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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엄마 Jul 26. 2020

집에서 일하는 엄마라 미안해

집에서 일하는 엄마로 살아온 지 올해로 9년째. 오늘은 그 시간 동안 제가 늘 마음의 짐처럼 생각했던 부분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벌써부터 한쪽 마음이 찡긋하네요. 후우,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


제가 전문 번역가로 진로를 정하게 된 계기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0년 전 제가 통번역대학원 시험을 준비할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일하는 문화는 그리 보편화돼 있지 않았어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직업도 무척 제한적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남편은 결혼 후 아이들은 제가 직접 기르길 원했어요. 하지만 평생 경제 활동을 안 하고 살 자신은 없었기에 통번역사, 좁게는 전문 번역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통번역대학원에 합격하고 나서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아, 나는 이제 집에서 일도 하고 아이도 내 손으로 직접 기를 수 있어!' 마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 같았죠. 통역이 아닌 번역 전공을 택한 것도 통역은 밖에 나가서 일해야 하지만 번역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이유가 작용했어요. 입학 전 1년간 아이를 키우며 저는 그렇게 집에서 일하는 엄마에 대한 환상을 키워갔습니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든 줄도 모르고.



차라리 회사에 출근하는 엄마가 낫지 않을까?


사실 여기서 힘든 주체는 제가 아니에요. 저희 아이들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상하시죠? 그런데 저처럼 집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백번 공감하실 거예요. 물론 저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랴 애들 보랴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가 감당해야 할 그 힘듦의 몫을 오롯이 아이들이 받아내고 있다는 겁니다. 살림과 육아, 번역 일을 동시에 하는 데서 오는 육체적, 심리적 스트레스를 저는 소중한 아이들에게 풀고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사실 요즘도 그래요. 지금 번역하고 있는 책이 8월 중순에 마감이거든요. 마감에 맞추려면 하루 4~5시간은 번역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로 아이들이 계속 집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번역을 할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당연히 엄마한테 이것저것 요구를 하는데, 저는 또 시끄러우면 집중을 잘 못해서 걸핏하면 이렇게 쏘아붙여요. "미안한데(인상 한껏 찌푸리고), 엄마 일하는데 너무 헷갈려. 조용히 좀 해줄래?"


그렇게 뱉어버리고는 또 안 된 마음에 엄마가 미안하다 사과를 하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생각을 해요.


'나는 내 손으로 애들 잘 키워보자고 집에서 일하는 엄마를 택했는데 이게 과연 잘하는 일인가? 차라리 회사에 출근하는 엄마가 낫지 않을까? 일한답시고 애들한테 말도 못 붙이게 하고, 일한답시고 놀아주지도 않고, 일한답시고 밥도 대충 먹이고. 난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거지? 무엇을 위해 난 회사가 아닌 집으로 출근하면서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을까? 아이들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택한 길인데 아이들이 뒷전인 생활. 이게 과연 맞는 걸까?'


이렇게 글로 옮기다 보니 옆에서 자고 있는 애들이 더 짠하게 다가오네요. 그런데 어쩌면 아이들을 위해서 프리랜스 직업을 택했어, 라는 것은 사실 저를 속이는 말일지도 몰라요. 100% 아이들만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제 욕심이었죠. 일도 하고 애들도 직접 키우고 싶은 욕심. 그래서 나는 둘 다 잘하는 유능한 여자로 보이고 싶은 욕망. 어쩌면 제 욕심 채우자고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냥 옆에만 있어도 좋은 존재, 엄마


그래서 저는 큰애한테 가끔 이렇게 묻곤 해요. "ㅇㅇ야, 엄마가 일하느라 이것저것 잘 못 챙겨줘서 너무 미안해. 엄마 그냥 다른 엄마들처럼 회사 다닐까?" 그럼 큰애는 손사래를 치며 안된다고, 아무것도 안 해줘도 좋으니까 회사에 가면 안 된다고, 집에만 있으라고 난리를 쳐요. 그럼 또 저는 위로를 받습니다. 아니, 위안을 삼죠. '그래, 엄마는 옆에만 있어도 좋은 존재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그저 바라만 봐줘도 좋은 사람이잖아. 그러니 괜찮아, 나도 이만하면 잘하고 있는 거야.'


저 역시 그랬거든요. 늘 집에서 나를 맞아주던 엄마가 하루만 집을 비워도 그날은 왠지 허전하고, 그새 엄마가 보고 싶고. 왜 빨리 안 오냐고, 나 혼자 있기 싫다고 전화를 하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내내 엄마가 학교 갔다 오는 나를 집에서 맞아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저는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때는 몰랐죠.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그게 얼마나 값진 것인지, 평생의 삶에 얼마나 큰 거름이 되는지 알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좀 덜 미안해하려고 해요. 짜증을 내든 타박을 하든 그래도 아이들 곁에 있으니까요. 바쁠 때는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척하기도 하고, 밥도 대충 주고, 제발 좀 빨리 자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 곁에서 내 손으로 챙겨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언젠가 아이들이 제게 이런 말을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엄마, 미안해하지 마. 엄마가 집에 있어서, 우리 곁에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늘 분주한, 집에서 일하는 엄마의 노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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