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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Apr 18. 2023

13 우리는 또 그런 사랑을 하려고 만난 사이下




 다행히도 당신과의 관계가 단순히 애도로만 끝나진 않았다. 정신없는 틈에도 잊지 않고 연락을 해준 당신 덕에 한동안 멈춘 대화창이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바쁜 일정 사이 약속을 잡아 함께 식사도 하였고 술 한잔 더하며 대화도 나누었다.


 고민을 겹겹이 쌓은 채 만나서인지 처음 본 그 순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당신이 나의 다음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당신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간 만나보지 못한 외모의 소유자였고 단단한 자신감에 매사 파워가 넘쳤다. 나의 하루를 섬세하게 알고 싶어 했고 친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물었다. 처음엔 나에 대한 관심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당신은 빠르게 누군가를 당신의 삶에 채우고 싶어 보였다. 어쩌면 그 과정을 적극적인 구애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씩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신의 진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당신의 다가옴이 오히려 뜨뜻미지근한 다가옴보다 더 의미 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당신과 연락이 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이 정도의 표현력을 가진 당신과 연애를 하게 되면 사랑늪에 빠져 살겠는데?라는 섣부른 생각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당신의 표현이 알게 모르게 나를 구속하는 느낌이 들었고 우린 아직 아무 관계가 아님에도 나는 당신에게 하루 일과를 세세히 말하고 있음에 당황했다. 그때쯤 이전 나의 연애 시작점이 떠올랐다. 분명 설렘에 어떤 현실도 보이지 않는 무방비 상태였다. 부담이란 감정이 들 찰나도 없었다. 그랬다. 나는 지금 설레지도 않는 상대가 일방적으로 퍼부어주는 가짜 사랑에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했다. 정말 내 삶에 필요한 사람인지 내가 이 사랑에 대한 책임을 가질 수 있을지 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연인이 되지 않았다. 고맙게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고 당신은 내게 좋은 사람을 만나라 여유로운 덕담도 더하였다. 당신도 그다지 아쉬워보이진 않았다. 그때 또 한 번 느꼈다. 당신은 내가 간절했던 것이 아닌 그저 누군가가 간절했을 뿐임을. 우린 각자의 사랑을 하고픈 남녀였을 뿐. 당신은 텅 빈 마음을 채워줄 버팀목 같은 여자가 필요했고, 나는 계절을 흐름을 같이 느끼며 잔잔한 시간을 함께 할 남자가 필요했다. 관계의 정의가 확연히 달랐다.


 당신의 적극성은 내게 부담이었고 나의 늦은 답장은 당신을 배려하지 않은 이기심이라 당신은 여겼을 것이다. 우리는 또 사랑을 하려 만난 사이지만 결국 각자의 모양의 사랑을 하려 했기에 다시 서로가 되었다. 마지막 연락을 끝으로 마음이 후련했다. 역시 내게 사랑은 온갖 달콤한 말의 범벅이 아닌 마음이 평온한 잔잔한 호수 같은 감정이 우선이다. 그 결이 달랐기에 당신의 마음을 사랑으로 해석하지 못했다. 나와 같은 사랑의 온도인지, 같은 방향인지 그리고 같은 속도인지 무수히 고찰해야 하는 과정이 때론 피로하다. 마음만 따라가기엔 우리 모두 진지한 연애를 하려는 사람들 아닌가. 상대의 소중한 시간, 나의 소중한 청춘이 헛되지 않게 고민하고 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또다시 이별을 맞이하더라도 그래서 아파하더라도 적어도 만남의 첫 순간을 후회하진 않기 위해서.


 

 당신을 알게 되어 나는 참 많은 상황을 겪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름밖에 모르는 당신을 위로하기 바빴다. 우리가 사랑일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난 이해하고 당신은 이해받아야 하는 관계로 시작해서일까. 나는 당신의 행복을 감히 또 빌어본다. 당신과 알고 지낸 시간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지만 당신 삶에 일어난 무거운 일들 사이에 내가 때때로 위로가 되었음에 되려 감사했고 당신과 나 모두 각자의 사랑이 머지않아 찾아오길 또 바라본다.


 우리는 또 그런 사랑을 하려고 만난 사이에서 다시 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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