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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엄마 Jan 09. 2021

어머니, 집에서 수학 좀 봐주셔야겠어요

오늘은 두 달 전 큰애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던 에피소드를 나눠볼게요.


그때는 그 전화 한 통이 참 무섭고 두려웠는데, 지금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그때 그 전화가 아니었다면 저는 엄마로서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었을 겁니다, 하하. 




불길한 예감은 왜 맞는 걸까요?! 번호가 뜨자마자 뭔가 느낌이 안 좋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큰애 담임 선생님이었고, 목소리가 왠지 뭔가 일이 있구나 싶더라고요.


"어머니, 오늘 수학 단원평가 시험을 봤는데 총 20문제 중에 OO이가 6개를 틀렸어요. 다른 애들은 대부분 100점이나 1~2개 틀린 시험을요. 평소에도 OO이가 수학을 많이 어려워해서 지켜보던 중이었는데 오늘 결과를 보고는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금 2학년 때 이대로 두면 3학년 때는 수학을 완전히 놓게 될 가능성이 커요. 그러니 집에서 집중적으로 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큰애 발레학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전화를 받았는데,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 말씀에 연신 "네, 네"라고만 대답한 것 같은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담임한테 전화가 오다니. 그것도 내 새끼가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어우 자존심 상해. 이런 치욕이, 이런 불명예가!'


처음에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내가 학부모로서 아이 담임한테 이런 전화를 받았다는 거 자체가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비록 수십 년 전이지만 나름 착실한 모범생으로 한 번도 선생님들 눈밖에 난 적이 없는 저였기에 정말이지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한 번도 겪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 눈앞에 닥친 거죠.


한 시간 정도 멍한 상태로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 평소 제가 아이들 교육의 멘토로 삼는 교회 집사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그러자 집사님은 이렇게 조언해 주셨어요.


"집사님, 괜찮아. 지금부터라도 사고력 문제 위주로 풀리면 돼. 대신 절대 화내지 말고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면서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 엄마는 답답할 수 있는데, 그래도 기다려 줘야 해. 그렇게 한 6개월 꾸준히 하면 훨씬 나아질 거야."


그렇게 멘토 집사님과 통화를 하고, 아이 친한 친구 엄마와도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안정되더라고요. 그래서 곰곰 생각해봤습니다. 수학을 못하는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원인은 제게 있더라고요. 일한다고 바빠서 아이를 방치해둔 것. 사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거기에 푹 빠져 아이들 공부는 거의 뒷전이었어요. 겨우 학교 숙제만 챙기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어준 적이 없네요. 뭐에 한 번 빠지면 그거밖에 안 보이는 성격이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시간을 들이지 않았으니 아이의 실력이 오르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어요. 그나마 영어는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수학은 연산 문제 풀리는 게 다였거든요. 선행을 시킨 것도 아니고, 사고력 문제집을 풀린 것도 아니고. 인정합니다, 수학 공부에 너무 무심했어요 정말.


두 번째 이유는 유전적 요소인 걸로 추측됩니다. 하하. 엄마, 아빠 다 문과 출신이고 특히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고교 시절 거의 수포자 신세였다는. 저는 정석과 개념원리를 거의 외웠거든요. 너무 이해가 안 가서. 안타깝게도 엄마의 '없는' 수학 머리를 닮은 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집으로 와서 남편과 한참 동안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었어요. 결론은 저녁 시간은 무조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학습을 실천해보자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큼은 한다!라는 각오로 실행하자는 것! 지금까진 늘 계획만 잔뜩 세워놓고 흐지부지돼버렸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매주 일요일에 아이들의 한주 간의 학습량과 독서 기록을 정리해 기록으로 남겨 보려 해요. 여섯 살 둘째는 일단 독서 기록부터 남겨보려고요. 그나마 큰 애는 제가 리드하는 대로 잘 따라와 주는 편이라 저만 이 굳은 결심 흔들리지 않고 실행하면 될 듯합니다. 




여기까지가 두 달 전 '그 전화'를 받았을 당시의 기록입니다. 다행히 선생님의 충격 요법으로 저와 아이 모두 정신이 번쩍 들었고요. 독서, 영어, 수학을 중심으로 적절한 선에서 계획을 짜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지금은 담임 선생님이 은인처럼 느껴지네요. 부디 지금의 결심과 실천이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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