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 궁금해> 두 번째 이야기
안녕하세요.
번역하는 엄마입니다.
여러분 혹시 책 한 권 번역하면 얼마나 받으시는지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베스트셀러 목록에 꼭 올라 있는 각종 자기 계발서, 경영서, 심리학 서적은 주로 외국의 서적을 우리말로 옮긴 책들이 많은데요, 이런 책 한 권 번역하면 역자는 얼마나 받을까요? 이렇게 책을 번역하는 출판번역가들은 과연 생계유지가 될 만큼 벌이가 괜찮은 걸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마감에 대해 글을 썼는데요, 초반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책 한 권에 짧게는 3개월, 길게는 4~5개월까지 여유 있게 마감을 받는 편이다." 그럼 독자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권 번역하는 데 4~5개월씩 걸리면 1년에 번역할 수 있는 책은 많아야 3권이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저렇게 일을 해서 돈이 되나? 아니면 책 한 권 번역하는데 돈을 많이 받나?'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두 개의 가정 모두 '틀렸다'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책 번역은 돈이 안되고, 즉 이 일만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들고 한 권을 번역한다고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닙니다. 단, 저 같은 5~10년 차 아주 평범한 번역가 기준입니다. 몇 년 치 번역서가 밀려있는 유명 번역가분들의 경우 번역 단가도, 번역 물량도 저와는 감히 비교조차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책 한 권 번역하면 얼마나 받을까요? 사실 이 질문에는 쉽게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경력에 따라, 에이전시의 수수료 비율에 따라, 계약 형태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 현재 몇 군데 에이전시와 거래를 하고 있는데요, 수수료율이 제각각이라 비슷한 두께의 책을 번역해도 제가 받는 금액이 차이가 꽤 많이 나더라고요. 1.5~ 2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차이가 있다는 전제하에 제 경우 원서 250~300페이지 책 한 권을 번역했을 때 적게는 250만 원에서 많게는 400만 원까지 받아봤습니다. 보통 두 달에 한 권을 번역한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125~200만 원 정도의 수입이네요. 일별 투입시간은 초반 한 달은 3시간 내외, 후반 한 달은 5시간 내외입니다. 집에서, 그것도 내가 원하는 때에 3~5시간 일하고 버는 돈으로 보면 아주 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단가는 통대 출신자가 일반 산업 번역을 했을 때 받는 단가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2년이라는 시간과 학비를 들여 전문교육을 받은 입장에서는 적절한 시장 가격을 받고 일하는 것도 권리니까요. 하지만 출판 시장은 철저히 예외입니다. 통대 출신이라고 더 높이 쳐주지도, 돈을 많이 주지도 않습니다. 통대 출신자들이 출판번역을 꺼리는 이유에는 돈 문제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저 수입이 1년 내내 지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의뢰를 받는 모든 책의 분량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분량이 적으면 자연히 번역료도 줄어듭니다. 일감이 계속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제 경우 자발적 선택이긴 합니다만 책 번역은 1년에 기껏해야 2~3권 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다 보니 책 번역 수입은 고정수입이라기보다 그저 몇 달에 한 번씩 주어지는 보너스 정도로 생각하고 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책 번역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출판번역 이력은 훌륭한 레퍼런스가 됩니다. 저는 현재 산업번역과 출판번역의 비중을 70:30 정도로 두고 있는데요(산업번역은 출판번역 외에 일반 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 의뢰를 받아 작업하는 모든 번역을 아우릅니다), 산업번역 구인 건을 보고 이력서를 제출할 때 역서 목록을 첨부하면 대부분 긍정적으로 봐주시더라고요. 특히 지원하는 계통과 비슷한 분야의 역사가 있으면 아주 큰 이점으로 작용합니다. 어느 정도 '먹고 들어가는' 게 있습니다.
둘째, 번역 일을 계속 이어가는 끈 역할을 합니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이 늘 존재합니다. 정식 요율로 단가를 받으면 두 달 동안 책 한 권 번역해서 받을 수입을 1~2주 안에 뽑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늘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단가 좋은 일감만을 기다리며 마냥 놀 수는 없습니다. 그런 때 책 번역은 번역가로서 일을 놓지 않고 이어가는 끈 역할을 합니다. 경력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돈도 벌 수 있으니까요. 제게는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셋째,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줍니다. 초등학교 2학년 큰애는 이제 엄마의 직업을 확실하게 압니다. 그래서 서점에 가도 엄마 책을 제일 먼저 찾아보고,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번역가라고 소개하며 은근히 자랑도 합니다. 역서가 출간돼 증정본이 도착하면 여기 엄마 이름이 적혀 있다고 어찌나 자랑스러워하는지요! 끈기와 인내를 가르치기도 수월합니다. 두꺼운 책은 절대 한 번에 번역할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해야 한다, 네 공부도 마찬가지다 끈기를 갖고 꾸준히 해야 실력이 오른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제법 알아먹는 듯합니다.
네, 이렇게 해서 오늘은 출판번역의 수입과 관련해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으로 작성한 글이기에 다른 번역가분들은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번역하는 엄마 개인의 견해로 봐주시고 이 글로 번역 시장 전체를 일반화하지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릴게요. 그저 '아, 책 번역의 수입은 대충 이 정도구나', 참고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