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쓰면서도 눈물이 울컥, 오늘은 유난히 마음이 시린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여섯 살 난 둘째 이야기예요.
저는 아홉 살 딸과 여섯 살 아들을 키우고 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둘째가 제게 말하는 화법이 변한 걸 느꼈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요.
"엄마, 미안한데 화장실 좀 같이 가줄 수 있어?"
"엄마, 미안한데 그것 좀 찾아줄 수 있어?"
"엄마, 미안한데 이것 좀 같이 해줘."
함께 화장실을 가고, 본인이 찾기 힘든 뭔가를 찾아달라고 요구하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걸 같이 좀 해달라고 말을 하는데 늘 제게 부탁하는 조로 말을 하더라고요.
심지어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물을 달라고 저를 깨울 때도 여느 아이처럼 징징대거나 떼를 쓰지 않았어요. "엄마, 엄마." 자고 있는데 깨워서 너무 미안하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저를 부르곤 했어요.
처음에는 역시 우리 아들 예의도 바르다며 뿌듯하게 생각을 했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먹는 거, 자는 거로 한 번도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았던 순하디 순한 아이였거든요. 커서도 저렇게 엄마를 배려한다며 마냥 좋아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여섯 살 아이로서 엄마한테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걸 말하는데, 굳이 왜 저렇게 부탁하는 조로 말을 할까. 저는 아이의 속내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조심스레 물어봤죠.
"아들, 근데 왜 엄마한테 말을 그런 식으로 하는 거야? 화장실에 같이 가고, 목이 마르면 물을 주고. 그건 엄마가 아들한테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늘 그렇게 해줄 수 있냐고 묻는 거야?"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응, 엄마가 짜증 낼까 봐. 내가 엄마 영어 공부(번역 일)하는 데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순간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내가 죄를 짓고 있구나, 잘난 내 이름 석 자 내걸고 일한답시고 내 새끼 내가 망치고 있구나.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섯 살짜리 아이 입에서 나와선 안 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돌아봤습니다. 내가 뭘 어떻게 했길래 아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걸까. 유난히 소리에 민감한 저는 집에서 일을 할 때 아이들이 떠들면 집중을 잘 못합니다. 특히 번역 일은 집중이 필요한 일이라 더욱 그렇죠.
그래서 주로 방에서 문을 닫고 일을 하는데, 그래도 한 번씩 아이들이 불시에 난입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제 어깨에 올라타고,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갖가지 요청을 합니다. 바로 그 순간이 문제였어요.
머리로는 '아이들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런 식으로 내가 집중하는 순간을 아이들이 방해하면 저는 한숨을 푹 내쉬며 "제발 좀 나가!"라고 매몰차게 뱉어내곤 했어요.
보통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면 일을 하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제 작업 시간이 확보되지 않다 보니 저렇게 폭발하는 순간이 늘어난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둘째의 말투가 바뀐 것도 최근 몇 달이고요.
아이의 마음을 알고부터는 늘 이렇게 말해요. 엄마한테 부탁하는 식으로 말 안 해도 된다고. 밤에 엄마 깨울 때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는 널 위해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라고 말이죠.
저를 보고 많이들 이렇게 말씀하세요. "번역하는 엄마는 좋겠어요. 집에서 일도 하고, 애도 보고." 네, 좋아요. 그런데 막상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렇답니다. 아이들에게 저는 집에서 일하는 죄인이 되고 말아요.
이렇게 마음 아파하며 글까지 써놓고도 저는 또 아이들에게 시시때때로 짜증을 내고 엄마가 일할 때는 조용히 하는 거라고 주의를 주겠죠. 그럼 애들은 집이 떠나가라 시끄럽게 놀다가도 어느새 제 눈치를 볼 테고요.
집에서 일도 하고 아이도 보고. 그 명목으로 이 길을 택했는데 이런 난관이 생길 줄은 미처 몰랐네요. 그래도 학교도 유치원도 못 가는 이 시국에 그나마 제가 집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어요.
집에서 일하는 죄, 그 죄로 엄마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고백합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