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히니 Sep 19. 2024

갯벌체험 준비물, 체력과 정신력

ps. 갯벌체험은 1시간이면 충분... 합니다.

 어느덧 나의 짧은 어촌 생활도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이제 드디어 '그것'을 할 시간이 되었다. 바로 내가 이번 어촌 생활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일정! 바로 갯벌체험! 사실 난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갯벌을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 (본 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그냥 지나치듯이 봤을 수는 있겠지만...)


 어릴 때 TV 프로그램을 보면 멀쩡하게 잘 걷던 사람들이 갯벌에만 들어가면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움직이지 못하는 게 조금 재미있었다. 정말 갯벌은 그런 곳인가 참 오래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그 진실을 확인할 시간이 도래했다. 


 갯벌 체험을 하기 몇 시간 전부터 머릿속에는 '갯벌, 갯벌, 갯벌'. 갯벌로 가득 찼다. 근데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1) 첫 번째, 우리는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체험을 1시간 정도 하게 되었다. 1시간이라. 솔직히 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평생 처음 보는 갯벌인데 반나절은 갯벌에서 뒹굴거리며 바지락은 물론이고 쏙, 꽃게까지 잔뜩 바구니에 담고 싶었다. 

 2) 두 번째, 바구니의 크기. 갯벌 체험을 하면서 캔 것들을 담을 바구니를 받았는데, 그 바구니가 너무 작았다. 분명히 난 엄청난 양의 바지락, 꽃게 등을 수확할 것 같은데 이 정도 바구니로는 나의 열정을 담을 수가 없어 보였다.




 아쉬워도 어쩌겠는가. 몇 가지 안내사항을 전달받고 난 갯벌에 입장했다. 처음 입장했을 때는, '이게 갯벌인가? 여기서부터 갯벌인가? 아닌가?' 헷갈릴 정도로 뭔가 갯벌 같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발이 푹푹 빠지는 곳에 도착하자 비로소 내가 갯벌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에너지가 소진되었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갯벌을 즐기기는커녕 최대한 발이 빠지지 않을 곳만을 물색하고 다니는 나를 발견했다...!


 갯벌 경험이 좀 있는 참가자들은 벌써 바구니를 채우기 시작했다. 벌써 바지락을 몇 개나 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바지락은 다리가 없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금방 캘 것 같은데? 난 꽃게를 공략한다.'

 난 사실 바지락을 먹지 않는다. 꽃게는 먹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꽃게가 끌렸다. 갯벌에는 꽃게들이 꽤 많이 왔다 갔다 거렸으므로 난 한참을 그들을 쫓아다녔다. 근데 꽃게는 정말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하면 어느새 저 멀리 도망가고 갯벌 속에 숨어버렸다. 잘은 몰라도 꽃게의 크기가 치타 정도 된다면 치타랑 달리기를 해도 많이 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꽤 오랜 시간을 꽃게를 따라다녔고, 수확이 없으니 이게 뭔가 싶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것 같아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한 15분쯤 지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엄청 힘든데 15분 지났다고?



 

 난 메타인지가 제법 괜찮은 편이다. 꽃게는 절대 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바지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지락은 최소한 다리가 없으니까 내가 속도에서 그렇게 밀리진 않을 것이란 확신과 함께 바지락으로 돌진!


 돌진했는데... 이것도 참 쉽지 않았다. 아무리 파도 파도 바지락이 보이지 않았다. 바지락인가? 싶어서 보면 죽어서 다 깨진 껍질들. 다른 사람들이 바지락을 많이 캔 장소에 따라가서 바지락을 캐보면 귀신처럼 내 눈에는 바지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 몇 십분 쯤 지났을까.

 내 주변에는 나 만큼 바구니를 못 채운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처참한 실력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손대는 곳은 죽음의 그림자만 가득한 바지락들의 무덤일 뿐, 그 어떤 활기찬 바지락도 나오지 않았다.


 이쯤 되자, 갯벌 체험이 좀 지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허리도 너무 아팠다. 농업이든 어업이든 엄청 오래 해당 분야에 종사한 어른들의 허리가 왜 그렇게 굽어있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나처럼 젊은 사람도 꼴랑 몇 십분 바지락 찾아다니는 걸로 이렇게 허리가 아픈데, 그걸 수십 년 동안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생계를 위해 갯벌에 계셨다면 허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갯벌에서 일하면서 허리 건강을 지키려면 허리 근육을 엄청 강화해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갯벌체험에 필요한 건 여분의 옷, 수건 같은 것들이 아닌 체력. 체력이 필요했다.


 갯벌에서 필요한 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강한 정신력.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 이유는 내 생각에 크게 두 가지 정도였다.

 1) 나중에 노하우가 생기면 대충 감이 오겠지만, 어디에서 바지락이 나오는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다른 사람들이 바지락을 많이 캐는 자리가 오면 계속 그 자리를 따라다녔다. 근데 나중에 보면 내가 떠났던 자리도 조금만 더 파보면 살아있는 바지락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좀 인내가 필요하달까.

 2) 학교 다닐 때 성적이 떨어지거나, 친한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성적이 높으면 조금 낙담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최소한 성적표가 실시간으로 공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갯벌에서는 바구니를 통해 일종의 성적표가 실시간으로 공개되고 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계속 뭔가를 캐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바구니를 살펴보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갯벌체험을 통해 내가 무슨 득도라도 한 것 같군. 어쨌든 갯벌체험할 때는 인내심과 흔들리지 않는 마음 같은 정신력, 그리고 체력이 필요하다. 그게 진짜 갯벌체험 준비물이다.

 



 다행스럽게도 갯벌 체험을 하는 짧은 시간 동안 내 체력이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정신력은 조금씩 강화되었다. 그래서 제법 스스로 바구니를 바지락으로 채워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턱 없이 부족했다. 그때 우리 경영자 아버님이 내게 찾아왔다.


(경영자 아버님 에피소드)

https://brunch.co.kr/@ilovesummer/145


경영자 아버님 : 이장님, 이장님 바구니가 왜 이렇게 형편없어요?

나 : 그러게요... 제가 아무래도 이장할 깜냥이 안 되나 봅니다. 자리 내려놓겠습니다...!

경영자 아버님 : 아니, 안 되지. 이것 때문에 그러면 안 되지.

 

 이장 자리는 어차피 가위바위보로 얻은 것이었고, 그마저도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없어질 직함(?)이었다. 내 말이 장난인 것을 알면서도 아버님은 바구니에 있던 바지락을 한 움큼 내게 넘겨주셨다.


나 : 아니 아버지, 나 바지락 잘 안 먹어서 괜찮아요. 아버지가 가져가서 드시지 그냥.

경영자 아버님 : 난 이거 잘해요. 또 캐면 되니까.


 그 말과 함께 아버님은 또다시 바지락을 캐러 가셨다. 이런 식의 나눔은 무리 곳곳에서 이뤄졌는데, 그래서인지 누구 하나 빈 손으로 가는 사람이 없이 바지락을 꽉꽉 채워갔다. 

바지락


이전 09화 가오리를 100번 죽인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