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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May 03. 2024

짧은 프롤로그 혹은 다짐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
누구를 허락하고,
무엇을 허락하고 싶은가?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다가 마주한 이 문장 앞에서 더 이상은 피하지 말고 써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이제부터는 내가 허락한 것들만 곁에 두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를 시작해야만 한다.




내겐 용기가 부족했다. 혹여나 받을 비난이 두려웠고 나라는 사람을 너무 많이 드러낸다면 그만큼 약점 잡힐 일이 많아질까 봐 소화시키지 못했던 기억들과 생각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묵은 체증 같은 이야기를 소화시키며 새롭게 나아가고 싶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그렇게 새로 나아가기 딱 좋은 때가 아닐까? 10이라는 숫자 텀은 사람을 새롭게 카운터 세어가도록 기회를 주는 때니까 말이다.




어릴 때 반복해서 자주 꾸었던 꿈이 있다.




분명 가족들과 잠을 자고 있었다. 불현듯 잠에서 깨었는데 아무도 옆에 없는 것이다. 가족들 이름을 부르며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을 보았다. 얼른 뛰어가 구멍을 확인했더니 아주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깊은 구덩이 속에서 검은 형체들에 둘러 싸여 묶여있는 가족들을 발견했다. 공포가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손과 발이 꽁꽁 묶여 버린 듯 움직일 수 없었고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 그런 꿈을 꾸다가 울면서 깨던 나날들. 가족들에게 이 꿈에 대해 단 한 번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 일어났던 모든 불행들이 내가 꿨던 꿈 때문인 것만 같아서였다.




인생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그 구덩이 속에 갇혀 있던 가족들을 떠올렸다.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를 떠올렸다. 더욱더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았다. 그게 가족들을 위해서였는지 꿈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를 단련시키기 위해서였는지는 분명하진 않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 꿈이 나를 살게 했던 것 같다. 악몽을 현실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힘듦의 연속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원망을 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우리 집이 가난해서, 챙겨야 할 동생들이 많아서, 배움이 짧아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해서 내가 이렇게 남들보다 힘이 든 거라고. 남들은 쉽게 가는 길도 나에겐 자갈 밭인 원인을 가족들에게서 찾곤 했다.




나는 허락했던 것이다. 내 인생을 남들이 가진 것과 비교하도록 했고, 내 인생에 해가 되는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야 평범 이하로 사는 것만 같은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흔이라는 카운터가 시작된 지금, 내 인생에 누구를 허락하고, 무엇을 허락하고 싶은지 다시 고민해 보기로 한다. 누군가 그랬다. 마흔쯤 되면 가족 탓, 배움 탓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제부터의 삶은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 말에 동의한다. 가족과 몸은 분리되었어도 마음은 분리되지 못해 허우적거렸던 나, 과거의 경력이 내 모든 미래를 결정지을 거라며 새로운 도전을 망설였던 나 역시 이제는 보내줘야 한다.



오랜 악몽과도 이별을 고하려 한다.




그 구덩이에서 가족들을 구해야만 했던 건 나 혼자만의 몫이 아니었다. 가족들 스스로 나올 수 있다고 믿어 주는 게 먼저였다. 나 혼자 애쓴다고 해서 가족 모두를 다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길 원하는 사람도 없다. 그 짐부터 벗어던지고 이제는 나답게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그러다 돌아보면 하나 둘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웃고 있는 가족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을 잘 기르는 방법이 무엇인 줄 아는가? 적당한 무관심이다. 적당히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흠뻑 물을 주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물을 주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게 자라난다.




가족이나 세상이 힘들게 할 때면 내가 상처받고 고되지 않을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주고, 그 이상은 그들의 손에 맡기자. 당신이 지나치게 염려하게 되면 그들도 자립심을 잃을 수 있다. 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잘 자라날 식물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답게 살아 가자.




내 인생에 더 이상 가족의 그림자, 세상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내버려 두지 말자. 너무 과도한 관심을 밖에 두는 것을 그만 두자. 나는 그저 내 인생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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