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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엄마 Aug 07. 2020

마감 앞둔 엄마 번역가의 일상

요즘 저는 책 번역 마감을 1주일 남짓 앞두고 지난주부터 본격적인 마감 모드에 돌입했는데요, 오늘은 마감에 임박한 엄마 번역가의 일상을 살짝 공개해보겠습니다. 



번역, 또 번역


저는 엄마 번역가라는 다소 특수한 상황을 함께 일하는 에이전시에서 많이 배려해 주시는 편입니다. 그래서 늘 마감도 넉넉하게 받곤 하는데요, 시험 날짜가 많이 남았다고 해서 공부 더 많이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번역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제 경우 책 한 권에 짧게는 3개월, 길게는 4~5개월까지 여유 있게 마감을 받는 편인데 이렇게 기간이 여유로워도 막상 집중해서 번역하는 기간은 두 달 남짓입니다. 물론 초반에는 늘 이렇게 다짐을 합니다. '이번에는 꼭 하루에 조금씩,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끝내야지!' 그런데 매번 똑같아요. 미루고 미루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네요. 샘플 테스트에 통과해 정식으로 계약하고 일에 착수한 건 4월 말입니다. 기간을 무려 4개월이나 받은 셈이죠. 하지만 본격적으로 번역을 시작한 건 6월 중순부터, 마감 모드에 돌입한 건 2주 전부터네요. 여기서 '마감 모드'란 납기일을 앞두고 하루 5시간 이상 책 번역에 투자하는 상황쯤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책 번역이든 기사 번역이든 번역에 할애하는 시간이 하루 3~4시간을 넘지 않거든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오로지 책 번역에만 5시간을 할애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든든한 지원군, 그러나 방치된 아이들


그래서 마감 모드일 때는 남편과 친정엄마의 도움이 절대적이죠. 보통 주말에는 남편이 애들만 데리고 나가줍니다.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서면 오후 내내 놀다가 저녁까지 해결하고 돌아오는데, 그 한 끼 밥 안 하는 게 얼마나 수월한지 몰라요. 특히 주말 저녁은 일주일 중 가장 신경 쓰는 저녁 식탁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남편에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길어야 2~3주 정도니까요. 이렇게 주말에는 남편의 도움을 받고 주중에는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번에는 지난주부터 주 3회 저희 집에 출근하고 계시네요. 보통 아침 10시쯤 오시면 저는 일을 하러 나오고 엄마가 4시 정도까지 애들을 봐주세요.


이렇게 주중에는 친정엄마가, 주말에는 남편이 도와주지만 또 그 공백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런 때는 어쩔 수없이 애들은 거의 방치 수준입니다. 저는 그냥 끼니만 챙겨주는 수준이고 뭐든 자기들끼리 하는 편이에요. 영상은 최대한 안 보여주려고 하는데 제가 바쁠 때는 쉽게 보여준다는 걸 애들이 기가 막히게 알아요. 그래서 엄마가 요즘 좀 바쁘다 싶으면 "엄마, 나 카봇!" "난 반지의 비밀일기!"기다렸다는 듯 달려듭니다. 그럼 시간을 정해놓고 보여주긴 하는데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아요. 그래도 그것 같고 실랑이할 여유가 없으니 그냥 보여줍니다.



마감만 끝나면!


이렇게 마감 모드일 때는 속으로 수없이 외치는 말이 있어요. '마감만 끝나면!' 그러고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리스트를 열거하죠. 보통 집안 일과 애들 관련 일이 대부분이에요. 부엌 뒤집어 청소하기(딱 기본만 하고 지냈기에), 애들 맛있는 음식 해주기(김밥, 볶음밥으로 돌려 막았기에), 큰애 공부 루틴 회복하기(엉망 된 지 오래기에) 등입니다.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있네요.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뒹굴하기! TV 보면서 떡볶이+튀김 먹고 낮잠 자기! 꿀꽈배기 먹으며 멍 때리기! 아, 정말 간절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열흘 후에나 가능한 일이네요.


이번에 책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래도 스스로에게 한 가지 칭찬해 주고 싶은 게 있어요. 첫 번째는 기존의 번역 일을 놓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것입니다. 보통 책 마감을 할 땐 다른 번역 일은 잠시 양해를 구하고 홀딩하곤 했는데요, 이번엔 양쪽 다 병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새벽시간을 책 번역에 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두 번째는 글쓰기도 중도 하차 없이 그대로 이어간 것이네요. 사실 이 부분이 가능했던 건, 저는 번역 일이 아무리 많아도 밤에는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밤에는 스마트폰을 보거나 허투루 쓰는 시간이 많았는데 애들 재우면서 글을 쓰는 루틴이 정착되다 보니 번역 일의 강도와 상관없이 글쓰기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해서 마감을 열흘 앞둔 엄마 번역가의 일상을 대략적으로 살펴봤습니다. 특히나 마감 모드일 땐 아이들과 거의 전쟁을 치르듯 일을 하는데요, 그나마 저희 아이들은 집에서 일하는 엄마에 익숙해져서인지 제가 방문 닫고 들어가서 일해도 먹을 것만 잘 챙겨주면 저를 크게 귀찮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여섯 살 동생이 엄마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면 아홉 살 누나가 이렇게 말해요. "누나가 해줄게, 엄마 바쁘니까 우리 나가자."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데 이렇게 엄마를 도와주는 딸아이가 고마운 한편 너무 안쓰럽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번역하는 엄마는 일도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또다시 마감 모드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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