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Q&A 네 번째 시간. 오늘은 통번역대학원 수업 진행 방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예비 통번역사를 길러내는 통번역대학원의 수업 방식. 많이들 궁금하시죠? 제가 입시를 준비할 당시, 통대 입시생들 사이에서는 학교에 들어가면 교수님한테 혼나느라 만날 울 일밖에 없다더라, 크리틱이 장난 아니라더라, 졸업은 입학보다 더 힘들다더라 등 온갖 소문이 난무했습니다. 오늘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크리틱! 그 실상에 대해 파헤쳐 보겠습니다. 다만, 제 전공은 한영번역이니 만큼 번역 수업 위주로 말씀드려 볼게요.
수업 방식을 소개하기에 앞서 한 가지 전제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통번역대학원은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 통번역대학원은 통역과 번역이라는 언어적 스킬을 전문적으로 학습하는 곳이예요. 당연히 그에 합당한 영어 및 한국어 실력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전제로 학교에서의 모든 수업은 통역과 번역 실력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자, 그럼 통번역 실력을 향상 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바로 평가를 받는 겁니다. 이를 두고 통대에서는 주로 '크리틱(critic)'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교수님으로부터, 또한 함께 수업을 듣는 동료들로부터 끊임없이 크리틱을 받는 과정. 이 크리틱이 통대 수업의 거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문 교수진과 동료들로부터 크리틱 받는 과정을 통해 내 통번역 실력을 점검하고 점차 발전시켜 가는 것. 통대 학습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크리틱이 진행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모든 번역 수업에는 필수적으로 과제가 주어집니다. 수업 자체가 과제를 복습하고 크리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과제를 미리 완성해 교수님께 보내면,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몇몇 학생의 과제를 선별해 공유하시기도 하고, 모든 학생의 과제를 하나하나 짚어주시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내가 뭘 틀렸는지, 뭘 실수했는지 꼼꼼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면 교수님께서 일일이 수기로 첨삭해주신, 빨간펜 가득한 과제를 받아듭니다. 빨간펜 표시가 유난히 많은 날엔 마음이 어찌나 무겁던지요. '그래, 여긴 통대라고. 영어로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 통대 크리틱은 유명하잖아. 여기서 낙담하면 안 돼!'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그 '공포의 빨간펜'이 번역가로서 커다란 밑거름이 돼 주었습니다.
앞서 수업은 학생들의 과제물을 크리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씀드렸죠. 이때 한 사람 한 사람의 과제와 그에 대한 교수님의 크리틱을 모두가 볼 수 있게 큰 화면으로 띄워 놓고 수업이 진행됩니다. 이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교수님한테만 개별적으로 크리틱을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크리틱을 공유하는 데서 아주 많을 걸 배웁니다.
같은 텍스트를 10명이 번역하면 10개만큼 다양한 번역이 나옵니다. 부분적으로 같을 순 있지만 절대 똑같은 번역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10인 10색이죠. 당연히 틀리고 실수한 부분도 모두 제각각이겠지요? 이때 10개의 번역본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를 함께 나누면 학생 개개인이 배우는 것도 10배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잘한 부분, 혹은 잘못하거나 틀린 부분 등을 내 것과 비교하며 분석하다보면 자연스레 실력도 오르게 됩니다.
따라서 번역을 공부할 때는 크리틱에 강해져야 합니다. 크리틱이 없으면 결코 성장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와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그것을 내 실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지적받는 것 자체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면 성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틀린 것이 있다면 흔쾌히 수용하고 고치면 됩니다. 그래서 비슷한 실수를 줄여가면 됩니다. 이것은 번역 학습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통번역대학원의 수업 진행 방식, 그중에서도 크리틱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았습니다. 크리틱 말고도 소개해드릴 내용이 많을 것 같은데 벌써 통대 생활을 한지가 7-8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혹시 크리틱이나 기타 통대 수업방식에 대해 더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기억을 쥐어 짜내서라도 한 번 써보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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