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정완은 기획사 두 곳에서 받은 일거리 때문에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에 매진했던 정완은 선영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내심 아쉬워했다. 선영 역시 작년 연말부터 기획되어있던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모처럼 시간을 내더라도 정완과 시간을 맞추는 것이 확률적으로 낮았던 탓에 정완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기획사 근처에서 잠깐 동안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병준과 지수는 한 달 전부터 신혼집을 오가며 간단한 인테리어를 직접 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제외한 모든 계획을 마쳤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얼마 전, 신혼여행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지수는 신혼여행마저도 생략하려 했지만 병준은 그것마저 생략해버리면 소중한 시간의 일부가 소실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신혼여행을 생략하는 일을 불가침으로 여기고 지수 몰래 휴양지로 최적화된 몇 곳의 신혼 여행지를 물색했다. 병준은 신중하게 고른 카탈로그를 지수에게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앉아있던 지수 옆에 앉았다.
“어때?, 가고 싶은데 있어?”
“괜찮아 정말. 안 가도 상관없어 병준아.”
“지수야. 드레스도 대여하고 결혼식도 단출하게 하는데 억울하지 않겠어?, 일생에 한 번 뿐일 수도 있는 결혼식이잖아.”
“한 번 뿐일 수도는 뭐야?, 아직 식도 안 올렸는데 벌써부터 새장가갈 생각하는 거야 지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나, 진짜 괜찮아.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내가 결혼할 사람은 너라는 것만 변하지 않으면 돼.”
“나중에 후회할까 봐.., 그래서 그런 거지.”
“후회?, 여유될 때 단둘이 여행 가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그래, 그럼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대신 마음 변하면 꼭 말해줘.”
병준은 방안에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쓰레기를 주워 모았다. 깔끔한 그레이 색상의 벽지와 보다 짙은 색상의 암막커튼의 틈바구니로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넘실거렸다.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꺼내온 지수가 갑자기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난 듯 열심히 쓰레기를 줍던 병준을 큰소리로 불렀다.
“잠깐만, 그거 버리지 말고 이리 좀 줘봐.”
“응?”
지수는 병준이 버리려고 했던 카탈로그를 집어 들고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카탈로그를 한 장 한 장 바닥에 떨어뜨리던 지수는 남아있는 마지막 한 장의 카탈로그를 병준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병준아, 우리 신혼여행 가자.”
“벌써 생각이 바뀐 거야?”
병준은 지수가 내민 카탈로그를 받아 들고는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지수는 잔뜩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병준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어머님, 아버님 댁이 텍사스라고 했지?”
“응, 너 설마..”
“너희 부모님 돌아가실 때 우리도 같이 가자.”
“그게 무슨 신혼여행이야?”
“우리가 또 언제 미국에 가보겠니?, 농장일도 돕고 다 같이 맛있는 밥도 해 먹고 좋지 뭘. 한 열흘 정도 머물면서 이런저런 추억 많이 만들고 오자. 응?”
“지수야.., 마음은 정말 고마운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분명 부담스러워하실 거야.”
“부담스럽다고 하신 건 아니잖아. 그럼 결정한 거다?”
“진심이야?”
“오래오래 생각날 수 있게 예쁜 추억을 잔뜩 만들어 드리고 싶어. 쓸쓸함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따듯한 온기가 담긴 그런 추억 말이야.”
“참 제멋대로라니까, 너라는 여자는.”
“그래서 싫어?”
“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 그게 네 매력이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아무튼 결정한 거다?, 꼭 그렇게 하고 싶어 병준아. 알았지?”
한편, 경미는 부동산을 찾아가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그 대신 인근에 지금보다 넓은 평수로 임대가 가능한 건물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부동산을 빠져나왔다. 사무실로 돌아온 경미는 최근 며칠 동안 정완이 작업실에 오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정완에게 고백하던 날, 재계약 의사가 없다는 뜻을 내비치긴 했지만 조금 더 신중하게 상의하고 싶었던 마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집기류를 제외한 자잘한 물건들의 정리를 마치고 야간수업 준비를 시작하려던 그때, 경미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나야, 요즘 어때?”
“뭐야?, 마지막이라더니 웬일이야?”
“네가 마지막이라고 했지, 내가 마지막이라고는 안 했다.”
“사무실 이전하기로 결정했어.”
“결국 도망치기로 한 거야?”
“도망이라니.., 하도 좁아서 수강생 못 받은 오래됐잖아. 너도 알면서 그래.”
“하긴, 그게 다 돈인데. 그래서 어디로 가려고?”
“안 그래도 오늘 부동산에 다녀왔어. 이 근처로 알아봐 달라고.”
“진짜로 도망치는 거 아니지?”
“내가 왜?”
“그럼 됐어. 사무실 옮기면 연락해. 화환이라도 하나 보낼 테니까.”
“그래, 고마워.”
“경미야. 일일이 다 신경 쓰지 마. 내가 했던 말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너한테 화를 냈던 것도,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것도, 충고랍시고 오지랖 부린 것도 더는 신경 쓰지 마.”
“구체적으로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하면 신경을 안 쓸 수 있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모르겠으니까..,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신경을 쓰지 않고 살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으니까.”
“후회 안 한다며?, 후회돼?”
“응,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후회가 되네. 쏟지 말고 담아만 둘 걸 하는 아쉬움이 자꾸 생겨.”
“바보네 바보. 네가 원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언젠가 쏟아지게 될 일이었어.”
“정완 오빠의 옆자리는 언제나 선영언니가 있으니까?”
“아니, 정완이 형이 베풀었던 호의는 누구에게나 평등했으니까.”
“그게 호의였다고?”
“잘 생각해봐. 펜션으로 여행 가던 날 아침을..”
경미는 현수의 말에 펜션으로 떠나던 그날의 아침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그날의 아침에는 아침햇살 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던 정완의 웃음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상처투성이였던 너였으니까.., 그랬으니까 똑같은 호의를 보여도 너한테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게 당연했겠지. 내 눈에 비친 정완이 형은 박애주의가 기본으로 깔려있는 사람이었거든.”
“그럼, 벽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내 착각이었을까?”
“아니, 네가 벽속에 갇혀있었잖아. 왜 그건 생각 못해?, 벽속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으니 사방이 벽으로 보일 수밖에. 그러다 정완이 형을 알게 되고, 점점 더 알아가고 싶어 하는 너의 호기심이 너를 벽 바깥으로 꺼내 준 거잖아. 그건 착각이 아니지, 제대로 본 게 맞아.”
“스스로 둘러놓은 벽?, 스스로 고립된 그 울타리 말하는 거야?”
“응. 그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나는 네 손을 잡아주고 싶었건 거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랑 나랑은 잘못 만난 것 같아.”
“내 생각도 그래. 이제 열심히 벽을 기어 올라왔으니, 무사히 내려갈 일만 남았지 뭘.”
“이제 조금씩 내려가 보려고. 네가 말한 대로 혼자가 아닌 세상이 얼마만큼 행복한지 궁금해졌으니까.”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이제 네 걱정 그만둘 거야.”
“현수야. 네가 준 캘리그래피 말인데, 이거 정말 내가 가져도 괜찮아?”
“그럼. 처음부터 너 주려고 만든 거니까.”
“알았어. 또 연락하자. 마지막이라는 말 취소할게.”
“너 진짜 웃긴다. 포기한다는 뉘앙스가 조금 풍기니까 바로 말 바꾸는 거야?”
“그냥 아는 사람도 안 돼?”
“애인은 네가 싫고, 친구는 내가 싫다니까 하다 하다 이제는 아는 사람으로 지내자고?”
“싫으면 말고.”
“너 때문에 내가 웃는다. 요즘 정말 재미가 없어서 그런지 웃을 일이 없었거든.”
“이사하면 꼭 놀러 와.”
2월. 입춘이 지났지만 거리 곳곳에 남아있는 겨울의 흔적들은 봄의 싱그러움을 완강히 거부하는 듯해 보였다. 반들반들하게 얼어있는 얼음바닥과 처마 끝에 간신히 매달려있는 고드름은 액체로 변해 기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 듯했다. 봄이 왔다는 것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입가에는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가까스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안정권에 진입한 정완은 아주 오랜만에 작업실을 방문했다. 의뢰를 받았던 두 곡을 마무리 짓고, 더 큰 일거리를 손에 쥔 채 위풍당당한 개선장군처럼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깔끔하고 라벤더 향기가 가득한 사무실을 둘러보던 정완은 경미가 한구석에 쌓아놓은 짐 꾸러미를 발견했다. 정완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굽이굽이 보냈던 작년을 돌아보았다. 꿈을 좇아 열심히 달려왔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에 대해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정완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경미가 한 손에 걸레를 쥐고 작업실의 문을 열며 밖으로 나왔다.
“오빠, 언제 왔어요?”
“어, 경미야. 이삿짐 싸는 거야?, 혼자 고생이 많네.”
“고생은요 뭘.”
“근데 내 작업실은 왜..”
“이제 해주고 싶어도 못해주잖아요.”
“경미야..”
“오빠, 저기 쌓아놓은 짐들 좀 이쪽으로 옮겨줄래요?”
정완은 경미가 시키는 대로 쌓아놓은 짐들을 하나씩 옮겨 책상 뒤쪽에 가지런히 쌓아 놓았다. 정완이 짐을 옮기는 동안 경미는 손을 씻고 정완이 사용하던 컵에 인스턴트커피를 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오빠, 여기 커피요.”
“오늘은 믹스커피야?”
“오빠 원래 아메리카노 안 먹는 거 알고 있었어요. 믹스커피만 먹는 거 알고 있었다고요.”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요. 커피 잔에 얼룩진 것 좀 보세요.”
“나는 이게 제일 맛있더라.”
커피를 받아 든 정완이 사무실의 책상 앞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다용도실로 향하던 경미를 불렀다.
“경미야, 이리 와서 잠깐 앉아봐.”
“잠시만요. 내 것도 한잔 타고 갈게요.”
평소 인스턴트커피를 먹지 않았던 경미는 정완과 같은 컵에 커피를 붓고는 책상에 걸터앉았다.
“왜 그때, 여행 가서 너 다치고 난 다음날 말이야. 흉터가 생길까 봐 무섭다고 했을 때, 그때 내가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때 알아차렸으면 내 마음 받아줬을 것 같아요?”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때 내가 알아차렸다면, 네가 나 때문에 마음고생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 같아서.”
“오빠, 그 얘기는 안 하면 안 돼요?, 창피하잖아요.”
“이제 자주 못 보잖아. 만날 기회가 사라지면 하고 싶은 말도 언젠가는 잊어버리게 되니까. 그래서 지금 말하는 거야.”
“선영언니랑은 화해했어요?, 다시 잘 된 거예요?”
“응, 뭐. 좋게 잘 얘기는 했는데 개운하지가 않아. 아직 말하지 못한 게 남아있어서 그런가 봐.”
“왜요?, 아직 말 못 한 게 있으면 말하면 되잖아요. 그러다 어영부영 시간만 축내다가 또 잊어먹으려고요?”
“그러게. 까먹기 전에 꼭 말해줘야지.”
“오빠. 나, 이제는 상처받는 게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미움받을까 봐 두렵지도 않고요. 오빠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도 다 알아요.”
“눈치도 빠르네 경미는..”
“오빠가 나보고 특이하다고 말할 때마다 심장이 욱신거릴 만큼 기분이 좋았어요. 그게 꼭 특별한 것만 같아서요.”
경미가 커피 잔을 입에 몇 번 가져다 대는 동안 정완은 말없이 텅 비어있는 커피 잔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가끔 선영언니가 되는 꿈을 꾼 적이 있어요. 그때마다 꿈에서 깨는 게 싫을 정도로 행복한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제 깨달았어요. 내가 동경했던 것은 선영언니나 선영언니의 자리가 아니라 오빠랑 언니 사이에서 느껴지던 사랑. 그 사랑을 동경했던 거예요.”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봤자,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너는 참 예쁘고, 똑똑하고, 착해. 붙일 수 있는 수식어가 정말 많은 사람이야.”
“그럼 뭐해요. 오빠가 받아주질 않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들 눈에도 분명 그렇게 보일 거라고 생각해. 누구를 만나든 네 가치를 알아주고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
“오빠 말대로 어딘가에 있을 그 사람을 언젠가는 만나게 되긴 하겠죠. 근데.., 지금은 욕심 없어요.”
“나는 말이야. 나를 온전히 나로 봐주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해. 언제 만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정완의 시선을 회피하며 딴청을 부리던 경미는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완을 등지며 말했다.
“오빠. 나에게 오빠라는 사람은 태어나 처음으로 받은 선물 같은 그런 사람이에요. 그건 앞으로도 계속 부정하지 않을 거예요. 지난 일 년 동안 오빠랑 있었던 일들.., 추억이라고 생각해도 되죠?”
“그걸 왜 나한테 허락을 받아?, 추억이든 뭐든 그런 기억을 머릿속에 담는 건 자신의 의지잖아.”
“그러게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오빠랑 얘기를 하면 마음이 정말 편해져요. 실은, 고백했던 그날 이후로 사무실에 코빼기도 안 비치는 오빠 때문에 별에 별 망상을 하고 있었어요. 의식하지 않고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대해야지 하면서 매일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했는데.., 그때마다 전에는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떨 말투로 오빠를 대해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 거 있죠?”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냥 마주 보고 얘기하고, 웃고 떠드는 거지 뭐. 그게 다였잖아.”
“그러니까요. 괜히 나 혼자 의식했나 봐요.”
짧은 탄식과 비슷한 한숨을 내뱉은 경미는 머그컵 두 개를 들고 다용도실로 향했다. 정완은 그런 경미의 뒷모습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사는 언제야?, 지수 결혼식이랑 겹치는 건 아니지?”
“그럼요. 마침 손 없는 날이 다음 주 수요일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하기로 했어요.”
“지수 결혼식에 올 거지?, 청첩장 받았다며.”
“오래전부터 가기로 했던 거니까 가야죠.”
“그래,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
다용도실에서 나온 경미는 작업실로 들어가는 정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자만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소리로 정완을 불러보았다. 두 사람이 바라본 서로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분명 같은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을 어떤 날과 다르지 않았다. 가끔 생각날 정도의 그 어떤 날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상에 앉은 경미는 조금 전 정완과 얼굴을 마주하고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떠한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둘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관계를 끝낼 일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작업실에서 필요한 자료를 챙겨 사무실을 나서는 정완에게 경미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행복이 존재하면 불행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경미는 지금 이 순간이 비참하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지 좋았던 기억, 행복했던 기억, 그리고 가슴 설레던 기억들을 한데 모아 추억으로 묶어놓았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