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못찾을줄 알았지! ”
거친 남자의 손길에 만삭인 순미가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넘어진다.
넘어지는 순간에도 배를 움켜쥐고 아이를 지키는 모습을 보자 남자는 더 화가나 발로 배를 차더니 이내 그녀를 몇 번이고 더 밟아댔다.
“.. 배는, 우리 애는 때리지마 .. ”
힘겹게 내뱉은 순미의 한마디, 목소리가 다쉬었다.
“그러니까 내가 진작에 지우라고 했잖아! ”
작은 숨소리로 떨고있는 순미옆에 씩씩거리다 이내 제 화를 못이겨 거실에 있는 물건들을 짚어 던지기 시작하는 남자.
남자의 이름은 은학.
순미의 근본없는 남편이며, 미영의 이름없는 아버지였다.
은학에게 처음 뺨을 맞았던 날 이후 순미의 하루는 매일이 지옥으로 변했다.
그의 노름은 멈추질 않았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은 더 잦아졌다.
어느새 그의 빚은 순미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고 폭력과 협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처음에는 카페를 팔아 빚을 갚아주면서 설득해보았다.
같이 잘살아볼수 있도록. 아이를 낳을수 있도록.
하지만 은학은 오히려 돈을 더 요구할 뿐이였고, 아이만은 절대 안된다며 병원앞까지 순미를 데려갔다.
결국 순미는 그의 곁에서 도망가 아이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몇개월간 그를 피해 도망다니다 결국 잡혀버린, 이제는 만삭이된 순미였다.
순미가 도망간 사이에도 그의 노름은 멈추지 않았고 그녀의 이름으로된 아파트는 이미 채권자들에게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은학역시 갈곳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는 순미의 얼굴을 보자 이 모든 것 이 그녀를 만나 자기 인생이 꼬여버린것 같다며 화를 냈다.
노름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것도, 원치 않는 아이가 생긴것도 모두 그녀 때문인것만 같았다.
그는 참는 법을 알지 못했고 분노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때마침 사정을 알게된 은학의 아버지는 순미가 도망친 곳으로 찾아와 그녀를, 아니 그의 손주를 지켜주었다.
노름에 미친 막내자식은 미워도 그의 손주까진 미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날 이후 은학은 어딘가로 자취를 감춰버렸고, 다시 연락이 닿은건 훗날 미영이의 돌잔치날이였다.
순미는 은학의 아버지 도움을 받아 출산날까지 그의 보호아래 지낼수 있었고, 점차 불러오는 배를 보며 아이와 함께 새로 시작할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됬다.
다가온 출산당일.
외로운 산통은 하루가 넘게 이어졌고 순미는 의사의 권유로 제왕절개 까지 하게된다.
요즘에는 비키니 라인수술이라 하여 가로로 최대한 작게 가른다 하지만, 이때는 배를 세로로 개복하는 큰 수술이였다.
그럼에도 순미는 제왕절개를 결정했고 곧이어 배를 가르며 수술은 시작됬다.
그리고 몇시간 뒤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3kg의 건강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3일이 지나고 움직이지 못하는 순미를 위해 간호사가 흰보자기에 싸인 아기를 병실로 데려왔다.
순미는 아이를 훑어본다.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손가락이 다섯 개, 발가락도 다섯 개.
다행이다..
자신의 어미를 알아보는것일까
그녀가 아기를 안자 이제 막 뜬 작은 눈과 입이 방싯 웃음짓는다.
작은 얼굴로 꿈적꿈적 하는 모양새 조차 너무 예뻐 순미는 아이가 자신의 배에서 나온 생명이라는게 믿기지 않았다.
이어 그 작은 손바닥에 손가락을 갖다대자 꼬물거리며 그녀의 손가락을 꼬옥 잡는다.
아이를 안고있는 팔에서 심장박동 소리가 느껴졌다.
신기했다. 벅차오르는 감정에 눈물만 뚝뚝 떨어졌다.
만약 그때 깊은 곳에서 울림이 들렸다면 그이름은 순미가 처음 느껴보는 사랑과 안도와 무한의 책임감 이었으리라.
그리고 평생 가지고갈 다짐을 한다.
이 작고 소중한 아이를 내가 꼭 지켜주리라.
행복하게 해주리라.
“엄마가 꼭 지켜줄게. 행복하게 해줄게. ”
..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