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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Oct 12. 2022

무모하고 명랑한 글쓰기


혼자 키득 거리며 글 쓸 때가 있다. 다 쓰고 나면 어디다 올리기 주책스러운 내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기사 쓰는 것도 아니고 내 공간에 내가 쓰고 싶은 거 쓴다는데 무슨 문제? 사적인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배짱이 두둑해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사 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습관 같은 게 있었다. 중립과 객관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밑바탕에 늘 깔려 있었고 그 부분을 의식하다 보면 글의 전개가 쉽지 않았다.           


천천히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렸던 것 같다. 글쓰기를 통해 과거에 대한 사유와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고 그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받은 상처 또한 잔잔하게 치유되는 느낌이다. 이거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디 가서 돈 주고 상담받지 않아도 반 정도 이상은 마음속 찌꺼기가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친구와 대화하듯 이야기를 적어 나가다 보면 폭풍 수다를 한바탕 떤 것 마냥 상쾌함이 온몸으로 구석구석 전해진다. 여전히 스몰 마인드긴 하지만 이 정도면 일취월장이다.   


누가 알아주고 상도 주고 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타인의 인정이 아니더라도 나를 위한 시간으로 글쓰기는 썩 괜찮은 묘약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듯, 정신 건강을 위해 하고 싶은 얘기를 글로 써나가면 그만이다.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최근 몇 개월간 머릿속에서 떠나지 못하는 일, 어린 시절 따뜻한 기억 또는 마음속 상처 등 쓰다 보면 도처에 쓸거리가 넘쳐나고 한번 더 쓰다 보면 풀리지 않은 숙제들이 차분하게 정리된다.       


매일 산책 나가는 길에서도 자연을 벗 삼아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감성만 있다면 쓸 거리는 풍족하다.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 날씨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하늘색, 우연히 만난 동네 꼬맹이들, 새로운 카페, 지나치기만 했던 베이커리 등.     




최근 아파트 단지 건너편 전원마을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시간 맞춰 빵 사 먹는 재미에 빠져있다. 그쪽 길로 산책할 때 몇 번 그곳을 지나치듯 보긴 봤지만 밖에서 쳐다만 보고 굳이 들어가진 않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성향 탓이다. 빵 하나 사 먹는 것도 결정 장애 증상이 나타나는 나란 사람, 글을 쓰면서 몰랐던 성향을 알아가는 중이다. 허허        


그런데 큰언니가 동네에 놀러 왔다 빵집을 보고 주저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더라. 맛집에 워낙 진심인 성격이라 보자마자 느낌 왔는지 성큼성큼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며 몇 개 골라보라고 옆구리를 쿡 찌른다. 이미 근처 연잎 한정식 맛집에서 배를 흡족하게 채운 찰나였고 포만감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였다. 혼자였다면 있거나 말거나 눈길도 안 줬을 테지만 언니 덕분에 빵집 내부까지 들어가 곱게 진열된 빵들을 구경하게 되었다.      


담백한 빵을 선호해 클래식 프레첼을 하나 집었다. 탐스러운 빵을 보고도 워낙 배가 불러 딱히 먹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으나 옆에서 하도 부추기는 바람에 겨우 골라 들었다. 집에 와서 두 시간 정도 후 배가 살짝 꺼지자 프레첼을 조그맣게 잘라 입을 작게 벌리고 한입 쏙 넣었다.      


오잉? 이렇게 맞춤하게 담백하기 있기, 없기. 쫄깃쫄깃한 속살이 입에 착 붙는다. 배부른데 빵이 눈에  들어오냐며 언니에게 핀잔을 줬었는데 빵맛을 보고 괜히 머쓱해진다. 독일 여행을 부추기는 맛이다.    


이후 프레첼이 먹고 싶을 때마다 그곳에 들렸고 버터 프레첼, 소금 빵, 생크림 스콘 등 몇 가지 빵을 더 맛 보았다. 하나같이 입맛에 잘 맞았다. 유럽 여행 때 먹던 풍미 깊은 빵맛 그대로다. 프레첼 브리오슈 스콘 11시, 호밀빵 바게트 깜빠뉴 12시 30분, 앙버터 치아바타 1시 등 시간만 잘 맞추면 갓 구운 빵을 라이브로 먹을 수 있는 베이커리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내 취향의 빵집을 발견한 사실에 한동안 마음이 들떴다. 집안일하다 답답할 때, 원고 쓰다 막힐 때 그곳을 떠올린다. 프레첼, 소금 빵을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한입 입에 물고 부지런히 다시 자판을 두들긴다. 글 쓰는 자유가 이런 게 아닐까. 주변의 사소한 발견이 무모하지만 명랑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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