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부모가 없던 채로 태어난 미영이는 할아버지의 욕심으로 등본상 큰아버지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미영이에게서 엄마를 앗아간 장본인이었지만 한편으론 막내아들의 막내손주인 미영이를 참 많이 예뻐했다.
그래서 살아계실 적엔 미영이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지만, 돌아가신 후로는 모든 게 변해버렸다.
미영이는 양육비봉투와 함께 이곳저곳 전전하는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순미 씨를 당황하게 했지만 엄마라는 두 글자가 그녀를 더 억척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영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 순미 씨는 사정에 의해 다시 친척집에 미영이를 부탁하게 된다.
청구그린빌라 104동 401호.
그곳에는 초등학생이었던 미영이와 중학생 친척오빠, 고등학생이던 그의 누나, 이렇게 다 자라지 못한 아이들만이 머무르고 있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두 분 다 지방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어른들 없이 아이들만 남게 된 것이었다.
달에 한번 정도 어른들이 집으로와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워 주고 가셨지만, 성장기였던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2-3주 정도면 음식은 동이 나 있었다.
어린 미영이가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에 비해 성장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게다가 아이들 밖에 없으니 늘 중고등학생 언니오빠의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오기 일쑤였다.
결국 그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겉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옆에서 챙겨줄 수 없었던 순미 씨의 미안함은 많은 용돈으로 대신할 뿐이었다.
중고등학생이던 언니오빠는 집과 학교의 거리가 멀어 훨씬 먼저 나갔기에, 미영이는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부터 스스로 해야 했다.
등교준비와 준비물 챙기기등, 부모님이 해줬어야 할 부분들 까지도.
아침밥은 사치였다.
하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그 시절 즈음 초등학교에선 급식이 보편화돼있던 것이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들은 후 하교를 한 후 에는 보통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초저녁 무렵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 혼자 숙제를 하며 늦게까지 언니오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저녁을 해 먹으며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차린 어설픈 밥상이 제대로 일리가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은 계란 프라이 밖에 없었기에 미영이는 그 시절 간장계란밥과 케첩 계란밥을 정말 질리게 먹었다.
하지만 더욱 미영이를 질리게 하는 건, 하루하루 깊어만 가는 엄마의 짙은 빈자리였다.
그렇게 미영이는, 혼자 밥을 참 많이 먹어더랬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