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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Sep 16. 2022

나의 첫 연구수업, 비건 세상 만들기(1)

현직 교사의 비거니즘 에세이 "무릎 내어주기"

Chapter 3. 끊임없이 불화하고, 화해하고


네 번째 이야기. [나의 첫 연구수업, 비건 세상 만들기](1)


  짝꿍을 다시 만난 것은 2020년 12월의 일이다. 왜 짝꿍이냐 하면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짝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달리 부를 방법이 없다.


  십 년만에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만난 짝꿍은 여전히 팔자걸음으로 느긋하게 걸었고, 여전히 어딘가 나른했다. 하지만 나른함 속에 날카로움이 있고, 무덤덤함 속에 섬세함이 있고, 말이 많지 않지만 함께 있으면 이야기가 끊기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십 년 전에 수학문제가 안 풀려서 답답하다며 쉬는 시간에 꺼이꺼이 울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열일곱의 지은아, 그깟 수학문제가 안 풀린다고 울었구나. 10년 뒤에 알겠지만 세상엔 안 풀리는 문제가 훨씬 많단다. 눈물을 아끼렴!


  너무나 예측 가능하게도, 짝꿍은 비건이 아니다. 나는 그가 살면서 처음 본 비건 사람이다. 십 년만에 처음 만난 날, 상당히 추웠지만 카페도 방역지침에 따라 테이크아웃만 가능했으므로 찬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셨고, 저녁이 되어 인도커리를 먹으러 갔다[1]. 자연스럽게 짝꿍은 비거니즘을 시작한 계기를 물었다. 나는 동물권과 환경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특유의 나른한 어조와 또렷한 발음의 오묘한 조합으로 물었다.


“근데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진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식물도 생명이잖아. 그런데 왜 식물은 먹는 거야?”


  처음 들은 유형의 질문은 아닌데, 처음 본 태도였다. 먹을 게 그것뿐이라 어쩔 수 없이 봉골레 파스타를 시킬 때 옆에서 속사포로 던지는 “조개는 그럼 왜 먹어? 조개도 생명이잖아”는 들어봤다. 그런데 짝꿍은 비거니즘이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나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쾌고감수능력이라고,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뜻하는 말인데, 동물은 쾌고감수능력이 있어서 고통을 느낄 수 있잖아. 나는 그냥 세상에 고통이 조금이나마 적길 바라. 그리고 동물을 먹지 않는 것이 식물을 덜 해치는 일이기도 해. 가축 사료를 위해 엄청난 양의 콩과 옥수수를 재배하고, 또 재배하기 위해 엄청난 면적의 숲을 태우고 있거든!”


“아, 그렇구나?”


  그렇게 우린 가까워졌고 다시 짝꿍이 되었다. 짝꿍은 나와 함께하며 비건 앨라이가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나와 만날 때는 비건 식당에 갔고, 나를 따라서 텀블러를 들고 다녔다. 무엇보다 비거니즘에 대한 나의 생각을 경청해주었고, 덩달아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동안 혼자여서, 혹은 너무 멀어서 가보지 못했던 비건 식당과 카페들을 도장 깨기 하듯이 같이 돌아다녔다. 맛있는 식당들도 더 많이 발견했고, 단골 식당들도 늘었다. 그러나 늘 갈 곳이 마땅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비건 식당이나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은 극히 소수였기 때문에 우리는 비건 식당이 있는 동네를 위주로 다녀야 했다. 하지만 늘 같은 곳만 갈 수는 없거니와, 늘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루는 식당 휴업일을 착각해서 갈 곳 없는 처지에 놓여버렸다. 그 동네의 거의 유일한 비건 식당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적당한 곳이 없었다. 채식한끼앱에 뜨는 곳은 죄다 카페였다. 이 많은 식당들 사이에서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니. 결국 그나마 찾은 선택지는 한참을 돌고 돌아 만난 샐러드와 샌드위치 가게였다. 샐러드는 비건 옵션이 있지만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다. 단호박 샌드위치의 단호박 무스는 소젖이 소량 들어있지만 종이 포장뿐이다.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까? 고민하다 단호박 샌드위치를 선택했다.


  코로나를 피해 차 안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둘 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피곤함에 짓눌린 어색한 공기가 흘렀고 우적우적 샌드위치 먹는 소리만 들렸다. 우리는 그날 계속된 검색과 연달아 맞닥뜨리는 그나마 나은 선택지들의 휴업으로 지쳐 있었다. 나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동물성 식품 사이에서 고민하다 후자로 타협했고, 짝꿍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긴 했지만, 분명 허기진 하루를 달래기엔 어딘가 부족한 식사를 했다.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하루의 마무리였다.


  혼자 요리를 해먹고 가끔 약속이 있으면 비건 식당을 갔던 때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논비건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자, 함께 밖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매주 마주해야 했고, 그것은 분명 쉽지 않았다. 여전히 비건을 위한 선택지는 풍족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분명 또 있을 텐데, 반복되면 지칠까 두려웠다. 만약 내가 짝꿍과 함께 하며 비거니즘을 타협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게 주기적이 된다면, 나는 비건이 아니게 되는 것인가? 관계 유지와 실천의 완고함을 두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어느덧 고민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법을 익혀가고 있었다. 비거니즘을 더 풍성하게 이해하며, 행동을 하나씩 파편화하여 점수를 매기고 제단하는 엄정주의에서 조금씩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어떤 행위의 함과 하지 않음보다 그 행위의 근간을 이루는 인식 체계와 삶의 태도에 더 관심을 쏟기로 했다. 또한 비거니즘은 비인간동물/인간동물과 같은 이분법의 규범을 위반하는 사유와 언어체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걸 먹으면, 혹은 이걸 쓰면 비건이다/아니다와 같은 말도 맥락에 따라 때로는 유효하겠지만, 비거니즘적 사유를 통해 균열을 내볼 수 있는 사고였다.


  물론 비거니즘은 동물성 제품과 식품을 배제하는 일상적 실천이 큰 축을 이루는 사회운동이다. 그러나, 얼마나 촘촘하고 완고하게 동물성 식품과 제품의 소비를 배제하는지 측정하는 일보다, 그 바탕의 인식체계에 대한 이해와 확장, 그리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때때로 타협을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가리키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나의 부족함을 정당화하지 않도록 깨어 있으면서도, 지치지 않는 비건이 되고 싶었다. 비건으로서 비건 앨라이와 함께 논비건이 주류가 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보고 싶었다.


  이 모든 고민의 과정을 짝꿍과 함께 나누었다. 우린 관계를 건강히 유지하면서도 비거니즘을 최대한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불가피한 상황에선 타협을 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것을 “실패”라 부르지 않았고, 우리는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선 어떤 대안이 있을지 함께 찾아보았다. 든든한 비건 앨라이와 함께 하며 스스로의 “비건 자격” 되묻기를 멈추고, 비거니즘에 대해 더욱 자주, 크게, 또렷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너무 늦었을지 모르지만, 이제야 비거니즘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해 여름방학에는 고3 보충수업을 맡았다. 보충수업이 끝나고 남겨진 방학을 세어보니 열흘 남짓이었다. 이제야 진짜 방학인데 2학기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니! 게다가 다가올 학기엔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연구수업이다. 동기들이 연구수업을 할 때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싶었지만 그게 내 일이 될 줄이야. 이젠 내 차례다. 동교과 선생님들과 교장, 교감 선생님 앞에서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좋은 기회다 싶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수업을 통해 비거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짝꿍과 마주앉아 비건 버거를 먹으며 연구수업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를 했다.


“연구수업에서 비거니즘 얘기를 하고 싶은데,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 난 개인적으로 동물권에 먼저 관심이 생겨서 비거니즘을 시작한건데, 교실에서 선생님들 다 모인 자리에서 공장식 축산의 진실에 대해 얘기하는 게 뭐랄까, 솔직히 좀 겁나.”


“비거니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한테는 동물권보다 기후위기로 접근했을 때 더 공감대를 얻기 쉬울 거 같긴 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답답했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는 모두가 알아야 할 진실인데, 얼마나 더 조심스러워야 하는가? 언제까지 동물이 고기가 되기 위해 착취당하고 고통받고 있다는 자명한 진실을 덜 거슬리는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비건 앨라이를, 비건의 심리적 자원을 늘리자는 목표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비거니즘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면, 실천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래서 지지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렇다면 말을 꺼내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은 “지는 것” 혹은 “타협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토바이어스 리나르트는 <비건 세상 만들기>에서 공장식 축산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동물을 배신하는 것은 아니며,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것보다 격려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실용주의적 접근법을 제시한 바 있다[2]. 여러 고민 끝에 기후위기를 중심으로 비거니즘을 이야기하는 연구수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1] 인도커리는 대표적으로 비건과 논비건이 함께 가기에 좋은 식당이다. 마라탕도 채수 옵션이 가능한 곳이 상당히 많고, 곤드레밥이나 두부집도 좋다.


[2] 토바이어스 리나르트는 지금은 이상주의와 도덕적 메세지보다 적정량의 실용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 주장한다. 그는 시간이 지나며 비건 운동의 대중적 지지가 높아진다면, 이상주의적 메세지의 필요성과 생산성도 증가할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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