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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탁건 Feb 11. 2019

다독 강박에 대하여

다독왕 선발 대회?

“어떤 책은 천천히 맛보고, 어떤 책은 삼켜버려야 하며, 어떤 책은 잘 씹어서 소화시켜야 한다.”

- 프랜시스 베이컨 


다독은 우뇌식 독서입니다. 정독은 좌뇌식 독서죠. 다독을 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뇌식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좌뇌식 독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많이 읽는 것보다 꼭꼭 씹어 보는 정독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독에 앞서 정독을 통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들이 아이를 자신감 있게 만듭니다. 


어른의 다독은 짧게 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훈련이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독서는 다독이 아닌 정독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책 속에 있는 내용을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느껴야 합니다. 아이들이 다독을 위해 책을 빨리 읽어 나가게 되면 내용 파악을 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아이의 독서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조용하게 읽는 묵독으로 빨리 읽는 것보다 소리 내어 천천히 읽는 낭독이 좋습니다. 한 실험에서 아이들이 주어진 어휘를 외우게 한 후 기억 정도를 체크하였는데요. 실험 결과 낭독으로 외우기를 한 아이들의 기억력이 20%나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낭독을 할 때는 좌뇌뿐 아니라 우뇌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낭독을 하며 귀로 듣게 되는 청각의 활동 역시 아이들의 뇌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청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독서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소리 내어 읽는 아이들의 뇌파를 측정하였을 때 저주파(집중할 때 나오는 뇌파)가 더 많이 측정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뇌 과학자인 가와시마 루타 교수 역시 인간의 모든 활동 중에서 낭독이 가장 뇌를 활성화시킨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말을 할 때 단어 선정을 못한다든지 주절거리는 경향이 있다면 조용하게 읽는 묵독이 아닌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을 하게 해 주세요. 그래야 뇌의 측두엽이 발달해 말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됩니다. 

아이가 낭독으로 책 읽기를 꺼려한다면 동시를 낭독하게 해 주세요. 이때는 아이 혼자 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하는 하나의 놀이가 되면 더욱 좋겠지요. 


다음은 아동 독서 전문가인 메리언 울프의 이야기입니다.


큰소리를 내서 읽기는 아이들에게 구술 언어와 문자언어 사이의 관계를 분명하게 강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방법은 초보 독서가들에게 나름의 자기 학습법을 제공하는 ‘독서 학습의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면 힘이 듭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상당한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기 때문인데요. 아이도 마찬가지겠죠. 아이가 소리 내어 책을 읽다 힘들어하면 “나머지는 아빠가 읽어 줄까?”하며 아이에게 다가가세요. 읽던 책을 아이 혼자 끝까지 읽어내야 하는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것은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읽던 책을 덮어두고 다른 책을 읽는다고 아무런 문제가 되진 않아요. 책은 읽기 싫어도 끝까지 읽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니까요. 


아이들에게 다독을 강조하는 나라가 많이 있을까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집’이라는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방학이 되면 곳곳에서 <다독왕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부모들은 아이의 <다독 계획표>를 짜기도 하지요. 아이가 아닌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독 경쟁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SNS에서는 부모들이 모여 ‘우리 아이 다독왕 만드는 비법’을 서로 공유하기도 합니다. 


부모가 다독 강박에 사로 잡혀 있게 되면 아이들은 책 속의 생소한 지문에 의문을 가지지 않습니다. 모르는 채로 그냥 넘어가버리는 것이죠. 이렇게 책을 읽게 되면 책이 책을 읽어 나가게 되는 배경지식이 쌓이지 않게 됩니다. 

<안네의 일기>를 읽는 아이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책 속에 나오는 시대적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면 아이는 다시 한번 책을 읽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다독 강박에 묻어가는 아이는 그대로 의미 파악이 되지 않은 채 다음 책으로 넘어가고 말게 됩니다.  


“많이 읽어라. 그러나 많은 책을 읽지는 마라.”

-벤자민 프랭클린 <미국의 정치가, 외교관, 과학자, 저술가>


흔히 독서를 마음의 양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인간이 때에 맞춰 양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몸은 건강을 유지할 수 없고 점점 야위어 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적절하게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몸이 야위어 가듯 마음의 건강도 온전하게 유지할 수가 없게 됩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처럼 중요한 독서이기에 ‘많이 읽으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많은 책을 읽지는 말라고도 말하는데요. 많이 읽기 위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의 사색도 없이 많은 책을 읽어 내기만 하는 것을 꼬집는 것이지요. 


한 권의 책을 읽고 또 읽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많이 읽는 다독은 참으로 가치 있는 독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우리 아이는 책을 많이 읽어요’라는 말을 하기 위해 아이에게 독서의 참 의미를 새김도 없이 무턱대고 많은 책을 읽으라고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겠지요. 독서는 마음의 양식을 채워 삶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한 지혜를 심는 것이지 단지 많은 양의 지식이나 읽은 권 수를 자랑하기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백 권의 책을 읽었다 한들, 읽은 책의 제목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고, 책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알지 못한다면 그 책은 두뇌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냥 눈을 통해서나 입을 통해서 들어왔다 바로 흘러 나가 버리고 만 것이지요. 다독을 자랑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습관으로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뇌는 백 권, 천 권을 대충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꼼꼼히 읽었을 때 더 많은 지혜의 바탕이 되는 지식을 뇌 속에 저장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정한 독서형태를 강요하는 편입니다. 학교에서부터 다독을 강요받기 때문이죠. 학교에서는 책을 읽을 때마다 스티커를 붙이라고 합니다. 학습지에서는 100권 일기 프로젝트를 만들어 100권의 책을 읽고 스티커를 다 붙이게 되면 선물을 줍니다. 그리고 다시 100권 읽기를 시작하게 합니다. 여기에는 기한도 정해져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무조건 많이 읽는 것에 목적을 가지게 되는 아이들은 그냥 읽어만 내는 속독이 책 읽기의 주된 습관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속독은 말 그대로 속독일 뿐이죠.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속독 기록 보유자인 미국의 하워드 s. 버그는 10분 동안 한 권을 책을 읽어냅니다. 240페이지짜리 책이라면 1분 동안에 평균 24페이지, 페이지당 600자라고 한다면 1분 동안에 4,400자를 읽습니다. 평균 2~5초 동안에 한 페이지를 읽는다는 말이 되는데요. 10분 동안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무슨 이득이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이렇게 읽게 되면 아이들에게 읽기의 질을 기대할 수는 없겠죠. 


아이들이 다독에 습관이 되어가면 얇은 책을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이 읽는 얇은 책은 아무래도 쉬운 내용이 많죠. 이렇게 아이들의 독서 수준은 정체되어 가기만 합니다. 

얼마나 많이 읽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읽었는지가 아이들에게는 중요합니다. 다독은 정독이 선행된 다음에 이루어져야 가치 있는 활용이 가능합니다. 


책을 통해 제대로 된 지식, 지식을 이용한 지혜, 옳은 가치관 등을 얻으려면, 대충 많은 책을 읽는 습관보다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탐독해 나가는 정독이 아이들에게는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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