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 옛날 내가 뱃속에 잇던 시절부터 당신은 나를 버렸습니다.
엄마와 함께.
하지만 엄마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죠.
젖한번 먹여보지 못한채 할아버지에게 나를 빼앗긴 엄마는, 양육비를 지급 하며 달에 한번 나를 보는걸로 만족 했다고 하더군요.
당신의 가족들은 나에게서 엄마를 앗아갔고, 양육을 명목으로 돈을 받아갔죠.
게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후로는 나를 제대로 키워준것도 아니였구요.
내가 10살이 넘을 때 까지 본적도 없는 ‘아버지’를 미워했던건 당연한 수순이였던거죠.
기억하나요?
나와 친척언니 그리고 오빠, 이렇게 어린 우리들이 사는 집에 당신이 일주일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었죠.
첫 만남에 당신은 본인을 포함하여 큰아버지와 고모 언니 오빠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지 글을 써오라며 숙제를 내주었죠.
며칠이 지나 어느 날 저녁, 숙제는 다 햇냐는 당신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거짓말을 해버렷습니다.
마치 틱장애인 듯 나도 모르게 다 했다고 대답해 버린거죠.
늘 옆에서 본체만체 하던 당신이 씻고 나오며 말을 걸줄 몰랐거든요.
갑자기 느닷없는 숙제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검사 할것도 없었어요. 공책은 백지였으니.
이 말을 하면 맞지 않을까 저 행동을 하면 욕을 먹진 않을까, 항상 불안감만 심어주는 그들에 대해 내가 무어라 쓸수 있었을까요.
빈 공책을 본 당신은 내 머리를 손으로 몇 번 내리치곤 그것도 성에 안차던지 이내 배를 걷어 찼지요.
배를 움켜쥐며 쓰러지는 내 정수리 위로 다시 해오라며 공책을 집어 던졌구요.
하지만 숙제를 또 검사하는 일은 없었어요.
당신은 그 사이 다시 떠나갔거든요. 공책 또한 여전히 백지인채였고.
이때가 초등학교 2-3학년쯤? 이였을꺼에요 아마.
그리고 이 일은 내 삶의 35년중 당신과의 가장 깊이 있는 기억이 되었네요.
그 외에는 추석 혹은 설날때 마다 간혹 만났던 우리.
허울만 아버지인 당신이, 그이름을 빌미로 말을 걸어올 때마다 나는 나무나 섬뜩했고 무서웠답니다.
어땠었나요. 그때의 당신은.
내가 자식이라는걸, 딸이라는 걸 인정 하고 받아들였었나요 .
지금도 나는 모르겠어요.
현재 당신의 물질적인 지원은 그저 책임감일까요.
아니면 그 시절 나를 대했던 행동에 대한 당신의 죄책감일까요.
지금의 당신을 보면 자식으로 인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같네요.
그저 30여년간 묻어두고 외면하기만 하던 죄책감을 이제서야 털어낼수 있는 기회를 얻은건 아닐지.
나는 왜 애정보다 이런 모습들이 먼저 보일까요.
서로를 마주 보게된 시기가 내가 너무 성장한 후인 탓일까요.
당신의 솔직한 모습이 보이는건.
살며 누군가를 용서 한후 새 삶을 시작 하라 한다면, 나에게 그 대상은 아버지 일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나는 당신이 존재 하지 않는 날들을 상상하고 원망하며 보냈어요.
딩신이 존재 하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존재 하지 않았을테니.
그래도 당신을 용서해 보려해요.
-라며 이야기를 끝낸다면 아름답겠지요.
하지만 용서가 그렇게 쉽나요.
다만 나는 용서하는 대신, 당신의 그 죄책감만 받겠습니다.
어렷을 적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받고싶지 않았지만, 이젠 이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됬나봐요.
그리고 나도 내인생에서 당신의 존재를 이 정도는 털어버려야, 비어낸만큼 다시 채워갈수 있을 것 같거든요.
당신. 아버지. 아빠.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성인이 된후 아버지 또는 아빠라고 불러본적이 없어요.
언젠가 당신에게 진심으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나도 내 인생에서 한번쯤은 정말 아버지가 있으면 좋겠거든요.
이생에서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그러니 아직 어린 나는 당신의 죄책감만 받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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