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67일간의 기록
오늘은 퇴사 67일 차.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내가 요즘 만나는 지인들은 내가 백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들 "너 퇴사한 지 얼마나 됐지?"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난 "아, 한 두 달쯤 됐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보다, "아, 퇴사 67일 차야!"라는 식의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한다. 이렇게 정확한 일자를 언급하면 뭔가 하루하루를 정말 알차게 채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다. 가끔 기념비적인 숫자, 예를 들어 퇴사 50일 차 정도에 만나는 지인들은 뜬금없이 퇴사 50일 기념 파티를 열어주기도 한다.
어쨌든 퇴사하고 67일이 지났다. 야심 차게 퇴사했지만 그동안 뭔가 대단한 변화는 없었다. (퇴사하면 일론 머스크는 아니더라도 한 백론 머스크 정도는 도전해 볼 생각이었는데 허허허. 역시 무리!)
그래도
1. 꾸준히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는 것,
2. 지지부진하지만 제법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 (근데 정말 지지부진하긴 하다. 런데이 앱을 통해서 30분 달리기에 도전하고 있는데 진도가 안 나간다. 계속 1주 차~2주 차만 반복 중이다. 그래서 1주 차 시도 횟수만 높다.)
3. 하루에 20분씩 피아노를 연습하다 보니 손이 점점 예전의 폼(?)을 되찾아 가고 있다는 것,
4. 나름 로망이었던 로컬살이를 꽤 많이 해보고 있다는 것,
5. 퇴사 후 약 8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
등등 소소하게 뿌듯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퇴사 전에는 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지만 백수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도 몇 가지 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
첫 번째,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회복하는 사람이라는 것.
난 퇴사하기 전에 아픈 곳이 정말 많았다. 약을 달고 살았다. 건강검진에서도 실제 이상 수치가 나올 정도였으니, 단순히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신경성 증상이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퇴사하면서 건강해지는 것도 내 목표 중에 하나였다. 근데 정말 말도 안 되게,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몸이 점점 괜찮아지더니 수치도 거의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
만병의 근원인 회사를 떠난 자들이 구원을 얻는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직접 확인한 순간! 게다가 정신 회복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평일 오전의 등산, 맛있는 요리, 석양을 보며 자전거 타기. 이런 것들이면 충분했다.
어쩌면 이게 다 백수가 된 여유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회사를 다닐 때 이런 것들을 잘하지 않았다. 힘들다고 쉴 때도 누워서 유튜브를 봤고, 등산도 자전거도 다 귀찮았다. 어쩌면, 나중에는 내가 이런 방법들을 통해 힘든 일도 좀 덜 힘들게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난 건강하게 회복하는 방법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나중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나를 위해 누워서 쇼츠를 보는 대신 밖에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할 거다.
두 번째, 열심히 살았더라도 매 순간 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결국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사실 난 그래서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적당히 괜찮은 성과를 내면서 살았다는 것은 나 스스로 인정한다. (아마 바라건대 다른 사람들도 대충 그렇게 생각해 줄 것 같다.) 근데 난 내가 뭘 하면 좋을지에 대한 건 정말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글 쓰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건 취미일 뿐. 내가 평생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면 조금 더 행복할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을 못했다. 그냥 '좋은 직장'을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고, 대충 그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걸 지금 생각하려고 하니까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긴 하다. 박명수 님의 말대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
난 앞으로 내가 뭘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세 번째, 퇴사하고 시간이 많아져도 하기 싫었던 것은 끝까지 미룬다.
세 번째 얘기를 들으면, '그거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근데 나에게는 당연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난 나에 대한 이상한 확신 같은 게 있었다. '나에게 부족한 건 시간일 뿐이다. 의지는 충분해!'
그래서 당연히 퇴사하면 내가 미루고 미뤄왔던 것들을 척척 해낼 줄 알았다. 근데 여전히 미루고 있다. 생각보다 당연한 것은 없고, 정신은 계속 차리고 살아야 한다.
내일부터는 진짜로 내가 67일 동안 미뤄오던 일들을 하나씩 착수해보려고 한다.
다음 주에 올리는 글은 좀 더 희망적인 글이 되길...
에디터님들 픽해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에디터 픽에 올라간 글이 조회수 대비 하트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