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고 젊은 내 얼굴을 오랜만에 보았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표정이었어.
이 사진 속으로 이어지는 포털이 있다면,
나는 과연 자신 있게 들어갈 수 있을까.
꿈 많고 확신에 찬 사진 속 그녀를
마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묻고 싶어.
안녕?
웃고 있구나.
너의 그 기대만큼
내가 그 바람을 잘 이루어 주었니?
나를 마주한 그녀는
나를 배신자로 낙인했을까.
지난한 세월간 풍파가 섞인
내 얼굴이 서먹할까.
우리는 서로가 낯설지도 모르겠어.
그녀는 기억보다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나는 기대만큼 아름다워지지 못해서.
봉오리 진 그녀도, 시든 나도
언제 피었다 언제 진지도,
혹은 피어나긴 했었는지도 모른채
우리는 서로가 낯설어.
이해는 해.
나는 심지어
거울을 볼 때도 낯설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이 내 시간의 밖에 있는 것처럼,
오죽하면 아직 오지도 않은 것처럼 어색해.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고,
돌아본 내 모습도 낯설다면,
낯설지 않은 나는 언제 오는걸까.
오래된 사진에
노랗게 표기된 년월일을 확인하려고
미간을 찌푸리며 팔을 뻗는 내가
유독 못나보였어.
그래서 나는
사진과 거울에서
시간을 찾지 않기로 했어.
찾는 순간 나를 잃게 되는 사실이 너무 가혹해.
그래봐야 모두 내 얼굴이므로,
잃은 것이 아니라 잊은 것이 되기 위해,
묻혀진 길이
후~ 입김만으로 나타날 수 있게,
사진 속 그녀를
당당히 마주할거야.
낯설던 처음과 달리
힘껏 서로를 안고
잘했어-라고.
코가 찡해지더라도
함께 미소지을게.
-청유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가사 전문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야
거울 속에 마주친 얼굴이 어색해서
습관처럼 조용히 눈을 감아
밤이 되면 서둘러 내일로 가고 싶어
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쌓이는 하루만큼 더 멀어져
우리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어린 날 내 맘엔 영원히
가물지 않는 바다가 있었지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 희미한 그곳엔
설렘으로 차오르던 나의 숨소리와
머리 위로 선선히 부는 바람
파도가 되어 어디로든 달려가고 싶어
작은 두려움 아래 천천히 두 눈을 뜨면
세상은 그렇게 모든 순간
내게로 와 눈부신 선물이 되고
숱하게 의심하던 나는 그제야
나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선 너머에 기억이
나를 부르고 있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던 목소리에
물결을 거슬러 나 돌아가
내 안의 바다가 태어난 곳으로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로와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
두 번 다시 날 모른 척하지 않아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운전 중 노래를 듣다가
"겨우 내가 되려고"
라는 가사가 귀에 꽂혀 들어왔다.
노래의 제목이 무엇인지 대체 왜 가슴이 아픈지, 이 짧은 구절 한마디가 뭐라고 나를 후벼파는지, 도착지에 이를 때까지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한 구절의 단서로 찾아낸 이 노래는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
그녀의 과거를 담은 곡.
자신과 화해하는 이야기.
겨우 내가 되려고 힘들었던 나를 안아주기까지의 여정.
노래를 다시 들으며 공감이 되었음에도 한편으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모순적인 마음 안에 놓였다. 감동한다고 현실이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이유는 나보다 어린데, 그 어린 사람보다 못하다는 유치한 자괴감까지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러나'로 시작한 이 가사처럼, 수많은 무너짐 뒤에 언제나 '그러나'를 놓아보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을 아직 모른다.
그러나
헤매이고 있다면 길을 찾고 있단 것일테지.
https://youtube.com/shorts/rsEBgob_yvA?si=2Zp9hvggYn3FS4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