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번역서가 탄생하기까지
안녕하세요.
번역하는 엄마입니다.
오늘은 저의 번역 일, 그중에서도 책을 번역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제가 책을 번역한다고 하면 흔히 받는 질문이 몇 가지 있는데요, 대부분 비슷합니다. 일감의 수주, 작업 기간, 번역료 같은 것들이죠. 오늘 제1편에서는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과정을 작업의 흐름대로 죽 설명드리고, 다음 제2편에서는 FAQ 형식으로 번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띠링띠링"
번역하는 엄마: "네, 팀장님 안녕하세요!"
에이전시 팀장님: "윤영 씨 잘 지내셨죠? 샘플 들어온 거 하나 있는데, 어떤 어떤 책이고요, 마감도 넉넉해요. 하실 수 있죠?"
번역하는 엄마: "네, 감사해요. 참여해볼게요."
에이전시 팀장님: "네, 그럼 메일 보내드릴게요."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일은 이렇게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됩니다. 에이전시에서 번역 작업에 적합한 번역가 2~3명을 선정해 이른바 '샘플 번역'을 요청하죠. 책을 대표할 만한 2~3페이지를 선정해 맛보기 번역을 시켜보는 겁니다. 에이전시에서는 이 샘플을 취합해 출판사로 보내고, 출판사에서 최종적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번역가를 선정합니다. 그럼 1단계가 끝납니다.
샘플 번역을 거쳐 최종 번역사로 선정되면, 에이전시와 계약 절차를 진행하며 기간과 번역료 등을 조율합니다. 기간은 보통 짧으면 2개월, 길면 4~5개월까지 주고요. 제 경우 두 곳의 에이전시와 거래하는데, 모두 제가 '애 엄마'라는 사정을 감안해 마감을 넉넉히 맞춰주시는 편입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번역료는 대개 번역사의 경력에 따라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2편 FAQ를 통해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죠.
계약 절차가 완료되고 나면, 원문 PDF 파일을 모두 출력합니다. 그리고 작업량을 작업 일수에 맞게 분배하는 작업을 합니다. 예를 들어, 250페이지의 원문을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번역을 한다고 하면 하루에 몇 페이지씩 해야 일을 끝낼 수 있는지 계산해서 일별 작업량을 정하는 것이죠. 저는 번역 속도가 좀 느린 편이라 하루에 많은 양을 소화하지 못합니다. 또 집안 일과 다른 번역 거리도 있으니 일일 작업량은 최소한으로 잡는 편입니다.
작업을 시작하면 저는 평일에는 실제로 노트북에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주말에는 소위 '사전 번역'을 합니다. 1주일 동안 작업할 거리를 미리 보면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죠. 모르는 표현이 나오면 사전도 찾고요. 이 과정을 거치면 평일 번역 시간이 많이 줄어듭니다. 어려운 내용이면 실제 번역보다 사전 번역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번역사가 원문 내용을 완전히 파악해야 가독성 있는 번역이 나오기 때문에 저는 이 과정을 반드시 거칩니다.
제 경우 보통 하루 작업량을 4-5페이지 정도로 잡는 편인데요, 주말에 사전 번역을 제대로 해 놓으면 실제 번역 시간은 3시간 정도면 충분합니다. 또 사전 번역 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내용은 빨간펜으로 체크를 해두는데 실제로 번역할 때 다시 읽으면 금세 이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전 번역을 통해 뒷부분 내용까지 어느 정도 파악해 앞뒤 맥락을 이해했기 때문이죠. 그만큼 본문을 한 번 보는 것과 두 번 보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해서 납기일로부터 2주 전후로 본문의 모든 번역을 끝냅니다. 이때부터는 전체 번역본을 다시 한번 읽으며 검수합니다. 오역은 없는지, 맥락이 잘못된 곳은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보죠. 이 과정이 끝나면 최종 교정자에게 작업본을 넘깁니다. 제 경우 번역 일을 시작할 때부터 친정아버지께서 교정을 봐주고 계세요. 영어도 잘하시고 워낙 꼼꼼하셔서 오타나 오역을 무더기로 잡아내십니다. 하하! 교정이 끝나면 대부분의 번역 작업이 마무리됩니다.
이제 긴 여정이 거의 끝나갑니다. 책 표지나 레퍼런스 같은 소소한 작업만 남았네요. 인덱스는 대부분 번역하지 않지만 간혹 번역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감일 전후로 저자의 인터뷰나 인사말의 추가 번역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 부분까지 작업을 완료해서 마감일에 최종 납기를 하면 번역 작업은 끝이 납니다! 이후 에이전시나 출판사의 편집 과정에서 교정을 요청해오기도 하지만 그리 많은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은 아닙니다.
번역을 끝내고 완전히 잊고 잊을만 하면 몇 달 뒤 출간 소식이 들려옵니다. 출간까지는 빠르면 납기 후 2~3개월, 길면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더 늦어지거나 아예 출간이 취소되기도 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작업한 책 중 4권이나 아직 빛을 못 보고 있습니다. 벌써 햇수로 3~4년이 훌쩍 지났으니 출간이 취소됐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네요. 출간 여부와 상관없이 번역사의 번역료는 지급되니 걱정 안하셔도 되고요. 출판사에서 보내온 따끈따끈 신간을 받아들 때의 그 기분이란! 그 희열도 이 일을 지속하는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이렇게 서 짧게나마 책 한 권이 번역돼 출간까지 되는 전체적인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번역서를 출간하는 출판사를 비롯해 그 일을 중개하는 에이전시도, 실제 번역을 하는 번역가도 수없이 많습니다. 따라서 제가 말씀드린 프로세스가 모든 역서의 출간 과정을 대변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아, 출판 번역 프로세스가 대강 이런 거구나 정도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다음 편에서는 출판번역과 관련해 주로 궁금해하시는 점을 FAQ 형식으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