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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엄마 Nov 11. 2020

이젠 너희를 볼게, 나를 보지 않을게

여러분 혹시 엄마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물론 상황에 따라, 또 아이의 나이에 따라 매번 다르겠지만 초등학교 2학년, 여섯 살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 저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즐겁게 뛰노는 걸 볼 때 마음이 참 흐뭇하더라고요. 서너 시간 원 없이 놀고 와서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곯아떨어져 잘 때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 어릴 땐 이게 보약이지.'


사실 저는 아이들을 이렇게 자주 놀리지는 못했어요. 지금까지 제 삶은 아이들보다 제가 우선이었거든요. 출퇴근하는 엄마가 아닌 '집에서 일도 하고 아이도 기르는 최고의 엄마'라는 수식어에 스스로 도취되어 모든 생활을 제 위주로 맞춰왔습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한 번씩 죄책감이 들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난 그래도 집에 있잖아.'


지금까지는 줄곧 번역 일은 애들이 없는 오전 시간에 하고, 집안 살림은 오후 시간에 했어요. 그러니 그 흔한 놀이터 한 번 제대로 데려가지 못했고, 늘 너희끼리 놀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 보통의 주부라면 오전 시간에 청소나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내겠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거든요. 아니 그러지 않았거든요. 살림은 늘 아이들이 하교, 혹은 하원하고 나서부터 시작했어요.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 방식이 무척 효율적인 것 같다며 얼마나 의기양양했는지 몰라요. 집중력이 필요한 번역 일은 애들이 없을 때, 집중력과 전혀 상관없는 집안일을 애들이 있을 때. 그리고 계속 유지하리라 생각했죠. 그런에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엄마의 품에서 마음껏 뛰놀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는 그 시간을 나는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구나. 아이들과 눈 맞추지 않고 있구나.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할 때마다, 책을 읽어 달라고 할 때마다, 문제 푸는 걸 도와달라고 할 때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일하잖아," "지금은 안 돼," "나중에 해줄게." 그저 나의 욕구, 나의 필요에만 집중한 채 아이들의 욕구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의기양양해했던 효율적인 시스템은 아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의 스케줄에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어요. 번역 일은 물론 집안일까지 최대한 아이들이 없는 오전 시간에 끝내고, 오후에는 놀이터도 가고 함께 시장도 보고 아이들과 같이 하는 시간을 늘려보려 애쓰고 있어요. 그러자면 오전 시간을 좀 더 많이 확보해야 해서 이번 주부터 이웃 준샤인님이 리드하시는 새벽 기상 모임도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앞당겨 5시 기상을 루틴으로 정착시키는 게 목표예요.


물론 쉽지 않더라고요. 번역에 살림에 블로그 스터디 준비까지, 이 모든 걸 오전 시간에 끝내려니 정말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정말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지 않으면 다 마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런데 참 신기한 건, 아무리 힘들어도 애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 모든 시간이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만 가봐요.


오늘도 해가 질 때까지 신나게 놀고 친구들하고 저녁도 함께 먹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양쪽에 한 명씩 나란히 손잡고 물었습니다. "오늘 즐거웠어?" 그러자 아이들이 대답했어요. "응, 너무너무 신났어!" "좋아, 그럼 된 거야. 너희들이 행복하면 된 거야. 엄마도 행복해!" 그 짧은 대화가 왜 그리도 뭉클한지요. 이렇게 좋아하는걸, 이렇게 신나하는 걸 그동안 왜 못해줬을까 하고요.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번역가도 좋고, 블로거도 좋지만 내게 가장 소중한 건 엄마라는 이름이라는 것을요. 더구나 유, 초등 시절인 지금의 몇 년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엄마라는 품 안에서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아이의 평생이 좌우된다면 지금 내가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아야 할 대상은 바로 아이들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놀고 와서도 내일은 또 아빠랑 어디를 갈까 즐거운 궁리를 하며 잠든 두 녀석. 오늘도, 내일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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