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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Feb 18. 2021

김일성의 환갑기념 영화

북한영화 이야기. 16. 불후의 고전적 명작 <꽃파는 처녀>

1970년대 발행된 북한의 1원짜리 지폐를 보면 전면에는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가, 뒷면에는 불후의 고전적 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 <꽃파는 처녀>, <피바다>의 주인공들이 도안으로 활용되었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들이 북한의 혁명영화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북한의 가장 큰 영화촬영소인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입구에는 거대한 동상이 서 있다. 이 동상은 김일성이 <꽃파는 처녀>의 촬영현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현지 지도하는 모습을 형상해 놓은 것이다. 조선예술영촬영소 구내에 있는 문화성혁명사적관의 외관도 마찬가지로 혁명영화들로 꾸며져 있는데, 이 거대한 건물의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벽화 역시 불후의 고전적 명작 <피바다>,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의 한 장면이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 건립된 김일성의 <꽃 파는 처녀 >현지 지도 동상


이렇듯 불후의 고전적 명작은 북한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로 대우받는데 이중 첫 손에 꼽히는 영화가 바로 <꽃파는 처녀>이다.      


북한에서는 1950년대부터 김일성의 항일유격투쟁시기에 창작되었다는 작품들을 수집하는 작업을 광범히 하게 펼쳤다. <꽃파는 처녀>는 1960년 무렵까지 전혀 언급되지 않던 작품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들어 1930년에 오가자에서 김일성이 10월혁명기념으로 직접 창작하여 공연했다고 언급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발굴된 작품인 것이다.      


이 영화는 지주의 횡포에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가족들의 모습과 함께 유격대에 참여하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항일유격대에 참여한 사람들이 겪었을법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큰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김일성의 60회 생일을 맞아 기획되었다. 백두산 창작단의 1급 영화인들이 총동원되었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연출했던 최익규와 북한 최고의 연출가로 알려진 박학이 공동으로 연출했다.      


김정일은 1970년대 북한영화의 목표를 칼라광폭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삼았다. 이 영화가 그 모범이 되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꽃 파는 처녀>는 북한에서 본격적으로 만든 천연색광폭영화이다.     


이 영화는 북한을 대표하는 영화인 것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크게 인정받았다. 1971년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 특별상을 수상했고, 중국에도 수출되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다. 이 시기를 살았던 중국 사람들은 이 영화의 주제가를 다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문화혁명기라서 영화제작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북한영화가 중국에서 많이 상영되었고, 인기도 많이 얻었다. 특히 이 작품은 북중간의 우의와 교류를 상징하는 영화로 평가받는데, 이 영화의 주제가를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이 1983년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부른 영상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꽃파는 처녀>의 주제가는 항일유격투쟁 당시 인민들이 부른 가요들 중 하나이다. 1950년대 항일유격투쟁 당시 불렸다는 노래들도 널리 수집하였다. 사실 일제 강점기에 불렀던 많은 노래들은 외국노래의 곡조에 우리식의 가사를 붙인 것이 많았다.     

 

<꽃파는 처녀>의 주제가도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의 곡조에 “꽃 사세요 꽃 사세요 아름다운 빨간 꽃/부드럽고 빛깔 고운 아름다운 진달래...”라는 가사를 붙여서 불렀다. 항일유격투쟁 당시 고향을 생각하면서 불렀던 것을 채록한 것이었다. 이 노래는 전국적으로 가사를 조금씩 바꿔서 널리 불렀다. 이것을 영화로 만들면서 세련되게 편곡하여 주제가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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