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구 회수하기
태안 고남면에서의 넷째 날. 그 전날에 바다에 뿌려놓은 어구를 회수하는 날이다. 통발과 그물에 있는 결과물을 확인하는 날.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어구라는 것 자체가 뭔지 잘 몰랐다. 기본적으로 어구는 고기잡이에 쓰이는 여러 가지 도구를 이르는 말이지만, 이곳에서는 보통 어구라고 하면 통발과 그물을 뜻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납작한 원기둑 모양'인, 내 입장에서는 약간 컴팩트한 물고기 트랩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을 통발이라고 했다. 그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그물을 뜻했다.
잠깐 짤막한 지식 하나를 공유하고 가자면, 2024년 1월부터 사용한 어구를 지정된 장소로 가져오면 보증금을 주는 어구보증금제가 시행되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스프링 통발 1,000원, 원형·반구형 통발 2,000원, 사각·붉은 대게 통발 3,000원을 돌려준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듣다 보니 어구 하나하나가 소중히 다뤄야 하는 복덩이(?)라는 생각이 좀 더 절실하게 들었다. 어구 그 자체가 돈인 동시에 바다에 뿌려놓는 씨앗 같지 않은가. 하루 만에 그 씨앗이 얼마나 자랐을지는 어구를 회수해 보아야 확실히 알게 될 테지만...
난 어구 회수 하는 날을 꽤 기다렸다. 내가 뿌려 놓은 씨앗에 어떤 열매가 맺혔는지 눈으로 볼 수 있는 일. 그건 내게 흔한 경험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고객사에게 감사 전화를 받거나 그들이 출시한 서비스에 대한 기사를 보면 뿌듯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하는 일은 뭔가 결국은 AI와 컴퓨터가, 혹은 내가 쓴 제안서가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뿌린 어구에 물고기가 얼마나 들어왔는지 눈으로 본다는 건, 내 노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직접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꼭 직접 어구를 던지고 어구를 들어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구를 던지고 회수하는 일에는 사고가 많이 따른다고 했다. 실제로 나와 다른 참여자들은 어구를 던지는 일에도 어구를 회수하는 일에도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었다. 배의 구석 자리에서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서 사실 이 상황이 신기하면서도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들어오는 어구마다 특별한 수확이 없어서 더 마음이 불편했다. 게가 잡히면 알이 잔뜩 있어서 다시 바다에 풀어주어야 했고, 평소 좋아하던 물고기들도 철이 아니라서 맛이 없어서 풀어줘야 하고, 믿을 수 없는 생존력을 장식하다 최근에야 처리방법들이 몇 개 생겼다는 불가사리가 올라왔다.
심지어 그 와중에 내가 통발을 수리하면서 물고기가 들어올 수 있는 입구를 묶어버렸는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몰라서), 그걸 선장님이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하며 '뜯어진 곳 고치라고 했더니 물고기 입구까지 막아버렸다.'면서 웃었다.
누군가가 선장님에게 질문했다.
"선장님, 근데 이게 많이 잡히는 건가요? 아니면 적게 잡히는 건가요?"
선장님이 대답했다. "적게 잡히는 거죠? 원래 어제 뿌린 거 이렇게 빨리 거두지도 않아요."
아, 우리가 방해가 되는 게 맞는구나. 원래라면 굳이 수거할 필요도 없는 어구를 우리 때문에 수거해주고 있구나. 나에게는 말 그대로 '체험' 삶의 현장. 그들에게는 정말 삶의 현장인데 내 체험이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되었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수확한 것이 많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특히 그물을 건져 올리는 일이 그랬다. 여기저기 엉켜있었고, 가오리들이 그물 사이사이에 꽤 많이 박혀 있었다. 몇 번 툭툭 털면 그물에서 툭 하고 튀어나왔으면 참 편했겠지만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하긴, 가오리의 생김새를 생각했을 때 머리가 거의 삼각형이기 때문에 툭툭 턴다고 바로 떨어져 나갈 만한 구조는 아니었다. 가오리가 특히 많이 잡힌 이유도 알 것 같았다.
하긴. 가오리의 생김새를 생각했을 때 한 번 그물에 박히면 사람이 빼기에도 어렵게 생겼으니 가오리가 특히 많이 잡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사람이 그물에서 손으로도 빼내기가 어려운데 손도 안 달린 가오리가 그물에서 빠져나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물에 걸려 있는 물고기, 특히 가오리들은 빼내는 것은 꽤 큰 결심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힘들어서라기보다 냄새 때문이었다. 물고리를 빼내다 보면 아무리 장갑을 끼고 있더라도 손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 특유의 냄새.
어릴 때는 물이 있으면 똑같은 바다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뭔가 다르다는 것을 가장 먼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건 다른 냄새 덕이었다.
우리의 바다와 그들의 바다는 냄새가 다르다. 내가 지금까지 알던 바다는 해변이다. 나름대로 주변에는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바람과 바다 냄새가 섞여 있다. 밝고 맑다. 햇빛을 반사해서 반짝거릴 때도 많다. 이분들의 바다는 조금 다르다. 그들에게 생계의 터전인 이곳은, 그 깊이만큼 색도 깊다. 짙다. 짙은 파란색이다. 짙은 회색을 띠기도 해서 가끔은 바다가 약간 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항구에는 생선과 해산물 냄새가 섞여 간혹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듯하다.
잠깐의 작업에도 그 코를 찌르는 비린 내는 한 동안 손에서 가시지 않았다.
배에서 내가 뭐 대단한 것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어구를 끌어올리는지 먼발치에서 구경하고, 그물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가오리들을 뗴어냈다. 가장 많이 한 일은 아마도 배 위에서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인증 사진을 남기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배에서는 꼬르륵 거리며 밥을 달라 난리였다. 한 음식점에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평소에 아주 선호하는 메뉴는 아니었는데, 천상의 맛이었다. 이게 시장이 반찬이었는지 그냥 여기가 궁극의 맛집이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누군가가 이 음식점에 가게 된다면, 적당한 때에 순두부찌개를 맛봐주기를 바란다.
찡긋. 투비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