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가면 집안 형편이 나아지길 간절히 소망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수능 봐서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만난 사회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생긴 꿈이긴 하지만 사회 선생님이 되어 모교에 부임하는 게 내 꿈이었고, 가고 싶은 학교도 정해 두었었다.
나의 간절한 바람과는 전혀 딴판으로 우리 집 형편은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해부터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진학 상담이 이뤄지는 고등학교 2학년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일단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린다면 장학금 받으며 대학교에 다닐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에겐 대학에 다니며 조금이라도 지출을 늘릴 사람이 아닌 돈을 벌어 집안에 한 푼이라도 보탤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부모님도 큰 딸인 내가 대학이라도 간다고 할까 걱정이 되었는지 점수를 높게 받아온 시험지를 보아도 기뻐하시거나 칭찬해 주신 적이 없었으니까. 부모님도 내가 어서 빨리 취업을 해서 돈을 벌기를 바랄 거라고 단정 지었다.
나 하나만 희생하면 우리 집 살림이 조금 편해지겠지... 첫 번째 나의 꿈은 그렇게 싹도 틔워 보지 못하고 땅 속에 잠시 묻어 두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은 수능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진로 상담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신 직업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본교에 출석했고, 기본 과목 시험만 봤다. 1년은 또다시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해 11월에 실습 나간 근무지에서 쭉 일하게 되었다. 몇 년 열심히 일하니 처음 40만 원이었던 월급에서 조금씩 더 받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3 때 다녔던 직업학교의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가까운 전문대학교에서 야간 대학생 모집을 하는데 다녀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등록금도 조금 지원이 되었다.
1-2년 돈을 모아 고등학교 때 꿈이었던 선생님이 되기 위해 대학을 진학하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 보니 재미도 있었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던 차였다. 돈을 버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모아 두었던 돈을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가 아닌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한 공부를 하는데 쓰게 되었다.
내가 하던 일은 휴대폰을 고치는 일이었다. 휴대폰 고치는 일이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꼈다. 휴대폰 전문 수리점을 차리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던 때였고, 해당 분야의 학과를 진학해서 졸업하면 도움이 될 터였다. 모아둔 돈을 상당 부분 써야 했지만 꿈이 나를 열심히 살게 했다.
솔직히 정말 힘들었던 스무 살 초반의 이야기다. 글로 미처 다 적지 못하겠지만 일 배우는 게 힘들어서 화장실에 가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선배들에게 같이 입사한 친구와 비교도 많이 당했다. 배움이 느린 편이라 잘 못 알아듣는다고 지적도 많이 당했다. 어린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고객들도 많았다. 빨리 많이 휴대폰을 고쳐야 월급을 많이 받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집에 월급의 일부를 가져다주고 나면 점심 값도 없어서 컵라면을 주로 먹어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늘 꿈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작가라는 꿈이 있었고, 다음에는 사회 과목 선생님, 또 다음에는 휴대폰 전문 수리점 사장이었다. 이런 꿈을 꾸는 동안에도 우리 집 형편도 내 삶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꿈이 있었기에 현실을 견딜 수 있었고, 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파는 100원짜리 막대 사탕 하나도 쉽게 사 먹을 수 없었지만 어떤 아이는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10개를 다발로 사서 갖다 주는 것을 보곤 했다. 수학여행에 갈 돈이 없어서 수학여행 참여 안내장에 불참이라고 표시해서 냈는데, 전교에서 나 하나만 불참한다면서 선생님과 면담을 한 적도 있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비싼 스마트폰을 안 가지고 있는 아이가 반에 없고, 주말이면 친구들끼리 어울려 마라탕을 먹고 코인 노래방에 가서 놀다가 스티커 사진을 찍는 아이들도 많다. 그렇게 다들 부족함 없이 크는 것 같아 보여도 여전히 어려운 친구들이 있다. 내가 클 때와 조금씩 상황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다수의 선택을 따를 수 없는 삶을 살며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어떻게 해도 나아질 것 없어 보이는 현실 앞에서 꿈이라니 허황된 바람이라고 미리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면 가정 형편 때문에 내 꿈을 포기하진 말라는 것이다. 아니 그럴수록 더 꿈을 꾸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말했을 때 ‘네 형편에 무슨’ 아라는 말을 듣게 될 수도 있고, 나조차도 믿기 어렵다 할지라도 꿈을 꾸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 꿈과 현실이 많이 다르더라도 꿈이 있다는 사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는 한 나는 언제나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꿈이 있는 사람이 사는 하루하루는 꿈이 없는 사람과는 전혀 다르다. 하나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사람이 나타나고, 나의 꿈을 다른 모습으로라도 이루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나도 오랜 꿈이었던 작가의 꿈을 이렇게나마 실현시키고 있다. 원하던 사회 선생님은 되지 못했지만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지식을 글로서 전달한다. 휴대폰 수리 전문점은 아니지만 나중에 내 건물에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가정형편만큼 꿈꿔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족들의 눈치도 보지 말자. 내가 자라온 가정환경으로는 나 자신을 조금도 규정할 수 없다. 비록 집안 형편이 나의 꿈을 뒷받침하진 못하더라도 괜찮다. 그렇기에 내 안에 누구보다 끝까지 버텨낼 끈기와 내 인생을 단단하게 이끌 책임감이 꿈틀대고 있을 테니까! 그저 꿈을 품고 웃으며 살아가길 간절하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