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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엄마 Jan 15. 2021

엄마, 나 이제 혼자 갈 수 있어!

여러분 혹시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으로 울컥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엄마들은 한두 번쯤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제게는 초등학교 2학년인 큰 아이가 유독 아픈 손가락입니다. 내게 엄마라는 이름표를 처음으로 달게 해준 아이. 그러나 이름표만 달았을 뿐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너무 몰라서, 모든 게 처음이라서 나도 울고 저도 울며 그렇게 키우고 있는 아이. 오늘은 그 아이를 통해 얼마 전 겪은 '또 하나의 첫 경험'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올해 아홉 살 난 큰 애는 다섯 살 때부터 발레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쁜 튜튜에 혹해서 TV에 나오는 '저 언니들처럼' 발레를 하고 싶다 해서 네 살 때 동네 발레학원에 전화를 걸었죠. 그랬더니 네 살은 너무 어리다고, 다섯 살부터 할 수 있다는 원장님 말씀에 꼬박 1년을 기다렸어요. 그렇게 다섯 살 3월, 유치원 입학과 동시에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이 벌써 햇수로 5년 차네요.


화려한 튜튜를 입는 줄 알고 시작했는데 웬걸요, 전혀 아니더라고요. 그건 그냥 유아 대상의 문화센터 수업에서나 하는 방식이라는 원장님 말씀. 정통 발레는 딱 붙는 스타킹과 레오타드만 입고하는 거라고 하셨지요. 딸아이의 기대에는 살짝 어긋났지만 그래도 한 번 시작한 거니 그만 둘 수는 없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학원이지만 원장님의 교육 철학이 분명한 점이 저는 좋았어요.


일주일에 두 번, 그렇게 저와 큰애, 둘째는 집에서부터 학원까지 늘 같은 길을 오고 갔어요. 처음 발레를 시작했을 때 100일이 채 안 됐던 둘째는 이제 두 달 후면 일곱 살이 되니 그간의 세월이 실감 나네요. 아이가 수업에 들어가면 대기실에서 기다리거나 집에 다녀오곤 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솔직히 정말 귀찮았어요. 언제쯤 혼자 다니게 될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 얼마 전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대뜸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엄마, 나 이제 혼자 가볼게.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아!" 저는 깜짝 놀라 안 된다며 말렸어요. "안 돼, 길도 여러 번 건너야 하잖아." 그래도 아이는 끝까지 혼자 가보겠다며 고집을 부렸어요. 아마도 발레학원의 같은 학년 친구가 버스를 타고 혼자 온 걸 보고 자극을 받은 것 같더라고요.


"엄마, 나도 이제 3학년인데 혼자 다니는 연습도 해야지. 걱정 마. 혼자 갈 수 있어. 근데 올 때는 밤이라 무서우니까 엄마가 와 줘." 아이의 논리적인 설명에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휴대폰을 쥐여주고 중간에 성당 앞에서 한 번, 학원에 도착해서 한 번 전화를 하라고 단단히 일러두고는 아이를 혼자 학원에 보냈어요. 그렇게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집을 나섰어요.


그런데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는 정말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요. 하필 그날이 제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었거든요. 10년 가까운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습니다. 그 아이를 뱃속에 품고 대학원 입시를 치렀던 기억, 돌쟁이를 어르고 달래며 공부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 유난히 젖떼기가 힘들어 세 돌까지 젖을 물렸던 기억, 겨우 재워 놓고 나와도 어느새 좇아와서는 공부하던 내 발밑에서 다시 잠이 들던 내 아기.


더구나 어른들과 함께 살면서 감정적으로 힘이 들 때면 그걸 다 큰 애한테 쏟아붓곤 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그 작은 아이한테 짜증 내고 소리 지르고.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못난 어미는 어린 새끼에게 참 못할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내가 이 어린 것한테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정신이 번뜩 들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언제나 너른 품으로 엄마를 용서하던, 어미보다 나은 내 딸. 그래도 영원히 내 품에 있을 것만 같은 아기였어요.


그랬던 아이가 어느새 커서 학원도 혼자 가고, 엄마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킵니다. 잘 할 수 있다고, 좌우 살펴 가며 횡단보도도 잘 건널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다독입니다. 엄마와 꼭 붙잡은 두 손을 영원히 놓지 않을 것 같던 아이가 어느새 엄마와 손잡지 않고도 혼자 길을 나설 수 있을 만큼 자랐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앞으로 점점 더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겠지요. 그런데 제 마음은 왜 이리 허전하고 아쉬울까요.


이 글을 쓰면서도 내내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이 글을 보면 스스로 참 주책맞다, 뭘 그런 걸 갖고 저렇게 구구절절 글을 썼나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그날은,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학원에 갔던 그날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혼자서 해낸 아이를 보며 저 역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이를 내 소유가 아닌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


공부도, 운동도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온전히 아이의 입장에서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게끔 해주어야겠다는 다짐.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아니, 분명 힘들 겁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언젠가 엄마의 손을 완전히 놓고 홀로 이 세상을 헤쳐갈 테니까요. 연습은 필요할 것 같아요. 뭐든 스스로 선택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러나 언제든 뒤를 돌아봤을 때 늘 든든히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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