저 당신을 애도하고 마침표를 찍을지 나도 알 수 없기에 오늘은 이르게 문장을 닫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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